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매일 기상하자마자 <메아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알이즈웰입니다. 벅차오르는 강렬한 기쁨을 주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고민중독 2.0"으로도 불리는 이 출근송은, 성탄절을 떠올리는 종소리와 함께 시작합니다. 그래서 아재 바위게(QWER 팬덤)인 저는 "<내 이름 맑음>과 <안녕, 나의 슬픔> 쌍두마차로 가을까지 인기 쌍끌이를 하다가, 크리스마스 시즌 한 달 전쯤부터 <메아리>를 내놓는 빅픽처"가 그려진 것은 아닐까 망상해 보았습니다. 적어도 저를 비롯한 바위게들은 이와 같은 로드맵을 환영하지 않을까요. 언제부터인가 길거리에서 캐롤이 사라진 대한민국. 웅장한 선율과 두드러진 건반 사운드까지 포함한 대곡 <메아리>를 들으며 저는 벌써부터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콩닥콩닥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아울러 QWER 메인 프로듀서인 이즈리얼(이동혁)의 능력에는 그저 감탄만 나옵니다. 그는 메인 보컬 이시연 목소리의 매력을 최대한 뽑아내는데 귀재입니다. 지난 주에 끝난 <주술회전>의 팬인 제게, 이즈리얼은 시요밍만의 "영역전개"와도 같습니다. 이즈리얼의 프로듀싱 안에서 그녀 음색의 매력치는 극대화되며, 듣는 이들의 심장에 "필중 효과(반드시 적중)"를 발휘합니다. 어떤 음역대와 발성, 속도와 리듬이 시요밍에게 가장 어울리는지, 이즈리얼만큼 정확히 아는 이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한편 이즈리얼을 위시한 작곡팀과 작사팀(김혜정, Elum 등)은 시요밍뿐만 아니라 냥뇽녕냥 히나 사용법의 대가입니다. 히나의 스쿨존 목소리는 언제나 QWER 노래 속에서 두드러진 임팩트를 줍니다. 데뷔 앨범 수록곡 가운데 <수수께끼 다이어리>의 "요~네?" 파트에서 그 가능성을 실험한 히나는 <소다> 도입부의 랩으로 전대미문의 스쿨존 창법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앨범의 <메아리>에서 "자꾸만 겁이 나서"와 "그게 더 어려운 걸" 두 파트를 맡았는데, 저는 처음 듣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메아리처럼 울렸다가 사라지는" 그 두 파트가 자꾸 머리에서 멤돕니다. 이번 앨범에서 바위게는 히나의 서로 다른 두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 이름 맑음>에서 그녀는 스쿨존 창법 대신 좀 더 어른스럽고 안정된 발성으로 "씹어 다 삼켰었는데~"라고 노래합니다. 반면에 이즈리얼은 그녀의 스쿨존 목소리를 그대로 살려 <메아리>에서 또 다시 매력적인 파트를 만들어냈습니다. 히나의 목소리는 "악마의 재능"이며 남다른 중독성을 지니고 있으니만큼, 앞으로도 다양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며칠 전 히나는 자신의 SNS에서 "메아리단" 단장 취임을 알렸습니다. 이에 따라 소다단이 고스란히 메아리단으로 이적했는데요. 사실 쇼케이스 당일에 있었던 "애프터파티"에서 히나가 최애곡으로 <안녕, 나의 슬픔>과 <메아리>를 꼽았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기 이전부터, 저는 이미 메아리단이었습니다.
요즘은 집을 나설 때 <메아리>로 시작해서 고막이 지칠 때쯤 <안녕, 나의 슬픔>을 듣는 "단짠단짠" 루틴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두 곡의 공통점은 또렷하고 강렬한 감정의 표출이 특징인 QWER의 매력이 극대화되었다는 점이죠. 참고로 여기서 "짠"은 소금맛이 아니라, "눈물을 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혼자 눈물을 질질 짜기엔 너무 청승맞아서, 바위게들과 밀폐된 공간에 갇혀 함께 짜보려고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콘서트를 찾았습니다.
