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에서 24일(목)까지 무려 4일 동안이나 공식스케줄이 없었던 QWER은 에너지를 풀 충전한 상태로 10월 25일 [광양 K-팝 페스티벌]에 참여했습니다. 대규모로 펼쳐진 이 공연을 접한 바위게(QWER 팬덤)들은, 그녀들의 팬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고죠 사토루의 허리를 두동강낼 정도로 날카로운 여자 익룡의 목소리가 남자 두꺼비들 목소리 못지 않게 시공간을 찢고 울려퍼졌습니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귀여운 "~언니!" 목소리가 유독 많이 들렸습니다. QWER 메인 프로듀서인 이동혁(이즈리얼) 곡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쉽고 무해한 한글 가사에 유독 꽂히는 몇몇 단어들, 그리고 신나는 리듬입니다. <소다>의 도입부는 물론이요, <가짜 아이돌>의 "하, 하하, 하하하!", <고민중독>의 "너를 많이 많이 좋아한단 말이야!", <디스코드>의 "We are! We are!" 등은 이제 QWER 팬이 아닌 불특정 다수가 모인 공연장에서도 쉽게 떼창을 들을 수 있는 파트입니다.
아울러 인기 있는 가수를 현장에서 볼 기회가 적은 지방의 경우, 뮤직 페스티벌의 호응도가 수도권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습니다. 가령 10월 17일에 있었던 마산대학교 청우대동제의 경우, <고민중독>뿐만 아니라 <디스코드> 떼창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게 울려퍼졌습니다. 마산대학교 축제에서의 QWER 인기는, [고려대학교 입실렌티]나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등 바위게들이 최고로 꼽는 공연들보다 훨씬 더 높았습니다. 솔직히 단독 콘서트가 아닌 상황에서 <디스코드> 떼창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광양 K-팝 페스티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초등학생들의 앳된 목소리가 그렇게 많이 울려퍼졌으니만큼, 아이들을 이 복잡한 장소에 데리고 오느라 낑낑대었던 부모들의 마음도 어느 정도 풀렸으리라 예상됩니다. 제일 좋은 것은, 그냥 부모님들도 바위게 하세요!
광양에서 수도권 숙소까지 오는데 시간이 꽤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QWER의 리더 쵸단은 귀가 후 트위치 방송을 켰습니다. QWER이 쵸단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요. 그녀는 사실 팀 내에서 가장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냥뇽녕냥 히나는 8월 중순부터 각성해서 특유의 "인싸" 바이브를 뿜어내고 있지만, 쵸단은 여전히 매사가 조심스럽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의 매력이기도 하죠. 다만 <내 이름 맑음> 활동 이후로 그녀는 한껏 밝고 수다스러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드럼을 맡은 쵸단이 악기 배치 상 "보이지 않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공연에서 인기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특히 초등학생 사이에서 쵸단의 미모는 레전드인 듯합니다. QWER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2024년 초에 그녀들은 일본 여고생들과의 인터뷰 영상을 찍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일본 여고생들은 쵸단의 미모를 찬탄했습니다. 일본 여자 중고생들의 로망은 "운동 잘하는 여자 센빠이"죠. QWER이 일본에 진출해 예능에서 활약하게 된다면, 만능 체육인인 미녀 쵸단은 "보이지 않는 자"에서 "누구보다 잘 보이는 자"로 격상되리라 확신합니다.
아울러 이날 쵸단은 마젠타 언니에게 '어떻게 하면 멋있게 방송을 종료할 수 있는지' 컨설팅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급방종(급히 방송을 종료)"의 달인은 마젠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노래 부르는 "우타히메(歌姬)" 쵸단이 좋기에, 앞으로도 방송에서 더욱 많이 노래를 계속 불러주었으면 합니다.
2024년 10월 26일은 여의도에서 [아시아 송 페스티벌]이 있었던 날입니다. 1차 예매에서 보기좋게 실패했던 저는 2차 예매에서 꿈에 그리던 티켓을 획득했습니다. 이야기를 좀 앞서가자면, 티켓을 예매하지 못하고 현장 발권에도 실패한 분들께도 나중에 입장 기회가 주어졌습니다(자리가 남았기 때문이죠). 문체부에서 주관하는 무료 공연이라, 그다지 빡빡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니, 참고 바랍니다.
