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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8 홍콩 자가격리1일차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

우연히 기회가 닿아 2021년 9월 1일부터 11개월 동안 홍콩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홍콩은 백신 미접종자의 경우, 21일 동안 호텔 자가격리를 해야만 합니다. 8월 17일에 화이자 백신 1차 접종이 예약되어 있었지만, 결국 백신을 맞지 못하고 출국하게 되었습니다. 8월 8일에 홍콩 입국하여 29일 00시에 자가격리가 해제되면 홍콩 당국의 지시에 따라서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면 되겠습니다.  홍콩은 입국 당일을 day 1으로 계산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지요. 제 경우에는 23시에 홍콩 입국이었으므로 호텔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사실 민머리라서 쥐어뜯을 머리도 없습니다) 하루를 보내는 수고를 조금은 덜었지요. 


저의 안일함으로 인해 출국 하루 전날까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본디 홍콩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국가이지만, 코로나 시국이므로 엄격한 과정을 통해 비자를 발급받아야 했습니다. 제법 규모가 있는 여행사 직원이 잘못된 정보를 제게 제공한 까닭에, 저는 비자 신청을 상당히 늦게 시작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비자 신청에서 승인까지 두 달은 걸리는데, 딱 두 달 전에 시작했거든요. 홍콩 비자의 경우, 홍콩 이민국에서 비자를 승인해주면 비자 실물 스티커를 제가 근무하게 될 곳에서 수령하여 제게 항공우편으로 보내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실물 스티커를 제 여권에 부착해야만 비로소 인천공항에서 출국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출국 하루 전날인 8월 7일 오전, 제 비자 스티커는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반입도 되지 않은 채 하염없이 통관절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물류업체에서는 오후에 통관이 될지 확신할 수 없으니, 수시로 물류업체 사무소에 전화하여 통관이 확인되면 인천공항에 와서 직접 수령하는 방법을 권했습니다. 저는 도저히 집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무작정 인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심장이 빨리 뛰고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는 것이, 강제적으로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같이 민머리인 제이슨 스타뎀 주연의 <아드레날린>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오후 2시가 넘어서도 통관이 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저는 인천공항 KFC에서 트위스터 박스(6700원)를 주문하여 우걱우걱 씹으면서 하염없이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8월 8일에 출국하지 못할 경우, 항공권을 새로 구매하고 호텔 예약 또한 새로 잡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특수 상황이라 항공권과 호텔 비용은 원칙적으로 모두 환급불가 상품이었고, 게다가 제가 예약에 든 비용을 모두 포기하고 새로 예약을 시도하더라도 항공권이나 호텔에 여유가 있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특히 호텔의 경우는 홍콩 정부가 지정한 호텔에서만 격리가 가능한데, 대부분의 호텔은 예약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의미 없이 클릭을 반복하던 제 눈에 배송 상황의 상태 변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3시가 넘어 드디어 통관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천공항 셔틀버스를 타고 화물터미널 C까지 이동해서 비자 스티커를 직접 수령했습니다. 인천 국제공항 1 터미널과 화물터미널 C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으며, 저는 시골 여행하는 기분으로 찌는 듯한 더위 아래 황량한 풍경들을 즐겼습니다. 출국 하루 전날에서야 비로소 출국을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봉화산역 근처에서 있었던 저녁 약속에도 지각하지 않을 수 있었고, 귀가한 뒤 어느 정도 짐을 싸놓고 나서 저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었습니다. 


