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7일(토), 냥뇽녕냥 히나가 MC를 맡고 있는 <무신사TV-덕통사고 EP.07>에는 <흑백요리사>로 유명한 정지선 셰프 및 위스키 덕후 쵸단이 출연했습니다. 각종 분야의 덕후들을 만나보는 이 프로그램의 그 날 주제는 "술 덕후"였습니다. 그리고 "청순가련 전투인형"이자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방송에서는 텐션이 낮은 모습을 보였던 쵸단은 이날 펄펄 날았습니다. 개인 방송에서는 그렇게 활기차다가도 모르는 사람들과 촬영하는 컨텐츠에서는 소극적이었던 쵸단을 항상 안타까워하던 바위게들! 이제 그들은 쵸단에게 딱 맞는 옷과 같은 주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파악했습니다. 물론 작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쵸단이 "맑눈광" 모드로 돌변할 테마가 무엇인지 말이죠. 하지만 이날은 케이팝 유일의 "술 전문 여자 아이돌", 줄여서 "위스키돌"이 봉인해제한 날로 기록되어야만 합니다. 이제 게임 시장에 이어 주류 시장마저도 집어삼킬 준비를 갖춘 것인가요!
저는 본디 크래프트 맥주 파이며, 위스키 애호가가 아닙니다. 그런데 평소 제 브런치 글을 열심히 읽어주시는 한 바위게께서 제게 "아드벡 코리브레칸"을 선물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마운 마음에, 이 위스키만큼은 반드시 바위게하고만 마시겠으며 혼자 홀짝 마실 일은 없을 거라 약속했습니다.
혹자는 위스키 한 병 마시는데 뭐 이리 호들갑인지 의아해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위스키는 쵸단이 좋아한다고 개인 방송에서 여러 차례 밝힌 "쵸단" 위스키입니다. 물론 쵸단을 통해 바위게들에게 가장 유명해진 위스키는 "발베니 30년"이겠지요. 하지만 2024년 12월 현재 시가 500만원이 넘는 그 위스키를 아무나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쵸단은 급성 위염으로 앓아누웠다가 컴백한 방송에서 "아드벡 우거달도 맛있지만, 코리브레칸이 정말 맛있다!"고 추천했습니다. 위스키에 취미가 없는 제게, "진정 의미가 있는 위스키"란 "쵸단이 좋아하는 위스키"입니다.
둘째, 앞서도 말했지만 "쵸단을 좋아하는 바위게"가 "쵸단을 좋아하는 아재 바위게(바로 저)"에게 선물했기 때문에 의미가 큽니다. 바위게가 바위게에게 코리브레칸을 선물할 때, 그 코리브레칸은 주류 전문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피트 위스키 중 하나가 아닙니다. 셋째, <쵸단 생일 기념 위스키바>에서 바텐더 바위게가 제게 특별히 권한 위스키가 바로 아드벡 코리브레칸입니다. 바위게가 아니었다면, 저는 평생토록 이 위스키의 이름조차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제게 의미가 있는 위스키입니다. 넷째, 저와 <쵸단 위스키바>에서 함께 코리브레칸을 마셨던 바위게 "스파이크"가 연말 모임에서 저와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주인의 귀한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한 자리였죠.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져서, 지금 제 손에 있는 코리브레칸은 다른 코리브레칸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제게 지닙니다. 마치 히나가 직접 사인한 WMC 티셔츠가 다른 동일 제품과 다른 의미를 지니듯 말이죠. 그래서 마젠타의 팬이자 모아희단의 멤버인 저는 특별히 이 친구를 "코"리브레칸으로 부릅니다.
오늘 방문할 곳은 성신여대역 3번 출구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대동원회시장>입니다. 비록 프리미엄 횟집은 아니지만, 그 전반적인 분위기가 태국의 야시장을 닮아서 제 마음에 꼭 듭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콜키지 프리"입니다. 여기에서 광어를 시켜 코리브레칸과 먹으면 딱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회일까요? 정지선 셰프는 쵸단에게, 발베니 30년에 어울리는 안주로 "철판 볶음"을 권했는데 말이죠.