여의나루역 근처에서 주말 점심 모임 중이던 저는, 3시가 조금 넘어 [아시아 송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옷을 얇게 입고 온 터라, 한겨울 방한 조끼까지 빌려 입고 중무장을 한 채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무대까지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흥행 중인 <기동전사 건담: 복수의 레퀴엠>에 나오는 "자쿠" 같았죠. "건담"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또 너드(nerd)처럼 마구 지껄이고 싶어 손가락이 달싹대지만, 꾹 참기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제 건담 사랑은 퍼스트 건담에서부터 <더블제타 건담(ZZ건담)> 및 동 시기의 OVA까지만 해당되므로, 건담 신규 팬들에게는 골방 늙은이나 다름없습니다. "클래식은 영원하다!" 건담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인 <제타 건담(Z건담)> 실사판이 넷플릭스에서 나올 때까지, 숨을 참기로 하겠습니다.
인터넷으로 무료 예매가 가능했지만 입장 순서에 따라 좌석이 정해지는 만큼, 오전부터 길게 줄이 늘어섰다는 정보를 접했습니다. 2시부터 선착순으로 자리가 정해지는데도 말이죠. 저는 애초에 뒤에서 느긋하게 볼 심산이었기 때문에, 3시 반 즈음에 도착하여 1,200번대 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돌계단에 앉아 관람하는 형식이었기에, 시야가 충분히 확보되어 아주 좋았죠. 이날 좌석 배정에서부터 실제 착석까지, 진행 방식에 다소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고성이 오가기도 했죠.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던 [현대카드 다빈치 모텔]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야 3시 반에 와서 5시 20분쯤 착석했으니 2시간만 기다렸지만, 오전부터 온 관객들은 진이 빠질 만 했습니다. 내년부터는 개선되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2시간 동안 잭 케루악의 <다르마 행려>를 읽으면서 기다렸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쾌거에 힘입어, 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문학이라는 오래된 장르에는 다양한 주제가 있는데, 저는 그 가운데 "여행"이라는 테마를 참으로 좋아합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와 <다르마 행려>는 20세기 배낭 여행 문학의 정점이며, 60년대 미국의 히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저런 설명들은 사실 구차합니다. 잭 케루악의 소설은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상기한 두 책의 번역본이 모두 민음사에서 나왔는데, 잭 케루악을 유명하게 만든 책은 전자이지만 저는 후자를 좋아합니다.
오늘날 예술이 실패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최근의 디즈니처럼 자꾸 "가르치려 든다"는 것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있더라도 예술이라는 형식 속에 자연스레 녹여야 하는데, 오늘날에는 대놓고 훈계하려 듭니다. 그 와중에 재미도 없죠. "다르마 행려"라는 제목에서 보이듯, 저 소설의 주인공은 힌두교나 불교의 고행자처럼 자아를 찾아 여행을 떠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여행길이 굉장히 스펙터클하고 즐겁습니다. 진지한 주제를 흥미로운 형식으로 구현한, 이른바 성공한 문학의 본보기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작가인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종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서구 작가들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책꽂이에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꽂아 두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일갈했죠.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진지한 사회 문제를 재기발랄한 문체와 형식에 담았습니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성공한 문학은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읽다가 지겨운 작품의 경우, 그냥 읽지 않으면 됩니다. 그 소설의 "사회적 위상"에 짓눌리지 말고 말입니다.
한때 문학소년이었던 제게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여행 문학은 많이 있으되 "축제 문학"이 드물다는 점입니다. 종교적이나 사회적인 의미가 없는 순수 음악 축제의 경우, 방에서 조용히 독서하기를 좋아하는 작가들의 관심사가 아직까지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 듯합니다. 축제 문학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가 직접 축제를 즐겨야만 하는데, 내향성이 짙은 대다수 작가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죠.아무쪼록 21세기를 사는 문학 소년과 소녀들은 과거의 한정된 주제에서 벗어나, 좀 더 자기 시대의 대중에게 친숙한 주제를 문학으로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 QWER 덕분에 강제로(?) 전국의 모든 축제를 접하고 그 분위기와 감동을 체험한 바위게들이 미래의 문학 꿈나무입니다.