1년 가까이 해외에서 근무하게 될 사람이 출국 당일까지 짐을 다 싸지 않았다는 사실에 여러분들은 경악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엑셀 목록을 찬찬히 확인하며 8시쯤 짐을 다 쌌습니다. 그런데 낡아빠진 이민용 가방에 1년 치 살림살이를 모두 쑤셔놓고 끌어당겨보니, 도저히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사실 20년도 넘은 이민용 가방인데, 제가 또 안일하게 생각한 셈이죠.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중계역 2001 아웃렛에 가서 29인치 여행용 가방을 구입해서 돌아왔습니다. 짐을 완전히 싸고 나니 오전 11시. 12시에 동생 부부가 와서 점심을 함께 하고 인천공항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동생 부부가 아웃백에서 테이크 아웃해 온 요리를 어머니는 맛있게 드셨습니다. 결혼한 이후로 어머니께서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보신 적이 없으십니다. 작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신 뒤에도 저와 함께 둘이서 살았지요. 이제 노구의 어머니께서는 오랜 기간을 혼자 사셔야 합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싣고 떠나는 아들을 2층 집에서 배웅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인천공항까지 가는 길은 국지성 호우로 인해 흠뻑 젖었다가 바싹 말랐다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3시 반에 출발하여 5시에 제1여객터미널에 도착했고, 동생 부부와 저는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케세이퍼시픽 카운터는 17시 15분에 오픈되었는데, 코로나 관련 서류 작성 등으로 인해 매우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홍콩 입국을 위해서는 여권, 비자, 코로나 음성확인결과서(영문), 호텔 바우처 등 최소한 4개는 반드시 지녀야만 합니다. 인천공항이 텅텅 비었음에도 불구하고 6시 반이 되어서야 저는 수속을 마치고 탑승동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점심을 매우 헤비하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날부터 스펙터클하게 움직였던 터라,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던컨 도너츠에서 클럽샌드위치와 코카콜라를 주문해서 먹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역시 저는 완전 채식주의자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맥주를 무척이나 마시고 싶었지만, 홍콩에 도착해서 또 이런저런 검사를 받으면서 오래 대기해야 하기 때문에, 참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잘한 일 같습니다. 케세이퍼시픽에서는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포함, 과일과 생수, 샌드위치 등을 제공했는데, 저로서는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직원들도 친절했습니다. 다만 제 앞자리에 거짓말처럼 갓난아이가 앉아서 여행 시작부터 끝까지 울어댔습니다. 뭐, 갓난아기야 원래 우는 게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저녁 8시 15분에 출발한 CX419여객기가 23시에 홍콩에 도착할 때까지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은 제게 타격이 되었습니다. 홍콩으로 출국하는 인원이 적지 않았습니다. 기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감안할 때, 비행기 안은 꽉 찬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홍콩 국제공항에 내리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5시간가량 더 지나야 만 호텔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객기에서 내려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홍콩 정부에 자가격리 신고서를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가지만 해도 "Stay Home Safe" 앱을 의무적으로 깔고 위치추적 밴드를 손목에 차야 헀지만, 이제 그 규정은 없어진 듯합니다. 적어도 저는 하지 않았으니까요. 신고서 제출이 끝나고 나면, 안내에 따라 코로나 검사를 받으면 됩니다. 검사를 받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검사를 마친 뒤에는 2시간 내외로 결과를 기다려야만 합니다. 여행객들을 그룹으로 여럿 묶은 뒤, 그 그룹 전체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가령 케세이퍼시픽 항공을 타고 온 여행객들 가운데 1명이 양성 반응이 나와도 나머지 여객들 또한 입국이 제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팁을 하나 드린다면, 비행기에서 빨리 내리려고 달리거나 검사를 조금이라도 먼저 받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일은 의미가 없습니다. 어차피 마지막 1명까지 다 받아서 모두 음성 결과가 나와야만 다음 프로세스가 진행되거든요. 저는 여객기 안에서 나온 음식을 다 먹지 않고 일부를 챙겨두었습니다. 그랬다가 코로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구석에 가서 깨물어 먹었습니다. 홍콩 국제공항에서는 급속 충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 충전이 매우 빨리 되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이윽고 제가 속한 205 그룹이 모두 음성이므로 다음 프로세스로 이동하겠다는 사인이 떨어졌습니다. 이런저런 과정을 몇 번 더 거치면, 이제는 자기 호텔이 있는 지역별로 다시 여행객들을 그룹화합니다. 개별 숙소 이동은 불가하며, 고맙게도 홍콩 정부가 자가격리 호텔로 모셔다 줍니다. 제가 예약한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이 속한 그룹은 인원이 매우 적습니다. 그래서 다른 팀보다 훨씬 일찍 숙소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셔틀버스 직원들이 큰 짐들을 손수 옮겨주셨고, 저는 등에 메는 작은 가방 하나를 가슴에 안고 탑승했습니다. 

밤비 내리는 홍콩 시내를 하염없이 달려가다 보니 어느새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자마자 좁은 식당 문 비슷한 곳으로 곧바로 안내받아서 이동했기에, 호텔 전경 등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체크아웃하는 그날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가 묵은 숙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되겠지요. 직원이 주의사항을 빠르게 설명했지만 너무 졸려서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안내책자를 주었으니, 적힌 대로 따라 하면 되겠지요. 제 장은 25층에 있었습니다. 홍콩 하면 그래도 높은 곳에서 잘수록 전망이 좋아 이득입니다.    