9월 13일 당시, 저는 쇼케이스 예매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잊고 살았던 9월 28일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공연 예매가 아직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음날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9월 14일에 저는 예매를 마쳤습니다. 비록 QWER의 공연 시간은 50분이었지만, 제게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콘서트는 3시간 공연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바로 앞 순서가 "선우정아"의 무대였기 때문입니다.
QWER이 참여한 "2024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은 제게 다른 가수들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저는 선우정아를 잘 모르지만, 화면 속의 그녀는 장르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진정 자유로운 락커였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선우정아와 QWER 미니콘서트를 연속으로 볼 수 있게 되어 매우 들떴습니다.
한편 QWER 다음 순서로 공연 예정인 "이디오테잎"의 경우, 원래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들이 유명하고 뛰어난 뮤지션임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QWER 공연을 본 뒤에 또 다시 강렬한 EDM 라이브 퍼포먼스를 보게 되면 앞선 공연의 감동이 일찌감치 식을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디오테잎 공연 프로그램은 예약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9월 18일 QWER의 새 앨범 하이라이트 메들리에서 공개된 내용을 보니, <인트로>와 <아웃트로> 등 총 2곡이나 이디오테잎이 작곡했더군요. 그러면 또 안 들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곧바로 프로그램을 예약했습니다.
9월 28일 토요일! 저는 오전 업무를 마치고 점심을 배불리 먹은 뒤 집을 나섰습니다. 이 맑고 화창한 가을 오후! 누구의 덕택인가! "날씨의 요정" 시요밍! 아니, "맑음이" 히나! 엥? 아니…, 앞으로 날씨가 맑으면 누구 덕분이라고 제가 글을 쓰죠?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때 땀순이 타이틀을 시요밍에게서 가져간 히나가 이번에도 일을 복잡하게 만드네요. 막내즈 사이의 캐릭터 쟁탈전이 치열합니다.
이태원 역 근처에서 술을 자주 마셨고 경리단길을 가느라 녹사평 역을 자주 이용했지만, 한강진 역은 내릴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와서 보니, 이태원 지하철 역 삼총사 가운데 한강진 역이 가장 붐비더군요. 멋진 가을 날씨를 즐기며 콘서트 장까지 걸어가, 웰컴 킷(Welcome Kit)를 수령했습니다. 역시 대기업이 홍보용으로 기획한 문화 행사라, 배가 터질 정도로 굿즈를 제공하더군요. 상당히 퀄리티가 높고 디자인이 예쁜 티셔츠도 좋았지만, 무려 술을 두 잔씩이나 주더군요. 그 와중에 마른 안주(?)로 올리브영에서 달달한 비스킷이 나왔고, 저녁 때에는 시식용 치킨 또한 무료로 제공되었습니다. 신성하고 거룩한 QWER 첫 번째 미니 콘서트에서 바위게들이 술 취한 듯 뛰놀았던 것은, 정말 취해서였는가! 그런데 QWER과 같은 락밴드 무대나 이디오테잎 같은 EDM 공연은 좀 취해서 보는 편이 낫다고 솔직히 생각합니다. 덕분에 1시간 가까이 땡볕 아래 줄을 서면서도, 손에 든 테킬라 덕분에 지겨운 줄을 몰랐습니다.
