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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Aug 26. 2022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

사실 5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회복 중이라고 할 수 있지.

 신랑은 나에게 다시 잘 살아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신랑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도 하고, 나의 매서운 말과 추궁에 질려버린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냥 끝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야. 그냥 끝내자고. 나도 지쳤어."


 반면 시아버지는 나에게 종종 눈물겨운 문자를 보내셨다.

<00 엄마야. 몸은 건강하니. 우리 **이가 잘못을 많이 해서 상심했지? 내가 금적적인 부분은 모자라지 않게 도와줄게. 00 엄마는 돈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애들만 예쁘게 키우면서 **이랑 잘 살아줘. 항상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 내가 **이한테는 정신 차리고 살라고 할게. 부탁할게. >

 잘 보이지도 않을 휴대폰 화면을 끌어안고 긴 문자를 쓰셨을 마음을 생각하면, 자식이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는 말이 이런 짓을 두고 하는 말일까 싶어 죄송스러웠다. 나중에 듣기로 이혼한다는 말을 듣고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속상해하셨다고 했다.


 별거를 한 지 한 2주 정도 되었으려나. 점심시간에 친정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00아, 너 이혼할 거야?"

 "어?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나는 친정 부모님께 우리 부부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걱정하실까 봐. 그리고 아직 완전히 이혼을 한 것은 아니니까 혹시 우리가 다시 살 수도 있을 거니까.

 "너네 시아버지가 아침에 찾아오셨어. 네가 이혼하려고 한다고, 제발 말려달라고 하시더라고. 너 진짜 이혼할 거야?"

 "엄마, 가서 얘기할게. 오늘 퇴근하고 가서."

 시부모님이 아침에 친정집을 찾아오셨는데, 안색이 파리하고 근심이 아주 많은 얼굴에 손을 떠셨다고 했다. 두 분 다 죄인인 것처럼 찾아오셔서 제발 며느리가 우리 **이와 이혼하지 않고 살도록 마음을 다시 잡게 해달라고 하는데, 엄마가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 참았다고 했다.

 내가 그 간의 일을 설명드리며, 신랑이 정신을 차리고 사과를 하면 받아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참고 살라고 하실 줄 알았던 아버지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라며, 확실히 사과를 받고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살라고 했다.


 그 다음 날인가에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었다. 시아버님이 언니의 근무지로 찾아와서 동생이랑 우리 아들이 이혼하지 않도록 설득을 해달라고 했다고 했다.


  시아버님이 하시는 만큼 신랑이 나에게 사과를 했더라면, 나는 두말하지 않고 바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나서지 않았다. '많은 이혼'들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졌겠구나 싶었다. 시부모님의 간절한 부탁과 매일 밤 고통스러운 시간의 마지막에 있었던 색이 있는 상상들로 이혼을 재고하게 되었고, 나는 신랑에게 엎드려 절 받기로 사과를 종용했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하고,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겠다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이어가겠다고,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어요?"

 신랑은 뭐 그렇게 바란다면 어쩔 수 없지, 하는 식으로 약속을 했고, 그 내용을 담은 글에 서명을 하면서 우리는 다시 관계를 우선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이후로 지금까지도 시부모님은 나에게 전처럼 살갑게 대하지 않으신다. 아마도 '남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리감과 '깊은 상처를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긴 듯하다. 시댁에  적마다 사소한 행동에서도 시부모님의 거리두기가 느껴질 때면, 죄송한 마음이 그지없다. 내가 신랑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제일 후회했던 부분은 시부모님께 씻을  없는 상처를 드린 일이다.




 큰 폭풍이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한 번 부서져 버린 배는 전처럼 단단하게 고쳐지지 않아서 나는 그 이후로도 히스테리적인 의심을 자주 했었다. 내가 "이게 누구 탓인데. 자기가 나를 속이고 주식을 해서 당신을 믿을 수가 없게 된 것이잖아."라고 말을 하면, 신랑은 "이제 그만해. 그 얘기를 도대체 언제까지 할 건데."라며 다투었다. 한 2년도 넘게 그랬던 것 같다.


 나도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을 멈추고 싶은데, 생각의 흐름은 자꾸 히스테리적인 의심으로 번져서 나중에는 반복되는 갈등에 지쳐 신랑을 대동하여 정신과 상담도 갔었다. 상담하는 동안 나는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었고, 의사 선생님은 진료실 벽에 붙은 의자에 앉은 신랑을 간간히 노려보셨다. 상담을 마치고 정신과 약을 받아 왔는데, 의사 선생님은 내키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셨다. 나는 약을 먹지 않았다. 신랑은 그 뒤로 나에게 몰래 하던 주식 계좌를 한 번 더 들켰다. 공무원 공부는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그대로 00 광역시의 학교에 정착을 했다. 신랑은 내가 추궁을 할 때면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한다. 내가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지, 네가 거짓을 반복하는 건지, 나도 헷갈릴 때가 많다. 상황에 따라 나의 억지스러운 히스테리도 있었고, 신랑의 거짓도 있었던 것 같다. 신뢰를 회복해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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