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는 일의 소중함

멈추어 서서 본질을 꿰뚤어 보는 것 :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들

by 담백

어느 주말, 애매한 시간 낮잠을 자서인지 다시 잠들면 다음날이 되어버릴 것 같던 저녁.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유의미하게 써보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르지 않는 영상과 볼거리들이 이어졌지만 어딘지 거기서 거기처럼 느껴지며 약간 지루해지던 찰나,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매트리스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 그냥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흐르는 곳을 향해 응시했다.


눈에 담기는 건 움직이지 않는 오븐 하나뿐이었지만 뇌는 이제야 작동 스위치를 켠 듯 빠르게 생각 공장을 가동했다. 이렇게 멍 때리는 일이 얼마만이던가, 생각보다 이 순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지한 인공호흡이 익숙해진 뇌가 오랜만에 자가호흡을 한 듯 '내가 나설 차례인가' 기량을 보여주려 기지개를 켜는 느낌이었다.


내가 오늘 했던 일들, 말들, 행동들을 돌아보며 복기하기도 하고 들었던 말들에 대한 생각들을 곱씹으며 가지를 펼쳐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30분이 흘렀다.


남편은 눈만 꿈뻑이며 꿈쩍 않는 나를 보며 "뭐 해?"라고 물어왔고, 나는 생각했다.

‘뭘 꼭 해야 해?'


빨라도 너무 빠른 세상 속에서 (시간의 상대성)

원래도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기 힘들다고 느꼈지만 AI가 도입되면서부터 나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기술의 변화는 가속을 더해 광속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미국 빅테크시장은 시끄럽고, 중국은 새로운 로봇기술을 선보이고, 그에따라 주가는 쉼없이 오르내리고, 뉴스는 이와 관련된 기사들을 보고하느라 정신없다.


유튜브만 봐도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줄을 잇고, AI로 월 1억을 버는 사람들 등 매일 쉴새없이 길고 짧은 영상들이 업로드된다. 같은 24시간을 사는데 어떻게 다들 이렇게 부지런한 건지, 누워서 영상을 보고 있는 내가 느끼는 건 거리감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쫓아가고 적응하는 일이 점점 힘에 붙힌다.


적응해버리는 순간 증발해버리는 남의 것을 따라가기 보단 나를 단단히 지탱해줄 본질적인 무언가를 찾고싶다.


인공지능의 위협으로 사람들은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뉴스에 불안함을 느끼면서 역설적으로 더 '사람냄새'나는 콘텐츠를 찾게 되는 요즘이다. 스마트폰 세상 속에선 모든 게 빠르게 돌아간다. 매일 새로운 영화와 신곡이 나오다보니 3달 전 일들은 까마득히 오래전처럼 느껴지고, 새로움은 눈깜짝할 사이에 무뎌진다.


그러다 문득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시 고개를 들어 돌아보면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내가 어렸을 적 보던 그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햇살 아래서 천천히 걷다보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려주는 것은 건물의 낡은 정도뿐, 사람들의 움직임과 행동들은 눈에 익은 그 모습들이다. 아기들은 여전히 부모의 도움을 받아 걸음마를 배우기 시작하고, 뛰어다니고, 넘어지기도 하고 다시 일어나길 반복한다. 전철시간에 늦어 뛰어가고, 눈앞에서 문이 닫히고, 눈치 보며 빈자리를 탐색하고, 자리를 양보하고, 그런 사람 사는 것 들.


이런 큰 간극 때문에 어쩌면 두 세계 사이에서 우리는 더 혼란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비효율적인 일을 한다