오늘 제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집을 나설 때 히나xWMC 티셔츠를 입지 않고 별 생각 없이 반팔 회색 셔츠를 걸치고 나왔다는 것이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태원 구역에 넘쳐나는 히나xWMC 티셔츠의 물결을 보면서 크게 반성했습니다. QWER 공연 대기하는 과정에서 근처 누군가가 히나 티를 입지 않고 있길래 바위게가 아닌 음악 애호가라고 생각했는데, 슬쩍 보인 그의 스마트폰 바탕화면이 "쵸단"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꼬리를 말았습니다. 게다가 QWER 공연 훨씬 전부터, "인간 화환"들이 대로변에서 <가짜 아이돌>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머리띠와 몸띠를 착용하더군요. 바위게들, 정말 멋졌습니다. 아직 팬클럽이 결성되지 않은 바위게의 경우, 유니폼을 똑같이 맞춰 입는 대신 다양한 QWER 티셔츠를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골라입고 나오죠. 히나xWMC 티셔츠뿐만 아니라, 최근에 나온 후아유xQWER 콜라보 집업 후드나 맨투맨도 보이더군요. 훨씬 개성이 넘치고 다채롭죠. 지금껏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K-POP 팬덤 문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벌써부터 글이 말도 안 되게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선우정아" 공연 후기는 적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녀의 공연을 라이브 하우스에서 보면서, 50분 내내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제니스 조플린이 생각났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성 락보컬 중 한 명이었던 제니스 조플린의 그 고삐 풀린 야성이 세련된 21세기 스타일로 정제되었다고나 할까요.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그녀의 독무대는 제게 큰 음악적 기쁨을 선사했습니다. 이디오테잎의 경우도 그랬지만, 최고의 음향 시설을 갖춘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에서 듣는 뮤지션의 음악은 정말 차원이 다르더군요. 정말 최고의 무대였습니다. 게다가 QWER 공연 전에 무대의 크기 및 객석과의 거리, 음향 및 조명 등에 대한 감을 익힐 수 있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이 정도라면 비록 뒷자리라도 QWER 공연을 최고의 음향으로 근거리에서 즐길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이제 카메라를 QWER 공연 현장으로 옮겨봅시다. 저는 바위게들로 가득한 "언더스테이지"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군대 연병장에 온 줄 알았습니다. 남녀 성비가 그 정도로 또렷하게 차이 났습니다. 선우정아의 공연과는 달리, 남탕인 객석에는 일종의 비장함이 흘러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습니다. 다만 남녀 커플이 종종 보였고, 연령 대 또한 다양했습니다. 물론 저도 다양한 연령 대에 기여한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화재 시 대피 요령을 설명하는 직원의 무뚝뚝한 판토마임이 끝난 뒤, 드디어 QWER이 등장했습니다!
제가 그녀들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처음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위게들의 경우 팬 사인회나 생일 카페 때에는 그녀들을 더 가까이에서 볼 기회도 있겠지만, 그 때의 그녀들은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나 드러머가 아니죠. 이렇게 완벽한 조명과 음향 시설을 갖춘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에서 QWER이 팬들과 뮤지션으로 만나는 일이 당분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번 공연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느꼈습니다.