제 룸에 들어서니, 널찍한 공간에 놓인 두 개의 침대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 이용객들은 홍콩 호텔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넓다는 것을 흔히 장점으로 말합니다. 저도 거기에 동의합니다. 침대가 2개이니, 나머지 하나는 21일 동안 짐을 올려놓는데 써야 하겠지요.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니, 모두에게 "객관적인" 호텔 리뷰는 없습니다. 저는 슬로 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며 간소하게 사는 사람이고, 불편하게 여행하기를 즐기는 성격입니다. 호텔 시설이 다소 낡았다거나 등의 불편은 제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선 제 소감을 말씀드리면, 적어도 첫인상은 제게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 호텔이 하루 480 홍콩달러(7만원)에 세 끼를 제공하는 가성비 호텔이라는 점을 우선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방은 넓었고 수납공간 또한 상당했습니다. 에어컨은 강했고, 제 방에서는 화장실 물도 잘 내려갔습니다.(화장실 수압이 약하다는 리뷰도 있었습니다.) 방음은 잘 되지 않아서 옆방에서 큰 소리를 내면 다 들렸습니다. 옆방에 부부나 연인이 있으면 상당히 괴로웠겠지만, 어린애가 있어서 앞으로 더 괴로울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홍콩 라이프에서 어린애의 존재가 계속 끼어드네요. 최근 홍콩 정부는 자가격리 호텔 창문을 여는 것을 완전히 금지시켰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고층 호텔 창문을 열어서 환기시킬 수 있었지만, 이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거금을 들여 창문이 있는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하더라도 이제 환기를 시킬 수 있다는 메리트는 없습니다. 21개의 물병이 주어지고 칫솔이나 치약, 샴푸 등은 쌓아놓았습니다. 물론 요구하면 더 가져다줍니다. 샤워타월은 기본적으로 4개가 있는데, 이 또한 요청하면 수시로 갈아줍니다. 에어컨 온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만 제가 해보니 온도가 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밤새 춥게 자서 다음날 아침에 상태가 좀 안 좋았는데, 잘 때에는 아예 끄고 자도 문제가 없을 듯합니다. 팬소리도 제법 크기 때문입니다. 방에서는 다소 낡은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만,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어떤 투숙객은 화장실에서 냄새가 올라온다고 했는데, 제 방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전기포트와 컵이 있기 때문에, 차나 커피를 끓여 드실 수 있습니다. 저는 21일 동안 열심히 감잎차를 마실 예정입니다. 빨래를 자주 하는 분들의 경우, 다이소에서 빨랫줄을 사서 가시면 좋습니다. 저는 이 안에서 거의 "자연인" 수준의 의복을 걸치고 살아갈 예정이므로, 빨래 거리도 매우 적을 것입니다. 홍콩은 한국 와 어댑터의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어댑터를 여럿 준비해서 오셔야만 합니다. 하나가 고장 나면 다른 것이라고 써야지요. 그리고 멀티탭도 함께 가져오면 좋습니다. 배달앱은 "우버 이츠"와 "푸드 판다" 모두 가능한데, 저는 일단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만으로 지내볼까 합니다. 저는 16:8 간헐적 단식을 살고 있으며, 하루 세 끼 제공되는 호텔 식사로 이와 같은 생활습관을 유지할 수 있는가가 제 큰 관건입니다. 결론을 미리 당겨서 말하자면, 아침에는 뜨거운 죽이 나오기 때문에 그 식사분을 점심때까지 놓아두었다 먹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식어서 맛이 없어지기도 하고, 환기가 안 되는 상태에서 음식을 계속 놓아두면 방안 공기가 더욱 탁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저는 일단 며칠은 배달 앱 없이 한 번 살아볼 생각입니다. 


이 글은 자가격리 2일 차에 작성한 것입니다. 8월 8일이 입국일인데, 호텔에 9일 새벽 4시에 들어왔으니 자가격리 1일은 그냥 그렇게 지나간 셈이지요. 앞으로도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해외의 생활이 그립거나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부족하나마 제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는 저와 비슷한 시기에 케세이퍼시픽을 타고 홍콩라마다 그랜드뷰 호텔에서 자가격리중인 분의 영상입니다. 지금 저와 같은 호텔 건물에 있겠군요. 초연결 사회의 힘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oI2AxnkOb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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