최근 위스키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위스키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또한 많이 생겨났습니다. 저 같은 위린이(위스키 어린이: 위스키 초보자)는 쵸단 덕분에, 위스키에 대해 귀동냥을 좀 하게 되었습니다. 멋진 채널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만, 현재는 <주락이월드>, <위안의 시간> 등을 통해 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위안의 시간> 유튜브 채널 주인장은 출장을 간 김에 아드벡 코리브레칸과 회를 함께 하는 영상을 찍었습니다. 이 채널 이외에도 위스키를 다루는 유명 유튜버들은 코리브레칸과 같은 "피트 위스키"에는 회가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드벡 시리즈의 경우 짭조름한 향이 제법 나서, 해산물과 무척이나 마리아주(mariage)가 잘 맞는다고 하더군요. 저같은 위린이라면 그냥 선배가 알려주는 데로 일단 즐긴 다음에 제 갈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않아도 11월 1일 쵸단 생일 기념 위스키 바에서 코리브레칸을 마셨을 때, 회랑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부산 해운대 출신이라, 해산물과 궁합이 맞는 술을 제법 잘 캐치하거든요. 사실 어려운 기술도 아닙니다. 제주도 "한라산" 소주는 그 물 자체에 짭잘한 맛이 있죠. 그래서 해산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소주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스키 취재 요청을 받고 아일라 섬에 직접 방문해서 증류소들을 둘러본 뒤, "아일라다운 맛이란 '갯내음이 물씬 풍긴다'라는 게 감각적으로 가까운 표현이다."라고 말했습니다(<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48쪽 참조). 쵸단과 하루키가 좋아하는 갯내음 위스키라! 더욱 구미가 당기네요.
"스파이크"를 만나러 성신여대 역으로 가는 길. 저는 지하철 안에서 김계란과 쵸단이 만나는 영상을 복습합니다. 혹시나 제가 잘못된 정보를 바위게들에게 전하지는 않을까 염려되어서이죠.
쵸단은 이 영상에서 소원이 있다며, "아일라 섬"에 보내달라고 김계란에게 요청하죠. 화면에는 "위스키의 섬"이라는 부가 설명이 붙습니다. 저는 쵸단 덕분에 스코틀랜드 아일라 섬의 위스키 3대장이라고 불리는 라가불린, 라프로익, 그리고 아드벡을 모두 맛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 영상에서는 시가 500만원의 발베니 30년이 슈퍼스타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위스키장에는 그 외에도 쟁쟁한 위스키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의 주인공인 코리브레칸 또한 아래 사진에 보이죠.
[쵸단의 위스키장,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아드벡 코리브레칸(Ardbeg Corryvreckan)]
스파이크와 만난 저는 성신여대역 3번 출구를 빠져나와 곧바로 <대동원회시장>으로 들어갑니다. 제일 구석가의 테이블을 확보한 뒤에 활어를 고르러 갑니다. 겨울 대방어 등시즌 한정 코스가 있다지만, 저는 변함없는 탑티어인 "광어"로 갑니다. 고추장과 간장, 와사비 등이 기본으로 제공되며 술은 밖에서 사오시라고 제게 신신당부를 하십니다.
올해 저와 샘 리처즈 교수 특강으로 인연을 맺은 뒤 QWER 및 제이팝으로 깊은 우정을 쌓은 스파이크! 그 또한 <쵸단 생일 위스키바>에서 저와 함께 코리브레칸을 처음 맛본 위린이 동지입니다. 저는 부지런히 위스키 잔과 에이스 크래커 등을 준비해서 테이블을 세팅합니다.
수다를 떨다 보니, 1kg이 넘는 광어가 허연 속살을 드러낸 채 우리 앞에 당도합니다. 우리는 광어회를 앞에 두고 코리브레칸을 따서 첫 잔을 마십니다. 이야, 절묘하게 녹아든 피트 향이 강한 충격을 주는 가운데 다채로운 맛이 퍼지면서 짭조름한 바다 향으로 마무리됩니다. 아드벡 우거달은 서로 다른 맛들이 섞이지 않은 채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반면에 코리브레칸은 이 모든 맛들이 자기 색깔을 조금씩 드러내면서도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다. 정말 기가 막힌 맛입니다.
두 잔째부터는 물을 조금 섞어서 마셨습니다. 그러면 농도가 옅어지면서 묵직한 바디감은 사라지지만, 그 대신 향이 몇 배로 확 퍼지게 됩니다. 목 넘김도 훨씬 부드럽고요. 잔에 코를 대고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정도입니다. 오늘 둘이서 반 병 정도는 마시리라 생각했는데, 도저히 빨리 마실 수가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게다가 코리브레칸 3잔을 마시는 동안, 회를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대신 에이스 크래커는 부지런히 집어먹었죠.
