사사로운 이야기의 쓸모에 관하여
들어가는 말
이 여행에는 어떤 이유가 숨어 있을까. 십 년 전 자전거로 유럽을 횡단하겠다며 호기롭게 출국장을 나서던 날을 잊지 못한다. 출국장 자동문이 닫힌 뒤 나는 완전히 새로운 감정과 마주하게 되었다.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되도록 그 감정을 피하기 위해 설렘이라는 낱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려고 애썼다. 그날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은 ‘혼자’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울며불며 전화해도 아무도 달려와 줄 수 없는 장소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이것이 모두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점점 더 깊은 외로움의 방으로 끌어들였다. 친구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러 간다며 떠들던 말들이 도리어 나를 도망칠 수 없는 절벽 끝으로 몰고 간 것이다.
통유리로 만들어진 창밖으로 비행기가 오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세상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가 하늘을 가로질렀고, 이미 제 일을 다 한 비행기가 눈앞에서 쉬고 있었다. 설레지 않았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이보다 더 혼자인 장소에 갈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한 채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비행기 창으로 한반도가 조감도처럼 보이기 시작할 무렵,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이전까지는 바다에 갇힌 나라라고 생각했으나, 공중에서 본 바다는 나를 감싸고 있는 울타리 같았다. 울타리를 넘어가는 장면을 오롯이 마주하기 싫었고, 앞 좌석 뒤에 붙은 모니터에는 꽤 볼만한 영화가 많았다. 때가 되면 승무원이 말도 걸어 주었다. “손님, 한식과 양식이 있습니다.” 다행히 비행기는 나를 혼자인 채 외로움에 사무쳐버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 여행기를 쓰기 시작하며 첫 번째 출국장의 기억을 소환했다. 되도록 솔직한 감정을 꺼내 놓으려고 애를 썼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여행하고, 글 쓰는 이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조차 십여 년이 넘도록 명확하게 여행의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까. 만약 조금 더 쉽게 여행이라는 단어에 접근하려 했다면, 파리의 에펠탑이나,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 멕시코시티의 아줄 까사(Azul Casa, 프리다 칼로의 생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것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의 역사가 남긴 흔적을 소개하며 아름답고 처연한 서사를 소개했을 테다.
지역의 랜드마크가 인간에게 좋은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는 말처럼 말이다. 다만, 오늘을 살고 있는 ‘나’라는 사람을 랜드마크에 빗대어 대변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했다. 내가 랜드마크가 지어진 시대를 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에펠탑 아래서 벌어진 혁명적 사건들의 실제 주인공을 알지 못하고, 두오모 성당을 짓기 위해 죽어 나간 수많은 노동자의 삶을 알지 못하며, 프리다 칼로가 지나온 삶의 궤적을 단 몇 권의 책으로만 마주했을 뿐이다. 랜드마크가 나를 대변할 수 없듯이, 나 역시 그것들을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아주 사적인 여행기를 쓰기로 한 것이다.
사사로운 이야기가 가진 힘을 믿기로 했다. 그것은 개인적인 이야기로 글을 짓는 사람에게 필요한 믿음이자, 내가 살아낸 시간이 누군가의 오늘과 맞닿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다. 때로 막연한 것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사실 자주 그런 순간을 마주했다. 전공 공부를 선택할 때나, 직업을 선택할 때, 알고 보면 주기적으로 인생을 건 배팅을 하고 있었다. 위대한 역사는 찬란하지만 지나간 것이고, 개인의 삶은 어떤 모양으로든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가장 오래 들여다본 사람부터 관찰해야 했다. 그는 다름 아닌 나였다.
이 여행기는 아주 사적인 관찰기다. 내가 아직 살아 있으므로 매우 살아 있는 이야기다. 변덕스러운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명료한 증거다. 살아 있는 것들은 무질서하다는 에리히 프롬의 말처럼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변하지 않을까. 꽃을 피웠다가 잎을 내고, 가지만 남았다가 다시 싹을 내는 나무처럼 말이다. 살아남은 생명들은 대체로 많이 변한다고 느낀다. 나 역시 지난 십여 년의 여행을 통해 많이 변했고, 변했다는 말이 썩 기분 나쁘지 않다. 좋은 방향으로만 변한 건 아니지만, 살면서 만회할 기회가 한 번쯤은 더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이 있다.
나는 낯선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할까. 어떤 대화를 이어갈까. 여행하고 글 쓰며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 모든 질문에 답이 과연 그곳에 있을까. 관찰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만들곤 한다. 여전히 묻는다. 나는 왜 여행을 할까. 만약 이 물음의 연결고리가 끊긴다면, 더는 글을 쓸 이유도, 여행을 할 동력도 남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동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과 나를 이어주는 가느다란 실타래마저 사라지고 말 테다. 물음의 연결고리를 지키기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고백해야 했다. 그것이 이 여행기가 1996년 어느 여름날 서울 용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출발하여, 서른 살에 올라간 경기도 전곡의 작은 언덕에서 마치는 이유다.
이어질 이야기들
제1장 아주 사적인 이유
사랑이 넘치는 신세계_서울
아무도 모르는 사람_바르셀로나&칼레야
미처 기대하지 못한 이야기_바르셀로나
제2장 아주 사적인 여행
이곳과 저곳 사이 판테온_파리 라틴지구
밤과 낮의 바다_니스
여름과 겨울의 일_파리 몽마르트르
지독하게 아름다운 파라다이스_플라야 델 카르멘
적당한 거리의 인간_비엔티안&루앙프라방
LOVE&FEAR_푸에르토 모렐로스
부끄러운 소망_이스탄불
장국영이 죽던 해_홍콩
타코 리브레!_멕시코시티
밀라노의 백 년 객잔_밀라노
발아래서 빛나는 별_르아브르
제3장 아주 사적인 다짐
LIFE, SOMETIMES, MEANINGLESS_벨리코 떠르노보
살기로 마음먹은 춤_멕시코시티
숭고한 소명_코바
출국장에서의 결심_아타튀르크 국제공항
이토록 찬란한 죽음_구메지마
사라질 이름들을 위하여_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