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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 기: 인간과 기술의 문제

도널드 노먼, <인간 중심 디자인>(유엑스리뷰, 2019)

도(道)와 기(器)의 문제는 선진 유학에서부터 송명성리학에 이르기까지, 항상 철학의 핵심에 놓여 있었다. 특히 19세기 중반 외세의 침입이 갈수록 격화됨에 따라, 이 이슈는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실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아마 우리에게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이라는 표현이 훨씬 익숙할 터이다.

그러나 사실 동도서기론은 처음부터 잘못 설정된 의제였다. 왜냐하면 도(道)나 기(器)는 동(東)과 서(西)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도에 동도와 서도가 따로 있을 수 있으며, 기에 동기와 서기가 따로 있을 수 있는가? 중요한 것은 동과 서가 아니라, 도와 기였다. 하지만 당대 내로라하는 성리학자들조차 기독교라는 '서도'에 맞서서 유교라는 '동도'를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성리학의 기본개념을 오용한 가장 좋지 못한 사례이다.

한편 그들은 도의 개념을 혼동했기에, 기에 대한 이해 또한 그르치고 말았다. 이들은 도와 기를 체용관계로 보았다. 그런데 체용 관계는 유학과 동양의 문물 간의 관계 등에 적용하는 개념이 아니다. 하물며 서양의 기독교 또는 민주주의는 체요, 서양의 과학기술은 용이라는 주장은 체용 관계를 자의적으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릇되게- 사용한 대표적 사례이다. 특정한 과학기술이 서양인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서기가 아니다. 보편적 자연법칙에 따라 개발된 과학기술은 동서를 막론하고 '기술' 그 자체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보편적 자연법칙이 바로 유교에서 말하는 '도'이다. 그 보편적 자연법칙이 인간 내에 자리 잡을 때, 유교에서는 그것을 '본성'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이란 만인에 공통된 자연법칙이다. 그 자연법칙은 우리에게 인간의 감정으로 인식된다.

그 자연법칙이 고양이에게 내재한다면, 아마 고양이의 감정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자연법칙이 나무에게 내재한다면, 감정이 아닌 어떤 식물적 생리작용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자연법칙이 돌멩이에게 내재한다면, 아마 인간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어떤 작용으로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그 자연법칙이 보편적이며 공통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구한 말의 '동도동기론' '동도서기론' '서도서기론'의 논쟁들을 살펴보면, 분명치 못한 개념 사용으로 인한 혼란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이러한 개념적 혼란을 말끔히 걷어내고 나면, 도와 기의 문제는 결국 인간과 기술의 문제로 환원된다. 다시 말해서, 올바로 정리된 철학 개념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여전히 적실하고 유용하다. 오늘날 인간과 기계의 문제는 실질적으로 일자리 문제, 더욱 노골적으로 말하면 먹고사는 문제와 연결된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해서 인간이 먹고 살기 어려워질 경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 없다. 근래에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는 기본소득 문제도 결국 여기로 귀결된다.

혜안이 부족한 내가 여기에 뭔가 딱 떨어지는 솔루션을 제공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나 또한 글을 쓰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다만 나는 기계로 인간을 대체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심리에 맞추어 어떤 실마리 하나를 공유하고자 한다. 왜 수많은 기업들은 기계로 인간을 대체하려 하는가? 왜 수많은 벤처 캐피탈들은 인간을 넘어선 기계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가? 과학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을 신뢰해서?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해 보고 싶어서?

아니다. 전부 다 정답이 아니다. 돈을 굴리는 사람들이 기계로 인간을 대체하고자 하는 까닭은 단 하나이다. "비용절감." 기계를 사용해서 일을 할 때, 인간이 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그들은 기계로 인간을 대체하고자 한다. 물론 여기에서 그들이 말하는 비용은 노조 결성이나 파업 등에 대응하는 "비용"을 포함한다. 여러분들은 벤처 캐피탈들이 수천 억 원 이상의 자금을 단순히 "순수한 과학적 열정으로"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한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에 그렇게 순진한 벤처 캐피탈이나 대기업은 없다. 그들은 모두 집어넣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돌려받기 위해 투자한다.