5시 20분쯤 착석한 저는 운이 좋게도 QWER의 리허설을 처음부터 앉아서 볼 수 있었습니다. 뛸듯이 기뻐서, 리허설 사진 몇 장을 노원K 선배에게 전송했죠. 부산에 가 있는 선배 또한 매우 만족했습니다. 물론 본 공연은 훨씬 뒤에 있었지만 말이죠. 그녀들의 리허설 장면은 처음 보았는데, 앞열 팬들과 소통을 하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습니다. 그녀들의 무대 착장이 미리 확인되었는데, 이 쌀쌀한 날씨에 춥지는 않을까 아재 바위게는 걱정이 생겼습니다. 봄과 가을이 사라진 대한민국, 이제 화창한 가을 날씨라는 표현 또한 옛말입니다.
오늘은 가수당 2-3곡 연주가 예상되었으니만큼, 새로운 레퍼토리가 등장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QWER 덕분에 축제 경험치가 쌓이면서, 이제는 그녀들뿐만 아니라 다른 가수 및 축제 자체의 특성을 즐기는 데에도 관심이 미쳤습니다.
[아시아 송 페스티벌]은 문체부가 주관하며 2004년부터 계속된 유서 깊은 축제였습니다. 사실 계단에 착석하기까지그 사실조차 몰랐지요.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등장했던 가수들의 면목을 보니, 당대에 유명했던 K-팝 뮤지션들이 대거 출연했더군요. 이런 큰 자리에 QWER이 초대되었다니, 참으로 영광이었습니다. 아울러 2024년 현재 멜론TOP100 차트 10위 안에 든 걸그룹 중 드물게 "남초 팬덤"인 프로미스나인과 QWER이 축제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데뷔 7년차인 프로미스나인은 올해 <슈퍼소닉>의 흥행으로 더욱 빛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여의나루 물빛무대 객석은 프로미스나인의 팬들로 가득 찼습니다. 바위게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죠.
판소리에 락을 결합한 독특한 음악을 보여준 "심상명 밴드"를 필두로 붐업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적인 락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상 깊은 무대여서, 귀가 후에도 그들의 공연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래서 페스티벌을 자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멋진 뮤지션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리고 본격적인 1부 공연의 커튼은 "바밍 타이거(balming tiger)"가 열었습니다. 사실 이름만 들었지, 그들의 음악이나 공연을 접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밍 타이거의 무대는 제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멋졌습니다. 딱 제 취향이었죠. 음악 간 경계를 허물며, 병맛을 가미하면서도 전혀 허술해보이지가 않은 독자적인 음악 세계! <카메카메하>에서 흐느적 흐느적 춤사위를 펼치며 "Soju, beer, whiskey 독한 걸로 다 가버렷! 다 드루와, 사양 말고 자 마셔!"라고 읊조리는데, 이거 진짜 제 스타일이었습니다. 전부 양복을 빼입었지만, 맛탱이가 간 눈빛 연기로 종합 예술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째 곡인 <섹시느낌>은 무려 BTS의 RM이 피처링했더군요. 물론 RM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의 "섹시하지 않은" 병맛 퍼포먼스에 저는 그만 홀딱 반했습니다. 마지막 곡인 <부리부리> 또한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비록 바밍 타이거가 자기 취향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독창적이라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이래서 또 하나의 멋진 뮤지션을 알아갑니다. 이날 2부 공연을 달궜던 필리핀 밴드 "다이오넬라"와 더불어, 오늘 제 가장 큰 음악적 수확이었습니다.
이어서 등장한 자메이카의 자릴(Jah Lil)은 그 출신상 "밥 말리"와 떼어놓고 소개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밥 말리와 관계없이, 그 젊은 뮤지션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타고난 리듬감에 몸을 맡긴 채 20세기 풍사랑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고 아련했죠. 인도네시아의 아프간과 태국의 윔은 정말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잘 생기고 음악적 역량이 탁월했습니다. 아프간은 크리스 브라운 스타일의 퍼포먼스를 보여준 반면, 윔은 그야말로 만찢남 포스로 부드럽고 유려한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베트남 미앙의 독특하고 맑은 목소리 또한 매우 듣기에 좋았습니다.
