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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9 홍콩 자가격리2일 차

어제저녁 8시 35분(예정시간 15분보다 20분가량 늦게 이륙)에 출발해서 목적지인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 룸 침대에 몸을 던졌을 때가 새벽 5시. 너무도 피곤하여 제대로 씻지도 못한 상태로 쓰러져 잤지만, 아침에 눈을 뜨니 7시였습니다. 기껏해야 두 시간을 잤으니, 오전과 오후 내내 졸 것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막상 눈을 뜨니 다시 눕고 싶지 않아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킵니다. 베개를 감싸고 있던 비닐조차 벗기지 않고 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몸을 일으켜 방 안을 둘러보니, 여행가방 2개와 백팩 하나가 주인의 정리를 기다리며 방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일단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갑니다. 


제가 좀 둔하거나 무관심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홍콩 객실 안이 딱히 습하다고 느껴지지가 않네요. 그래서 아침과 저녁에 빨래 겸 해서 샤워를 두 번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했었습니다. 양말이나 속옷은 비누로 손빨래한 뒤 환풍기가 돌아가는 화장실에 널었는데, 24시간 내에는 거의 마르더군요. 입을 거리를 넉넉히 들고 가신 분들의 경우에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 21일 자가격리를 위해서는 한국에서 빨랫비누를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는 팁을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타당한 견해이며, 다만 본인의 21일 라이프스타일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에는 (절대 벌거벗지는 않지만) "나는 자연인이다" 스타일로 지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낼 예정입니다. 저는 기본적인 속옷 외에는 빨래 거리가 없어서, 그냥 한국에서 가져온 비누로 손빨래 중입니다. 그래도 제법 좋은 비누를 가져와서, 빨래하는데 쓰기는 아깝더군요. 앞으로는 호텔에서 제공되는 샴푸로 빨래를 해 볼 예정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원시인처럼 지내지 않을 분들은 빨랫비누를 반드시 소지하셔야 할 것입니다. 다이소에서 파는 빨랫줄도 유용합니다. 저는 속옷밖에 없는지라 빨래를 널 장소가 많이 있지만, 치마 등을 널기 위해서는 빨랫줄이 필요할 듯합니다. 


홍콩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의 경우, 와이파이가 약한 편입니다. 카카오톡을 이용한 보이스 채팅이나 화상채팅은 저의 경우에는 열 번에 한 번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메시지 채팅은 문제없습니다. 인터넷 검색이나 넷플릭스 시청 또한 문제없습니다. 줌 화상 회의의 경우, 두 사람이서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지만 6명이서 회의를 했더니 제가 수시로 로그아웃되어버렸습니다. 제 경우에는 업무 특성상 자가격리 기간 동안에는 일대일 화상회의 외에는 할 일이 없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업무상 많은 분들과 화상회의를 동시에 해야 하시는 분들께서는 유심 칩을 한국에서 구입해서 가시거나 다른 호텔에서 숙박하기를 권유드립니다. 저는 가족들 그리고 지인들과 줌 회의를 통해서 안부를 나누고 있습니다. 줌과 웹엑스 아이디가 모두 있는데, 웹엑스는 아직 써보지 않았습니다. 줌이 중국 회사라서 더 잘 되는 것은 아닐까 혼자서 망상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홍콩은 그런 규제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아마 제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는 제재가 강화될 수도 있겠지요.


2학기부터 홍콩중문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하게 된 제 후배는 8월 10일 00시를 기준으로 해서 자가격리가 해제됩니다. 저보다 한참 어린 후배이지만, 그 애는 말년 병장이고 저는 이등병 신세입니다. 그 친구 또한 라마다 계열 호텔에서 묵고 있는데, 라마다 계열은 세 끼 식사가 거의 동일한 듯합니다. 적어도 2일 차 아침 점심 저녁은 똑같았습니다. 이 글은 자가격리 3일 차 아침에 쓰고 있는데요, 식사량이 몹시도 부족하다는 점을 제 몸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저는 속을 비워내는 재주만큼은 대한민국 상위 1%에 해당한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하루 세 번 자연의 부름을 받아 화장실에 가서 앉곤 하거든요. 그 덕분에 살이 찌지 않기는 합니다. 그런데 홍콩에 와서는 화장실에 가지를 않았습니다. 먹은 것이 워낙 적어서 나오는 것도 없더군요.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결국 낮 시간에는 뭔가 주문해서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해봅니다. 16:8 간헐적 단식은 현재에는 호텔에서 정해진 시간에 세 끼 식사를 제공하는 터라 잠정적으로 중단 중입니다. 라마다 그랜드뷰 호텔의 경우, 아침식사는 08:00-09:30, 점심식사는 12:00-13:30, 저녁식사는 17:00-18:30에 제공됩니다. 아침식사를 먹지 않고 보관했다가 점심때 함께 먹는 것도 고려해보았지만, 결국 포기했습니다. 면 종류가 많아서 불어 터질 것이며, 따뜻한 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침 8시 반에서 저녁 5시 반 안에 식사를 마친다고 한다면 15:9 간헐적 단식이 되겠네요. 그 정도면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오후에 뭔가 든든하게 주문해 먹는 것은 고려해볼 만합니다. 