<해리 포터>와 관련된 썰렁한 성대 모사가 긴장을 풀기 위해 진행된 뒤, 곧바로 첫 곡이 시작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번 타이틀곡인 <내 이름 맑음>이었습니다. 직전 공연인 서울과기대 축제에서 엔딩 곡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오프닝 곡으로 등장했습니다. 아마 키보드 이슈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히나는 이 곡의 건반 연주를 제외하곤, 줄곧 기타를 잡습니다. 이 때문에 첫 곡에서 키보드를 연주한 뒤 그 악기를 치우고, 이후에는 무대를 넓게 쓰며 메인 기타 역할을 수행하는 편이 낫겠지요. 이런 점 때문에, 일부 바위게들은 "펩시 페스타"에서처럼 히나가 메인 기타를 맡고 시요밍은 보컬에만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저는 또 다른 이유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즈리얼(이동혁)이 참여하지 않은 <내 이름 맑음>은 현재까지 QWER 유일의 이지리스닝 계열 음악입니다. 이즈리얼 음악의 특징은 악기 편성이 다양하고 곡 전체가 꽉 차 있으며, 무엇보다 감정선이 매우 뚜렷하다는 점에 있습니다. 극도의 기쁨은 <고민중독>과 <메아리>가, 슬프고 애절한 감정은 <별의 하모니>와 <안녕, 나의 슬픔>이 각각 맡고 있죠. 그리고 감정선이 굵고 뚜렷한 곡들은 뮤직 페스티벌에서 청중의 감정을 큰 폭으로 출렁이게 만들 수 있다는 특징이 있죠. 반면에 이지리스닝은 말 그대로 "편안하게 듣는" 음악입니다. 이 때문에, <내 이름 맑음>은 갈수록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콘서트의 대미를 장식하기보다는 첫 스타트를 끊는 역할이 현재는 어울린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딩고 뮤직> 라이브에서 악기 소리가 강조되면서 음원보다는 훨씬 밴드 음악다워졌고, 다빈치 모텔 라이브 무대에서도 날것의 맛이 확 살아났습니다. 시요밍의 라이브 음색 또한 음원과는 다른 본연의 락 보컬 맛을 더했습니다. 라이브 연주 횟수가 늘어나면서 밴드 색깔이 더욱 진해지면, <내 이름 맑음>의 라이브 무대 마무리 투수 지위가 되살아날 듯합니다. 누가 뭐래도 <Algorithm's Blossom> 앨범의 타이틀곡은 <내 이름 맑음>이니까요.
<내 이름 맑음>은 앨범 발표 이후에도 "음원용"과 "공연용"으로 나뉘어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며 계속 진화 중입니다. 팬덤픽이 아닌 대중픽의 특성상 출퇴근이 없는 주말에는 성적 하락이 예상되었지만, "왕이 될 상"인 <내 이름 맑음>은 9월 29일 일요일 저녁에 보란 듯이 기어코 멜론TOP100 차트 6위로 올라섰습니다. 믿을 수 없이 빠른 추세이며, 빠와 까 모두를 미치게 만드는 슈퍼스타의 행보를 <고민중독>에 이어 또 다시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적의 4월에 이어 기적의 10월이 펼쳐지겠군요. 초동 성적으로 몰아쳤다가 확 빠지는 대신, 차근차근 계단식 상향을 보여주는 QWER 타이틀곡 차트 행보는 도파민 축제 그 자체입니다.
한편 또렷한 감정선 중심의 이즈리얼 스타일 세트리스트(setlist) 전개가 이번 콘서트 후반부로 갈수록 두드러졌습니다. 오늘 세트리스트는 정말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내 이름 맑음> 다음에 (바로 전 공연 앵콜곡인) <디스코드>가 나오고, 다시 <가짜 아이돌>이 이어졌습니다. 라이브로 들었을 때 흥과 감동이 배가 되는 <가짜 아이돌>은 <고민중독> 못지 않게 팬들이 따라 부르는 구간이 많습니다. 제 오른쪽에 QWER 팬이 아닌 것이 분명한 제 또래의 여성 분이 계셨는데, <가짜 아이돌>에서 바위게들이 "하, 하하, 하하하!"하고 똥배를 쓰다듬으며 웃어 젖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습니다. QWER 라이브 무대에서는 <고민중독>만큼이나 팬들의 호응이 뜨거운 명곡입니다. 오죽하면 열성 팬들이 복장까지 뮤직비디오처럼 갖추고 나왔겠습니까. 그래, 짭돌아! 이만 하면 됐다!
<가짜 아이돌>에 이어 <자유 선언>과 <지구 정복>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기존 축제 공연과 유사하게 흘러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QWER은 다시 세트리스트 중간에 <안녕, 나의 슬픔>을 넣음으로써, 어설픈 제 예상을 뒤집었습니다. <안녕, 나의 슬픔>은 직전 공연인 서울과학기술대 축제에서 파이널을 장식했던 "막타"죠. 오늘 공연이 끝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벌써 <안녕, 나의 슬픔>을 꺼내들면 이후로는 무엇을 부를 작정이지? 설마 <메아리>나 <사랑하자> 라이브 연주 최초 공개!? 하지만 그 곡들은 "아, 아, 아직은 준비가 안됐다구요!"