그렇다면 이제 자연의 이치에 따른 솔루션은 하나이다.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보다 인간에 봉사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장사하는 편이 더욱 기업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추상적인 윤리 관념 따위로 기업을 설득해보았자 소용없다. 기술이 인간에게 봉사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사용해야만 "더욱 돈이 된다는 것"만 보여주면, 동서고금의 씹선비들이 훈수 두듯이 기업인들을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씹선비들의 말은 옳지도 않거니와, 듣기에도 지루하니 말이다.

나는 인간을 대체하는 대신, 인간에게 봉사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편이 훨씬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을 실상에서 증명해 낸 도널드 노먼의 책 한 권을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도널드 노먼은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그의 철학에 반해서 그를 애플로 모셔왔고, 그는 얼마 전까지 애플의 부사장을 역임했다. 물론 그의 본분은 교수이며, 그는 사용자 경험(UX) 분야의 대가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디자인 철학의 핵심은 하나이다. 인간 중심의 디자인. 사용자인 인간의 경험을 최대한 행복하게 해주는 기술이야말로 정말 "돈 되는" 기술이다.

2020년 9월 현재, 애플은 전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다. 물론 디자인 철학 하나만으로 세계 1위의 기업이 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플이 최근 "웨어러블" 시장을 석권하는 것을 넘어서서 계속 창조하고 확장해나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보라. 웨어러블의 철학적 핵심은 무엇인가? 기술은 인간이 입고 다니는 것이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에 딱 맞게 제조되어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도구이다. 좀 더 웨어러블한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일수록,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결국 지갑을 여는 것은 기술이 아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 두려워하지만, 관념적인 논쟁을 벗어나 지금 나스닥에서 가장 승승장구하는 IT기업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애플이나 엔디비아, 테슬라가 제공하고자 하는 기술들은 결코 인간을 대체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에게 보다 높은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것을 약속하고, 실천하는 기업이다. 주가의 등락과 관계없이, 나스닥이야말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미래가 어디로 향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는가? 2020년 현재, 그린에너지와 디지털 메디케어, 반려동물 분야 등이 급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실제로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하는 기술들에 돈이 쏠리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필자는 일상의 "기계적인" 업무들을 향후 기계가 대체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 일은 "기계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계로 대체되어도 아무런 문제없는 일들을 인간이 해 왔다. 필자의 말이 다소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앞으로 기계가 해도 상관없는 일은 기계가 하게 될 것이다. 기계가 할 수 있는데 인간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향후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 개발을 막을 방법은 없다. 예컨대 맥도날드에 키오스크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키오스크 제조회사를 급습해서 시설을 파괴하거나 키오스크 생산량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정하는 일 따위는 실질적으로 무의미하다.

앞으로 정책 입안자는 기계가 해도 상관없는 일을 굳이 인간이 하도록 만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여하는 일을 멈추어야만 한다. 물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계적인 일을 하다가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하지만 기계적인 일을 인간이 계속하는데에는 한계가 있다.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을 부지런히 파악해서 그 분야의 인력을 양성함과 동시에, 인간 중심의 기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이와 같은 노력이 정말로 "돈이 되어" 재정 악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멀지 않은 미래에 의료보험 재정이 고갈될 것은 기정사실이다. 의료보험료를 높은 폭으로 인상시켜야만 최후의 심판을 겨우 "늦출 수 있다는" 점을 모두 인정하지만, 정치인들에게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이다. 어차피 누구도 해답을 낼 수 없기 때문에, 필자 또한 공상과학소설이나 하나 써보려 한다. 예컨대 암 관련 의료보험료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암 치료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기술의 발달 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쉽게 말해서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이 "덜" 아플수록, 우리는 의료보험료를 "덜" 내고 살아갈 수 있다.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는데 의료보험 비용은 계속 상승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금전적 부담 없이 제공되는" 의료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 이외에 어떤 답이 가능할 수 있는가? 물론 올바른 식습관을 포함한 건전한 라이프스타일이 예방의학의 핵심일 것이다. 또한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전사회적 요소들에 대한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예외로 한다면, 인간 친화적인 기술의 발달이 향후 국가 재정 문제에 큰 영향을 주리라는 점을 의심할 수 없다. 사실 이와 같은 점은 이미 많은 의학자들이 다루었을 듯하지만, 필자가 과문한 탓에 아직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두서없이 쓴 글이지만, 향후 고쳐쓸 수 있도록 일단은 남겨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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