한편 "바밍 타이거"와 함께제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은 또 하나의 뮤지션이 있었으니 바로 필리핀 밴드인 "다이오넬라"였습니다. 솔리드 김조한의 살찐 버전인 보컬은 김조한 이상의 미성을 뽐내며 무대를 완전히 사로잡았습니다. 악기 멤버들의 연주 실력 또한 출중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확실히 무대를 즐겼습니다. 영상에 한글 자막이 깔리지 않아 가사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쏟아내는 엄청난 음악적 바이브만큼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대표곡인 <Sining>이 여전히 머리 속을 맴도는데요. 주최 측에서 공연 영상을 업로드해주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이어서 나온 토미오카 아이의 무대에서부터, 객석은 점점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젊은 층에 제법 알려진 가수가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게다가 QWER과 프로미스나인의 공연이 뒤따를 예정이었습니다. 2024년 초 일본을 방문했을 때, 시요밍이 가창 대회를 2번이나 했던 공연장에서 QWER은 토미오카 아이의 <Good Bye-Bye>를 커버했습니다. 바위게들 중에는, 토미오카 아이의 원곡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도 꽤 될 터입니다. 시요밍이 부동의 QWER 보컬임은 사실이나, 이 커버에서 그녀 못지 않게 주목을 받았던 것은 마젠타였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들어봐도, 마젠타의 두터운 중저음 목소리가 이 곡에 참 잘 어울리네요.
이미 내한 콘서트를 매진시킨 인기 가수 토미오카 아이의 무대는 그녀의 곡처럼 차분했습니다. 이럴 때에 약방의 감초 같은 것이 바로 남성 팬들의 병맛 개그죠. 객석 어딘가에서 "아이 짱, 카와이이!" 등의 소리가 터져나오자, 토미오카 아이는 "고마워!"라고 한국어로 대답했습니다. 이런, 그녀의 덕후 조련술도 예사롭지 않네요. 바로 다음 무대 대기 중인 우리의 QWER은 무대 아래에서 열정적으로 호응하며 토미오카의 공연을 즐겼습니다. 무명에 가까웠던 QWER이 토미오카 아이의 곡을 커버하고 그녀와 같은 무대에 선 게 모두 2024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은 출발선부터 다르므로 이런 성장 스토리를 기대할 수 없고, 중소형 기획사의 아이돌이 단기간 동안에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입지를 확장한 사례 또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QWER에게 있어, 2024년은 "기적의 해"죠. 물론 더한 기적이 내년에 기다리고 있겠지만 말이죠.
날씨가 추워서인지 다소 굳은 표정으로 3곡을 소화했던 토미오카 아이는 무대가 끝나자 비로소 환하게 웃었습니다. 이미 <전부노래잘함> 등에서 토미오카의 따뜻하고 여유로운 무대 매너를 익히 보았던 터라, 딱딱한 그녀의 표정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날 그녀는 QWER의 마젠타에게 "카스테라"까지 선물했다지 뭡니까! 바위게라면 "토미오카 사마"라고 큰 절을 올려도 부족하죠.
여러 사정으로 공연이 지체되어, 9시가 가까워서야 비로소 우리의 QWER이 등장했습니다. 그에 앞서, 이날의 MC인 프로미스나인의 이새롬은 QWER을 소개할 때 "바위게"를 언급해 주었습니다. 이날 프로미스나인의 팬덤인 플로버가 압도적으로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QWER 공연 때 응원봉을 흔들며 열심히 분위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바위게들은 플로버에게 감사하며, 자신들에게도 응원봉이 시급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일해라, 3Y!
이날 QWER은 <고민중독>, <내 이름 맑음>, <안녕, 나의 슬픔> 등 총 세 곡을 했습니다. 무대 아래에선 프로미스나인 선배들이 하트 시그널을 날리며 호응해 주었죠. 이날의 <안녕, 나의 슬픔>은 스산한 가을 강 분위기와 어울려 독특한 매력을 자아냈습니다. 한강에서 하는 야간 뮤직 페스티벌은 꼭 와볼 가치가 있습니다. 시원한 강바람과 멋진 야경이 든든한 무대 배경이 되어 주니까요.
오늘 축제의 엔딩은 프로미스나인이 장식했습니다. <슈퍼소닉>, <DM>, <WE GO> 세 곡 모두 제가 주말에 찾는 집 근처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플레이리스트였습니다. 흠...키 크고 마른 그 청년이 플로버일 가능성이 농후? QWER과 프로미스나인은 참가 뮤지션 전원이 참석한 포토타임 때도 친목을 나눴습니다. 음악방송에 출연하지 않아 다른 가수들과의 접점이 거의 없는 QWER로서는 드문 기회였습니다. "노력형 인싸"인 마젠타의 친화력이 돋보였던 순간이었습니다.저는 이렇게 마지막 무대를 끝으로, 여의나루 역으로 향했습니다. 길게 늘어선 푸드트럭을 보며 닭꼬치에 맥주 한 캔 하고 싶었지만, "자쿠 조끼"를 빨리 반납해야 해서 참았죠. 공연이 많이 지체되어, 시간이 늦기도 했습니다. MC 히나의 <덕통사고: 파충류 탐방기>를 보면서 편안히 귀가하여, 다음날 감기에 걸렸습니다.