본업으로 사무직을 하면서 하루 평균 8시간 이상을 컴퓨터와 마주한다. 직장인이 되고 가장 큰 변화는 '극한의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데드라인은 타이트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문제들은 매일같이 터지느라 실제 업무에 집중하긴 빠듯한 시간 속에서 찾는 답은 '효율' 뿐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빠르게, 그도 어렵다면 최소한 인풋에 비례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지난주 첫 방문 40% 할인 문구에 꽂혀 기분전환 겸 새로운 미용실을 방문했다. 대강 뒷머리나 조금 다듬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미용사 선생님은 머리를 요리조리 살피시더니 머리를 감겨주시고 1차로 손질을 한 뒤 드라이어랑 고대기로 온 정성을 다해주셔서 이만하면 가성비 있는 소비였다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샴푸 한번 더 하세요"라는 선생님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맞나 생각하면서도 손해 볼 건 없기에 자연스럽게 따라가 샴푸를 받고 또 한 번 더 아까 했던 과정을 반복하고 나니 1시간 40분이 흘러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감사를 넘어 송구한 마음이 들어 오히려 이렇게 하시면 남는 게 있나라는 걱정까지 들었다. 덕분에 그날 집에 돌아가 꽤 오랜 시간 서비스와 마음 씀에 대한 내 태도를 돌아봤다.


한 달에 한 번은 부모님이 관리하시는 양평집에 가 잔일을 돕는다. 밭을 가꾸는 일은 이렇게 비효율적일 수 없다. 손과 호미를 이용해 처리할 수 있는 면적은 한정적 인대다 분명히 잡초를 뽑고 낙엽을 정리했는데 뒤돌아보면 누가 가져다 둔 건지 또 같은 양의 치울 거리가 생겨있다. 여기에 바람이라도 분다면 나무에 달린 이파리들이 후드득 떨어져 사락사락 날려오곤 하는데 여간 달갑지 않다. 어차피 무한굴레인 상황에 그렇다고 시작도 하지 않는다면 다음번엔 더 많은 양의 할 일이 쌓여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좋아한다. 손에 닿는 흙의 촉감, 시간을 들여 마음을 다해 가꾸는, 말없이 교감하는 그 순간이 주는 살아있음의 소중함, 우연한 찰나에 발견하는 나 자신의 쓸모.


본질은 결국 밍밍하고 심심한 것

요즘 건강식이 화두다. 흑백요리사에서 선재스님이 히트를 치기도 했지만 그만큼 건강식, 저속노화에 사람들이 관심이 높다는 반증일 것이다. 선재스님은 채소의 고유한 맛을 최대로 끌어내는데 도가 트신 분이었다. 그분의 음식은 사실 아마 실제로 맛본다면 예상컨대 일반 사람들의 입맛엔 약간 밍밍하고 심심하다고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카페인 중독자처럼 커피를 마시던 내가 임신을 하고 어지러움에 디카페인만 마시기 시작했다. 카페인 디톡스를 하면 정신이 좀 더 또렷해질까 기대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졸음에 못이겨 정신은 흐리멍텅하고 일에 집중도 잘 안되는 느낌이다.


카페인의 짜릿함이 그저 그리워질때쯤, 문득 '이렇게 내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느껴본게 언제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프면 출근해야하니 일단 진통제를 털어넣고, 졸리면 잠을깨려 커피를 마시는 일에 익숙해진 삶이 조금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1차 산업으로의 회귀

최근 우리의 다음 세대는 대체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을,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그들이 성취감을 낼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종종 고민하곤 한다. 어쩌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5차산업 보단 1차산업으로 회귀하는 것도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회귀라는건 뒤쳐지는 일이 아니다. 길이 원형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바퀴 돌고나서 새로운 시작이 다시 처음이 될 뿐이다. 내 힘이 닿는대로 노력을 하고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고, 비가 오는 날에도 태품이 오는날에도 손놓고 좌절하기 보단 뭐라도 움직여 해 놓아야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삶이 어떻게 보면 가장 있는 그대로의 인간의

자연으로부터 생겨난 인간으로서 자연으로 회귀하는 일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로지 나의 노동을 통해 맺는 산물이 주는 풍만함.


몇년 전 본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한 대사가 생각난다.

아빠가 영영 떠난 후에도
엄마가 서울로 다시 돌아가지 않은 이유는
너를 이곳에 심고 뿌리내리게 하고 싶었어.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어.

이제야 엄마의 편지가 어렴풋이 이해가 갈 것 같다.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랑이
그만의 작은 숲이었다.
나도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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