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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방콕 여행기 (4)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아침.
오늘은 카민 버드 호스텔에서 나가 카오산 로드로 입성하는 날이다. 카민 버드 호스텔 길 건너 맞은편에 그 유명한 꽝 시푸드가 있다. 꽝 시푸드의 오픈 시간이 11시이고 호스텔 체크아웃 시간 또한 11시이기에, 나는 고승환과 함께 오랜만에 숙소 침대 위에서 오전 내내 뒹굴거렸다.

나이 든 남자들끼리 엠티를 가면, 뭔가를 막 하는 것보다 방안에서 뒹굴거리며 티비를 보고 마구마구 떠드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자주 깨닫곤 한다. 예전에 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새벽부터 바삐 움직였었다. 내가 아침형 인간이다 보니 일찍 일어나기도 했거니와, 휴가 기간이 짧아서 가만히 있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오전만큼은 뒹굴거리는 것이 좋다. 더욱이 방콕은 오전에는 할 일이 별로 없다. 밤 새워 논 뒤, 오전 내내 푹 자는 것이 내게 가장 어울리는 방콕 생활 패턴이다. 물론 수상시장이나 치앙마이 트래킹을 하려는 사람들은 새벽부터 이동해야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여행 패턴을 찾는 것이 단기 여행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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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동안 편안히 묵었던 카민 버드 호스텔을 뒤로 하고 꽝 시푸드로 향했다.

꽝 시푸드는 이번에 처음 방문했는데, 역시 소문대로 푸팟퐁커리 맛이 일품이었다. 남자 2명이 가서 푸팟퐁커리와 볶음밥, 굴 볶음과 맥주를 시켰는데, 개인적으로는 푸팟퐁커리와 맨밥만 있으면 남자 2인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집은 양이 엄청나게 많다. 껍질이 없는 것으로 small 사이즈면 성인 남성 2인에게 충분한 양이다. 볶음밥은 그 자체로도 양이 많고 맛있기는 하지만, 역시 흰 쌀밥이 푸팟퐁커리 본연의 맛을 보여주는 데는 제격이다. 아침을 굶은 남자 2명이 주문한 것들을 다 먹지 못하고 나왔다. 우리에게 굴 요리를 권했던 웨이터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좀 미안하기도 했다. 정말 맛있었다고. 하지만 배가 불러 터질 것 같은데 어떻게 먹냐!
택시를 타고 카오산로드로 이동해서 작년에 묵었던 호텔을 다시 찾았다. 거친 남자 두 명이서 여행하면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숙소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벌레가 있어서는 안 되고 기본적인 것들은 다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온종일 돌아다니다가 쓰러져 잠만 자는 여행 방식을 선호하는 이들에게는 1박에 2만원 미만의 방들도 나쁘지 않다.(물론 프로모션 가격이다. 정상가는 4만원이 넘겠지. 하지만 제 값을 주고 가는 사람은 바보다. 프로모션을 하지 않는 때가 더욱 드무니까) 이는 결코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빌 게이츠는 마트에 장 보러 갈 때에 할인쿠폰들을 모조리 챙겨가서 계산하는데 한참 걸린다고 한다. 내 자신이 쓸데 없다고 판단되는 곳에는 돈이 있더라도 쓰지를 않는 것이 올바른 소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호텔에서 힐링을 즐기고 호텔투어를 선호하는 이들은 마땅히 가격이 있는 고급호텔에서 자야 한다. 이는 여행 스타일의 문제이지, 돈의 유무 문제가 아니다.
택시를 타고 카오산 로드 끝자락의 버거킹 쪽으로 진입하는 도중에 방콕 시티 라이브러리를 보았다. 올해 4월에 오픈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이야. 호텔 체크인을 마친 뒤에 고승환과 함께 라이브러리에 가서 5시 15분까지 독서했다. 에어콘이 너무 세서 벌벌 떨기는 하였지만, 정말로 아늑하고 책 읽기에 좋은 분위기였다. 여행자들은 여권을 제시할 시 하루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연회원 이래봤자 한국 돈으로 1천원도 안 한다. <온워드>를 겨우 끝내고 이제 인러브 레스토랑으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평소에 책을 읽는 것이 업인 사람은 여행 가서는 책을 읽지 않는 편이 나은 것같다. 왜냐하면 몇 달에 한 번쯤은 머리를 통째로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이번 여행에서 배운 큰 교훈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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