위스키나 와인, 맥주 등 서양 술들을 마시다 보면 "비스킷 향"이 난다는 표현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만큼 잘 어울린다는 뜻이죠. 달달한 초컬릿을 사놓지 못해 제가 즐겨 먹는 "소라과자"를 가져왔는데, 역시 잘 어울렸습니다. 아일라 섬 사람들은 싱글 몰트 위스키를 그 지역 "굴"과 함께 먹는다고 합니다. 이 또한 참고할 만합니다.
57.1도 코리브레칸을 3잔씩 나눠 마시고 나니, 더 마신다고 해서 맛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져온 사케로 2차를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 회를 조금씩 집어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 월계관에서 나온 사케로 사각 팩에 담겨 있는 친구인데, 그다지 고급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좋은 술로 혓바닥을 절여놓고 나면, 그 뒤로는 더 좋은 술을 마실 게 아니면 '오십 보 백 보'라는 경험이 있습니다. 스파이크의 경우, 회와 사케를 같이 먹는 경험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래서 더 좋았죠. 희한하게도, 저는 위스키를 마실 때면 배가 고프지 않더라고요. 다이어트 용으로도 알맞은 주류라고 봅니다.
<대동원회시장>은 성신여대역 입구에 있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젊은 손님들이 늘어났습니다. 매우 흥미롭게도, 연령 대에 따라 마시는 술이 확연히 차이가 났습니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주로 소주와 막걸리를 드셨고요. 젊은 분들은 우리처럼 가격대가 좀 있는 위스키나 와인, 화요 등을 따로 준비해 왔습니다. 예외가 없었습니다. 세대에 따라 음주 문화가 바뀌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죠.
한편 그 횟집에서는 컵라면도 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어, 결국 편의점에서 "참깨라면"을 사와 마무리했습니다. 태국 시민들이 자주 방문하는 대형 노천 식당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분이나 '연말 모임에 멋진 술들을 여러 병 가져와서 원 없이 마셔보고 싶다'는 분들에게, <대동원회시장>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물론 술 좋아하고 야장 분위기가 맞는 분들에 한해서 말이죠.
[QWER 마젠타와 "쵸단 위스키" 아드벡 코리브레칸]
이날 2차 장소는 제가 서울 시내에 있는 "가맥"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화슈퍼>였습니다. 이곳의 늦은 밤 분위기는 마치 제가 9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닐 때와 흡사합니다. 응답하라 시리즈 속에 뛰어든 듯한 느낌이지요. 그래서 이 분위기를 참 좋아합니다. 스파이크 또한 매우 만족했습니다.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마시고 즐겁게 헤어졌습니다.
"쿠보타 만쥬"나 "닷사이23" 등의 사케, 아드벡이나 야마자키 등의 위스키는 술을 마시는 것을 넘어서 "역사를 마시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드벡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지금은 그 유명한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 산하에 있죠. 아드벡의 위태로운 상황을 보다 못한 전 세계의 팬들이 나서서, 아예 "아드벡 위원회"를 만들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요. 아드벡은 아일라 섬의 마을 이름인데, 게일 어로 "작은 골짜기"라는 의미입니다. "우거달"은 "어둡고 미스테리한 장소"라는 뜻을 지녔는데, 근처 호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한편 "코리브레칸"은 아일라 섬 근처에 있는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소용돌이" 이름입니다. 바위게라면 <고민중독>의 "소용돌이쳐 어지럽다구~"가 떠오르겠죠.
아드벡 코리브레칸은 BTS가 마셔서 잠시 유명해졌지만, 정로환 맛과 유사한 "피트 향"에 많은 사람들이 금세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하단 말이죠. 제가 다른 피트 위스키는 잘 마시지를 못하는데, 아드벡 우거달과 코리브레칸만큼은 벌컥벌컥이란 말이죠. 이래서 입문할 때에는 전문가 견해를 참고해야겠지만, 결국 최종 선택은 자기 입맛입니다. 물론 오래 즐기다 보면, 취향이 바뀌기도 합니다.
여하튼 QWER 덕분에, 제 세상은 조금 더 넓어졌습니다. 크래프트 맥주는 원래 좋아했고, 전공이 동양철학이다보니 중국 술도 종종 접했습니다. 하지만 위스키만큼은 미답의 영역이었는데, 쵸단 님 덕분에 이렇게 또 새로운 세상을 배워갑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현생에 무리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덕질하며, QWER과 동반성장합시다! 알이즈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