<안녕, 나의 슬픔> 연주가 끝나자, 감정이 북받친 마젠타는 기어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코가 퉁퉁 부은 상태로 울먹이는 그녀에게, 모태솔로임이 분명한 바위게들이 "울면 코 커져요!"라고 위로(!)의 말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모아희단인 저는 <안녕, 나의 슬픔>을 이처럼 가까이에서 라이브로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질 않았습니다. 너무 감동을 받으면 오히려 눈물이 나지 않는구나, 하는 점을 이때서야 피부로 느꼈습니다.
한편 억울한 일이 아니고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냥뇽녕냥 "T나"는 관객석을 "T존"과 "F존"으로 나누었는데요. 놀랍게도 그녀 앞쪽에 T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죠. 히나 팬들이 그녀를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그 쪽에 많이 쏠렸을 테니까요. 그리고 보통, 팬은 가수따라가더라고요. 아니나다를까, 마젠타 쪽에는 눈물이 맺힌 거구의 바위게들이 그녀를 슈렉 고양이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중앙 뒷편 "외야석"에 서서, 이 모든 드라마를 즐기고 있었죠.
한편 QWER은 이날 야구 배트를 어깨에 얹고서, "이래도 너희가 안 울어!?"라고 몰아붙이기로 작정한 모양새였습니다. <안녕, 나의 슬픔>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전혀 예상치 못하게 <별의 하모니>가 울려퍼졌습니다. 저의 변함없는 최애곡! 하지만 고죠 사토루에게 무량공처를 맞은 마히토처럼, 저는 우는 대신 꼼짝 못하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끝이 아니었습니다. QWER "감성 발라드 라인" 삼총사 중 하나이자, 제가 정말 아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서 최근에 듣기 어려웠던 <대관람차>가 나왔습니다. 앵콜을 제외한 오늘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대관람차>였습니다! 이거 실화냐! 사실상 첫 번째 단독 콘서트였던 이 날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곡이 <대관람차>라고!? 그것도 발라드 삼연타!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사실 <대관람차>가 맑고 서늘한 가을 밤에 가장 어울리는 넘버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신나게 몸을 흔들었습니다.
<주술회전>에서 료멘 스쿠나의 복마어주자에 조복당한 마허라처럼, 바위게들은 언더스테이지 공연장이라는 영역 안에 갇혀 "감성 발라드" 술식을 유성과 소나기처럼 계속해서 얻어맞고 결국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제 슬픔이란 감정을 죄다 비워냈으니, 다시 극도의 기쁨으로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발라드 삼총사 사이에서도 먹먹함의 농도 차이가 있습니다. <안녕, 나의 슬픔>이 노골적으로 슬픈 곡이라면, <별의 하모니>는 슬프다기보다는 아련합니다. 그리고 <대관람차>는 아련하기도 하지만 앞선 두 곡보다도 밝습니다. 이런 식으로 세트리스트는 슬픔이 옅어지는 만큼 희망과 기쁨이 서서히 짙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제 "기쁨이"가 대미를 장식할 순간이 왔습니다. 휴, 바위게들과 함께 질질 짤 뻔 했는데 무사히 잘 넘겼네!
무대 위에 <고민중독>용 확성기를 미리 비치해 놓고서도 <대관람차>를 끝으로 무대를 퇴장했던 QWER은, 우뢰와 같은 앵콜 요청에 못 이긴 척 다시 무대로 나왔습니다. 그 뒤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고민중독>은 더 이상 가수의 공연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손발을 가만히 두어야 하는 곡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위게들이 점프하며 따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죠.