한편 제가 11시 20분에 귀가하자마자, 히나와 마젠타의 합방이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30여 분에 불과한(?) 짧은 방송이었지만, 히나와 마젠타의 텐션은 역대 최고였습니다. 올 초에 토미오카 아이의 곡을 커버했던 QWER은 원곡자에게 선물 받은 카스테라를 나눠 먹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프로미스나인에 대한 맹신에 가까운 찬양은 보는 이들을 빵! 터지게 했죠. 앞으로도 이들이 지금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재 바위게는 새록새록 잠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바위게들에게 휴식기를 줘도 되련만, 빙빙은 다음날인 일요일 정오에 <안녕, 나의 슬픔>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안나슬>의작곡·작사자인 이동혁은 이 노래를 작곡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되려 마젠타가 쓴 "지난 나의 발자국에 서투른 꽃이 피어나"를 살리기 위해, 한 달 동안 나머지 가사를 통째로 고쳐 썼다고 하죠. 이 때문에, 이 노래의 정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이는 어쩌면 마젠타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뮤직비디오에서 유독 슬픈 표정을 짓지 않고 있는 인물이 다름 아닌 마젠타였습니다. 대신 그녀는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죠. 이래서 저는 가사를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안녕, 나의 슬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저는 마젠타가 마젠타에게 쓰는 편지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지난 나의 발자국에 서투른 꽃이 피어나"에서 저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직전 연습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지나친 연습으로 인해 손가락 부상을 당했지만, 마젠타는 연습실에 앉아 꾸역꾸역 합주를 이어갔습니다. 보다 못한 쵸단이 제발 연습을 그만두라고 소리쳤을 정도였죠. 마젠타는 앉은 채 울고 있었습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자신이 팀에 방해가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겠죠. 그 영상은 이제 마젠타의 지난 발자국입니다. 그 서투르지만 끊임 없는 연습 속에서, 비로소 4현과 5현 베이스 모두를 다룰 수 있는 꽃이 피어났습니다.
다음으로 "서로의 반대편에 각자의 세상 속에한 발 걸음을 옮겨. 있잖아, 우리언젠가 또 만나면환하게 웃어주자,"와 "괜찮아, 슬픔이 지나간 그 자리에 또 새로운추억이 널 안아줄 거야." 과거의 마젠타와 현재의 마젠타는 각자의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서로를 부정하는 대신 서로에게 환히 웃어줍니다. 또한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과거의 마젠타를, 새로운 마젠타가 쌓은 추억이 안아주며 위로할 것입니다. 결국 이 노래는 슬픔이 주제가 아니라, 슬픔을 떠나 보내며 현재의 마젠타가 과거의 마젠타를 위로하고 감싸는 것이 핵심이었죠. 그래서 마젠타의 표정이 담담했던게 아닐까요. 그러면서도 오랜 슬픔은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지라, 그녀는 공연 때마다 눈물을 머금었고요. 이 노래를 많이 들었으면서도 이런 점들을 이제서야깨닫다니, 제 저하된 문해력 때문에 슬픔이 밀어닥쳤습니다. 하지만 제 슬픔 또한"Bye Bye 이젠 정말, 보내주려 해." 현재의 아재가 과거의 아재를 포근히 안을 수 있도록 여지를 주렵니다. 나도 토미오카 아이가 준 카스테라 먹고 싶다….
10월 28일 월요일, QWER은 리더 쵸단의 건강 문제로 며칠 간행사 일정을 취소합니다. 25살의 마지막 날이었던 10월 31일에 퇴원한 쵸단의 병명은 급성위염이었습니다. QWER이 축제에 오기만을 간절히 바랬던 분들은 아쉬움이 컸겠지만, 그녀가 혼절에 각혈까지 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키 어렵습니다. 몸 고생에 마음 고생이 겹쳐 배로 힘들었을테니, 아무쪼록 충분한 휴식 및 안정을 빕니다. 혹여나 빈 속에 술을 마시는 경우가 잦았다면, 누렁이 마젠타 언니랑 뭐라도 함께 먹으며 위에 기름칠을 좀 한 뒤에 위스키를 즐기는 편이 낫지 않나 조심스레 권해 봅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