식사는 정시에 오지는 않고, 아침의 경우 8:30분 전후로 직원이 음식을 가져온 뒤 노크를 하고 갑니다. 그러면 그분이 완전히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제가 방문을 열고 가져오면 됩니다. 음식은 흰 봉지에 포장되어서 오며, 식사를 마친 뒤에는 다시 봉지에 식기를 넣은 뒤 단단히 묶어서 객실 바깥 바닥에 놓아두면 됩니다. 문고리에 봉지를 걸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닥에 놓아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직원이 수거해갑니다. 

식사 때가 되면 객실 문 앞에 놓인 흰 의자 위에 식사를 놓고 갑니다. 바로 전 식사 봉지를 아직 가져가지 않으셨네요. 여하튼 저 봉지 안에 담긴 것이 바로 제가 먹을 식사가 되겠습니다. 다 먹고 나면 바닥에 반납 물을 놓아두면 됩니다. 문을 열 때에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만 합니다. cctv 녹화 중이므로, 귀찮아서 소홀히 했다가는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격리 2일 차의 아침, 점심, 저녁 식사를 올려보겠습니다. 

아침 식사
점심 식사
저녁 식사


찍다 보니 갈수록 성의가 없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 식사의 경우, 환자들이 먹는 유동식에 가까운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고기 죽은 1시간 만에 꺼져 버렸지만, 달달한 앙금이 들어있는 저 흰 빵이 소화가 늦게 되어 그럭저럭 오전은 넘어갔습니다. 사실 새벽 4시에 에너지바 하나를 먹고 잤기 때문에, 아침 식사가 부실해도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점심 식사는 흰쌀밥+당근+양배추에 닭다리 졸임이었습니다. 이제야 홍콩에 왔다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 짜고 느끼한 음식에 펄펄 날아다니는 흰쌀밥. 한국에서 나물에 잡곡밥을 먹던 때가 그립습니다. 저녁 식사도 화면을 보시면 대충 감이 오실 것입니다. 진한 국물을 흰 밥에 끼얹어 천천히 씹으면서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 제 식사 풍경입니다. 제가 <워킹 데드>를 한국에서 시작해서 시즌 3회 중간까지 보고 홍콩에 왔는데, 홍콩 넷플릭스에서는 그 드라마를 제공하지 않네요.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 흰 빵의 속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콩 자가격리 기간 동안에는 호텔 창문을 여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때문에 환기 문제가 가장 크게 다가옵니다. 일단 가급적 넓은 공간을 제공하는 호텔을 고르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다음으로는 가급적 요리를 배달 주문하지 않으며, 주문할 때에도 향이 강한 음식들은 비추합니다. 왜냐하면 환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강한 음식 향은 빨래에도 배어서 속을 썩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초밥(미소 된장을 제외한) 세트나 햄버거 세트(프렌치프라이의 향도 약하지 않지요)가 좋을 듯합니다. 제가 홍콩 자가격리 후기들을 유튜브에서 즐겨 보는데, 정말로 다양한 음식들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창문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환기 이슈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국 자신의 선택이지요. 먹는 데 큰 취미가 없는 저는 사실 양만 넉넉하다면 호텔 식사로도 21일 동안이라면 별 불만이 없습니다. 문제는 양이 너무 적다는 것이지요. 숨쉬기 운동을 넘어선 맨몸 운동까지 하기 시작한다면, 호텔 식사만으로는 부족할 듯합니다. 


오후에는 줌을 통해서 마지막 스터디 모임을 가졌습니다. 스터디 모임이야 계속 진행되겠지만, 당분간 저는 참여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와이파이가 불안정하여 2시간 30분의 스터디 동안 4번은 튕겨져 나갔습니다. 데이터 전송량 문제인 것 같습니다. 화상 스터디를 위해서 갖추어 입었던 옷을 스터디가 끝나자마자 훌훌 벗어던졌습니다. 다시 베어그릴스가 된 느낌입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하기 전, 어메니티 가운데 남아도는 샴푸(저는 빡빡이라서 샴푸가 필요 없습니다)를 세제 삼아서 속옷 손빨래를 합니다. 거품이 너무 많이 나서 헹구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홍콩은 습하다지만, 객실은 습한 게 아니라 건조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호텔에 가면 방이 건조하다고 많이 느끼지 않습니까? 제 코 안이 바싹 마르는 것을 보니, 건조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빨래도 잘 말랐나 봅니다. 잠을 별로 자지 못한 까닭에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집니다. 가족 및 지인들과 짧게 줌으로 인사를 나눈 뒤 에어컨을 끄고 이불속으로 파고듭니다. 오늘까지는 푹 자고 내일부터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습니다. 복도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홍콩 직원들의 대화를 뒤로 하고 저는 어느새 꿈나라로 갑니다. 어디 있는가는 알 수 없지만. 

제 객실에서 내려다 본 홍콩 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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