최종적으로 QWER의 9월 28일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언더스테이지 공연은 크나큰 열광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무대를 떠나기 전, 다정다감한 마젠타는 바위게의 스마트폰을 받아서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QWER은 무대가 끝난 뒤에도 쉽사리 자리를 뜨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굿즈를 던지거나 드럼스틱을 나누어 주는 등, 팬들에 대한 사랑이 확실하죠. 특히 냥뇽녕냥 히나는 공연 중에는 마젠타-시요밍 개그 듀오에 비해 말을 아끼다가, 공연을 마친 뒤 퇴장할 때 팬들을 한번씩 조련하고 갑니다. 아마 무대에 집중하고 난 뒤 긴장이 풀려서겠죠. 저도 그녀들과 함께, 개운한 감정으로 언더스테이지 공연장을 떠났습니다.
이날 저는 프로그램을 두 개 더 봤습니다. QWER 공연 다음에 이어진 이디오테잎의 무대를 코 앞에서 즐겼는데요. 솔직히 그 그룹이 참여한 여러 곡들을 들어보았을 뿐, 라이브 무대를 접할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이디오테잎 공연을 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일날 뻔 했습니다. 첫 인사나 끝 인사, 중간 무대 멘트도 없이 50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린 그들의 퍼포먼스에, 저는 그만 혼이 홀딱 나가서 미친 듯이 흔들었습니다. 현장에서 드럼을 저렇게 부술 듯이 무자비하게 치는 광경을 처음 봤습니다. 음원으로 들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들의 위력을 현장에서 확인했습니다. 정말 50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을 정도로 극락을 경험했습니다. 절대로 공연장 내에서 제공되었던 헤네시 하이볼 때문이 아닙니다.
참고로 그곳의 바텐더가 술을 참 잘 말더군요. 대다수의 국내 하이볼 술집들은 위스키를 워낙 조금 넣고 달달하게만 만들어 놓아서, 술을 즐기는 제 입장에서는 입맛 버리는 기분이거든요. 어제 마신 하이볼은 위스키를 아낌 없이 넣은데다 달지 않고 깔끔해서 참 좋았습니다. 물론 저도 쵸단처럼, 하이볼보다는 아무것도 섞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편을 선호합니다.
저는 이날 총 4개의 프로그램을 예약했는데요. 마지막 순서는 패션 브랜드 엠부쉬(Ambush)의 공동 창업자인 한국계 미국인 윤 안(Yoon Ahn)의 대담이었습니다. 패션에 대한 관심이 평소에 있기는 했지만, 저는 "윤 안"이라는 분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일본 힙합그룹 엠플로(M-Flo)의 래퍼인 한국계 일본인 버벌(verbal)과 부부 관계라는 사실에 꽂혔습니다. <Miss You>로 한 때 한일 양국을 사로잡았던 엠플로. 그런데 그 엠플로가 이번 "2024 원더리벳 페스티벌"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QWER 또한 그 페스티벌에 초청된 뮤지션 가운데 하나죠. 게다가 엠부쉬는 얼마 전 내한했던 칸예 웨스트가 사랑하는 브랜드이기도 하죠. 그런데 칸예 웨스트는 AI의 뒤에 숨어 <내 이름 맑음>을 커버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그리고 칸예 버전의 <내 이름 맑음>, 뜻밖에도 정말 좋습니다! 배기성 버전 버금 갑니다! 우리 이지(Yeezy), QWER과 콜라보 가는거야? 청순한 칸예는 못 참지! 하지만 안 돼. QWER이 얼마 전에 아디다스랑 협업했거든.
아무튼 윤 안 디자이너가 QWER과 어떻게든 엮이는 것을 보니, 그녀의 토크쇼를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시간 대의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몰린 것으로 보아, 그녀의 유명세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그녀의 업적을 나열하는 대신, 그녀만의 소신 및 철학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는 시간이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Q&A 내용을 보니, 그곳을 찾은 청중에게도 그런 점은 관심사가 아니었던 듯합니다.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제가 궁금하면 직접 찾아봐야죠. 11시가 가까워서도 여전히 불야성인 한강진 밤거리,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저는 귀가했습니다.
