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르바 Sep 10. 2022

그렇게 살아가는 거지요.

아이들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거죠.

 셋째를 임신했을 때,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신랑이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몰랐기에 다들 임신을 축하를 해주었었다. 친정 엄마도 “얼마 전에 엄마가 꼭 태몽 같은 꿈을 꿨는데, 그게 네가 아기를 가질 꿈이었나 보다. 아주 큰 뱀이 길가 수풀에 숨어있다가 나한테로 확 달려드는 꿈이었는데, 큰 뱀인걸 보니 이번에는 아들이려나보다.”하고 좋아하셨다. 그러나 우리네 사정을 아는 선생님 한 분은 걱정을 해 주었다. “신랑이 합격하고 나서 애를 갖지 그랬어요. 천천히 가져도 될 텐데. 샘이 너무 힘들잖아요. 어린애들을 둘이나 키우고 셋째도 임신하고, 혼자 벌어야 하니까 직장도 계속 다녀야 하는데. 어휴, 나 같으면 무서워서 임신 못 했을 것 같아.”


 나는 사실 신랑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지 3년째가 되던 그 해에는 시험에 합격을 할 줄 알았다. 어차피 일 이년 안에 합격을 할 것이고, 셋째를 낳을 결심이 확실하다면,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아기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고, 시댁에서 직장에 다니는 동안 주중에는 둘째 아이를 전적으로 봐주고 계셔서, 셋째를 낳는 것이 부담스럽거나 두렵지 않았다. 형제가 많은 가정에서 자라다 보니 형제가 많으면 성인이 되어서 참 의지가 많이 된다는 확고한 의지로, 딸이 둘 있으니 셋째는 아들이면 더 좋겠다는 기대로 셋째를 가졌고 정말 감사하게도 귀여운 아들이 태어났다.


 신랑이 공무원 시험공부를 그만두고, 그렇게 멀리 직장을 잡아 떠나면서 주말부부를 하게 되고, 나 혼자서 세 아이를 감당해야 하는 줄 알았다면 아마 셋째를 계획하지 않았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신랑의 인생살이가 나의 계획을 엉망으로 꼬아버렸다. 너무 섣부르게 나의 계획을 확신했던 탓도 있으니 결국 내가 던진 도끼에 내 발이 찍힌 모양으로 신세를 한탄할 수밖에. 하지만 나를 이런 꼴을 만든 신랑을 원망하기는 했으나 한 번도 아이들을 탓한 적은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난 이후로 셋이나 낳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이렇게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가정에 찾아와 주고, 우리와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특별한 존재이니 말이다.




 나는 원래 아이를 좋아하는 편인데 내가 낳은 아이는 더 좋았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이 한 줄로 쭉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재미있는 상상을 하며 혼잣말을 하고 놀았을 장면이 떠올라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빨래를 하고 아기 옷을 탈탈 털어 건조대에 말릴 때면, ‘이렇게 작은 옷을 입는 사람이 우리 집에 산다는 거지.’하며 그 귀여움이 떠올라 온몸이 간지럽게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유치원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허리춤에도 오지 않는 작은 사람이 “엄마”하고 반갑게 달려 나오는데, 나라는 별 볼일 없는 존재를 그렇게 커다랗고 대단하게 봐주는 이 작은 사람에게 감사한 마음에 번쩍 들어 올려 안고 뽀뽀를 해 줄 수밖에 없다.


