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가족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오늘 육아휴직 갔다가 복직하신 사무장님이랑 같은 갤리를 썼는데 되게 따듯하고 좋은 분이셨어. 근데 주변 친구들은 첫째가 벌써 유치원생이고 둘째까지 낳았다면서 뒤처지는 느낌을 받으시더라고”
“경쟁의식이 좀 있으신 분이라 회사 생활도 결혼도 다 빨리 하셨나 보네”
“응 그런 거 같아. 근데 대화를 하다가 사무장님이 나한테 ‘주안씨는 몇 살이냐, 결혼했냐, 남자친구는 있냐, 연애는 왜 안 하냐’ 물어보시길래
‘몇 살이고, 남자친구 없고, 연애는 했다 안 했다 하고 있다.’라고 말했더니
갑자기 정적이 흐르면서 나를 따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뭐라고 하셨게…? “
“뭐라는데?”
“나를 짠하게 바라보면서 ‘좋은 사람 만날 거예요..’라고 하시는 거야”
“푸하하핳하하”
다 같이 빵 터져버렸다.
나 역시 다시 말하면서도 웃음이 터졌고, 그 당시에도 웃으면서 “네네, 그렇죠 ㅎㅎㅎ”하면서 웃음부터 나왔다.
왜 웃음부터 나왔을까?
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나답게 살고 있는지 모른 채, 자신의 기준에서 나를 위로해 주는 사무장님의 귀여운 걱정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재밌었다.
그분의 기준과 가치에서는 내가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클 거라 생각하셨을 테니까.
나 역시 사무장님의 걱정을 악의 없이 받아들이며 그 진심이 귀엽게 느껴져서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나를 동정하는 듯한 시선에 의아해하며 나를 설명하려 들었을 것이다.
내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즐겁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사는지,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맘껏 만나보며 무엇을 느끼는지 등등-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는 부분을 애써 설명해 봤자 오히려 또 다른 오해를 만들거나,
내가 상대방의 기준에 휘말렸다는 찝찝한 기분을 남길 수도 있다.
그냥 그 사람의 세계에서,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과 기준을 존중해 주며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은 웃어넘기고 스쳐 지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상대의 의도에 내 감정을 담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유쾌하게 내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인가?
화도 즐거움도 결국 내 안에서 선택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를 설명하려는 필요 자체를 느끼지 않고 그저 웃어넘길 수 있을 때,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아껴지는지 알게 된다.
얼마나 많은 감정 소모를 불필요하게 해왔는지도 알게 된다.
그 경험이 쌓일수록, 내 목소리를 내야 할 때와 아닐 때가 자연스레 더 명확해진다.
나이를 먹고 좋은 점.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