콘서트가 하고 싶다는 QWER 멤버들의 멘트가 SNS에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저는 이번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공연이 "단독 콘서트 테스트 버전"라고 생각했습니다. QWER은 이번 미니 콘서트에서 총 9곡을 소화했습니다. 드러머 쵸단은 공연이 끝난 뒤 진행했던 3시간이 넘는(!) 개인 방송에서 '전완근이 퉁퉁 부었으며, 앞으로 체력을 더욱 길러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메인 보컬인 시요밍이나 여타 악기 연주자들 또한 이번 미니 콘서트를 통해 단독 콘서트 무대의 감을 익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통상적인 콘서트에서는 9곡이 아닌 18곡 이상을 하죠. 육상 200m와 400m는 전혀 다른 종목입니다. 단순히 거리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죠. 향후 있을 단독 콘서트 또한 이번 미니 콘서트를 2배로 늘린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어려움, 예기치 못한 이슈들이 있겠죠. 세트리스트를 자꾸 조정하는 것 또한, 단독 콘서트에 가장 적합한 최종 리스트를 꾸려 나가는 과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QWER은 멋진 모습으로 바위게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한편 저는 QWER 유니버스에서 바위게의 유별난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곱씹어보게 되었습니다. 바위게는 기존의 아이돌 팬이나 밴드 팬 어느 누구와도 다릅니다. QWER 멤버들은 개인 및 단체 방송을 많이 하고, 여러 가지 병맛 개그와 농담 및 조롱을 일삼습니다. 코어 팬덤 또한 그런 내용들에 익숙한 나머지, 유튜브 라이브 실시간 댓글창에 글을 쓰듯 농담을 QWER에게 던집니다. 가령 "베이스 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멘트는 소속사 PD 빙튜브부터 시작해서 바위게들 모두가 베이시스트 마젠타에게 치는 장난입니다. 그녀는 이 짓궂은 남자 놈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하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베이스 소리 잘 들린다! 마젠타 화이팅!"이라고 굵은 목소리로 병 주고 약 주는 이들 또한 바위게입니다. 대인배인 마젠타는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웃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QWER 콘서트는 그런 밈(meme)을 공유하고 있는 가수와 팬 사이의 거대한 소통의 장입니다. 초소형 기획사를 통해 데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가수와 팬덤 사이에 이렇게까지 끈끈한 정이 흐른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김계란과 QWER은 데뷔 당시, 연말 게릴라 콘서트에서 팬들과 함께 하는 것을 목표로 했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단기 프로젝트의 성격이 강했으므로, 게릴라 콘서트가 사실상 활동의 마지막이라고 많은 이들이 이해했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겨우 1년이 지났지만, 지금은 얼토당토 아닌 이야기로 들릴 지경입니다. 게다가 김계란이 얼마 전에 QWER 게릴라 콘서트를 꼭 하고 싶다고 말했던 만큼, 올해가 가기 전에 뭔가 예정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제게는 이번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 콘서트가 애초에 목표했던 팬들과의 게릴라 콘서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QWER과 바위게가 중심이 되어 단독 공간에서 진행된 콘서트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현대 카드 다빈치 모텔 콘서트" 등 지금까지 총 2개입니다. 전자의 경우 "밴드로서의 QWER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높았던 반면, 이번 공연은 훨씬 편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바위게들과 즐겼던 것 같습니다.
QWER은 더욱 높이 날아올라야 하는 만큼, 지금은 소극장보다는 대형 페스티벌에 자주 모습을 보일 때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훗날 국민 걸밴드로 인정받고 연륜이 쌓이면, 김광석이 대학로에서 "1000일 공연"을 했던 것처럼 소규모 라이브 하우스에서 바위게들과 자주 만나는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그 때가 되면 대학로에서 근무하는 저는 약속 없는 평일 저녁에 오랜 친구를 만나듯,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그녀들의 공연 무대를 찾고 즐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