 막내 아이가 태어나며 시작한 주말부부 생활이 어느 새 햇수로 6년이 되어간다. 그 사이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막내가 6살이다. 이젠 밥을 차려주기만 하면 떠먹이지 않아도 스스로 떠먹고, 씻으라고 욕실로 몰아넣으면 신나게 물놀이를 하며 큰 애와 작은 애는 목욕을 하고 나와서 스스로 옷을 입고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릴 줄 안다. 집에 있는 시간이면 세 아이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이불과 베개로 집을 만들고, 장난감을 쌓았다 쏟아내고, 규칙을 만들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북적북적하게 논다. 정리할 때도 "얘들아, 정리하자." 하면, 뒤죽박죽이기는 하지만 물건들이 대충 제자리 가까이에 간다. 몸이 좋지 않은 날이면 "엄마, 안방에서 조금만 쉴 테니까, 너네 끼리 놀고 있어."라고 할 때, 한두 시간 정도 혼자서 쉴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증거다. 사춘기가 오면 더 큰 고민과 힘겨움이 있을 수 있고, 다 성장을 하여 독립을 한다 해도 품 안의 자식이라 죽을 때까지 부모로서의 무게를 견뎌야 하겠지만, 몇 년 전 주말부부를 시작하던 시기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지금의 여유가 감사하기만 하다.


 신랑은  사이에 ‘시설직에서 ‘일반직으로 직종을 변경했다. 이전 학교에서의 업무 실력을 인정받은 대가였다.    번의 승진도 했다. 여전히 가져다주는 돈은 90 원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내가 버는 돈으로도 먹고   있으니까. 이제 신랑이 주말에 와서 "오전에 머리  깎고 올게."라고 해도 ". 다녀와."라고   있고, "목욕  할게."하고  시간이 넘게 탕에 누워 휴대폰을 보아도 답답하지 않다. 나도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특별히 자주 만나는 친구도 없다. 직장에 나가거나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면 사람을 만나지 않는 내향형 인간이다. 운동은 좋아하지만, 운동 후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운동으로 채워 넣은 에너지를 회식으로 진을 빼고 들어온 기분이 들어서 꼭 필요한 자리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 휴일이면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일기를 쓰는 것이 낙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면 아이들과 신랑뿐이고, 주말부부라서 신랑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아이들이 있어서 일상을 같이 지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내 인생에 큰 안정감을 준다.


  혼자라면 심심하고 무료할 시간을 아이들이 갖가지 색으로 채워주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종종 자전거 나들이를 가자고 한다.  아이 모두 자전거 타는 법을 내가 가르쳐 주었다. 자전거 나들이를 많이 해서 7살인 둘째는 보조바퀴가 없어도   자전거를 아주  타고 셋째는 아직 자주 넘어진다. “ 마을로 들어가 볼까? 엄마도 처음인데, 왠지 재미있는 마을   같은데?”  아이와 작은 아이는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막내 아이는  자전거 뒤에 타고서 우리는 모르는 동네 구경을 가서 골목 골목을 다니며 처음 뵙는 아주머니께 귤을 얻어먹고, 아이들이 아주 귀엽다는 말을 듣고, 동네  운동기구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는다. “오늘은 도서관에 책이랑 장난감 반납하는 날이네.” 일주일에  번은 어린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셋이서 순서를 바꿔가며 장난감을 빌려온다. 일주일에  번은 수영장을 간다.  혼자라면 심심하게 수영만 했을 텐데, 아이들이 있으니 “  반듯하게 뻗어야지. 자유형, 배영, 으로 번갈아 가면서 3바퀴에  원이다.”하고 수영 강습도   있다. “오늘은 인라인 타러 갈까?”해서 첫째와 둘째는 인라인을 타고, 셋째는 킥보드를 타면서 저녁 노을이 검붉게 피어 있는 하늘을 보면 ‘아이들이  순간  인생에 함께 있어줘서 감사하다.’싶다.


 ‘ 아이들이  커버리고 나면  순간이 얼마나 그리울까?’ 아직 유치원생인 아이들을 보면서 아쉬움이 드는 날도 많다. “ 사람.  이리 많이 컸어요. ? 발이 엄마 손바닥 만해졌잖아? 예전에는  작아서 귀여웠는데.  워커 신고 군대 가는  아니야?” 초등학생인  아이는 요새  부쩍 부쩍 크는 것이 눈에 보인다. “내년이면 4학년이라고. 말도  된다. 네가 엄마  물고 울던  엊그젠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아이들과 함께 내 인생이 익어가는 가보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결혼을 해야 잘하는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