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갈증

오리지널이 사라진 시대에서 다시 찾는 방향성

by 담백

구글 블로그를 시작했다. 네이버블로그의 스마트 에디터라는 작은 원룸을 벗어나 드넓은 초원 위, 여기가 어딘지 지도에도 뜨지 않는 황량한 언덕 위에 무작정 원터치 텐트라도 친 기분이다. 추운 날도,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도, 주변의 도움 없이 나홀로 헤쳐나가야 해서 한걸음 나아갈 때마다 새로운 난관이 앞길을 가로막아 매번 퀘스트를 깨야하는 느낌이라 벅차기도 했다.


그럼에도 네이버를 떠난 이유. 바로 나만의 섬을 구축하고 싶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인지 줄곧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러 블로거들의 업데이트가 이어지고, 오손도손 복작거리던 블로그 세상이 좀 버겁게 느껴졌다. 그보단 속세와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이웃들에게는 공개하기 멋쩍은 아이디어나 공상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었다. 막상 시작해보니 글쓰기 역량과 영역을 확장해 가는데에서 오는 만족도와 충만감이 생각보다 높아 역시 두려움을 마주하고 새로이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삐뚤빼뚤 궁상맞고 보잘것없는 집이라도 “내 손으로 만든 집”이라는 든든함. 역시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단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적성에 맞다.


한번 떠오른 글감에 대해 몇 주간 뇌 깊숙한 곳 쟁여놓고 시시때때로 꺼내보며 발효시켜 구수한 된장과 같은 글을 써내리기 좋아했던 나.


몇 개월 전만 해도 AI가 판을 치는 글들 속에서 오리지널리티를 놓고 싶지 않다는 꼰꼰한 고집을 부렸던 나다. 썸네일 디자인을 구상하고 글을 가독성 있게 배치하는데 최소 3일은 걸렸던 게 이제는 비주얼이 훨씬 빵빵하고 하이퀄리티의 글을 하루에 3개는 쓸 수 있게 됐다. 마치 빌빌거리던 고물 차를 타고다니다 하늘로 솟구치는 로켓을 타고 화성을 가는 기분이다.


그렇다 보니 최근엔 머릿속의 생각들을 수첩에 적기보단 바로 Chatgpt나 클로드 같은 AI툴에 검색해 아이디어의 실체를 바로 구체화하고 시각화시켜 생각의 가지를 저 멀리까지 뻗어나가는 게 더 익숙해졌다. 특히 시간을 일분일초 쪼개 써야 하는 직장인의 경우 원하는 시간 소비에 있어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하다 보니 점점 한 곳에 시간을 오래 쓰다 보면 묘하게 낭비하는 느낌이 든다.(그렇지만 또 인스타그램이나 쇼츠 볼 때는 급격히 떨어지는 효율성..)


아무튼 요근래 새롭게 발견한 신세계의 화려함에 푹 빠져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네이버 스마트 에디터 내에서 한정적인 텍스트의 나열보단

HTML 코드로 작성된 휘향 찬란한 애니메이션과 다채로움을 뽐낼 수 있는 티스토리와 구글 블로거는 나의 이목을 단숨에 끌어버렸다. 울타리 안에서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노는 편안함에 빠져있던 나에게 과장 조금 보태서 무법지대를 달리는 맛은 마치 마라탕을 처음 맛보던 날의 짜릿함을 선사했다.


그렇게 기술의 바다에서 가운데 문득 텁텁함이 몰려왔다. 최근들어 특히 네이버는 AI가 쓴 알맹이 없는 정보글에 넌덜머리를 느끼던 나였는데, 어느새 글을 빠르게만 뽑아내는데에만 몰두해 점점 낮아지는 글의 퀄리티. 포스팅 개수만 늘려가며 조회수에 급급해져 버린 현실에 대한 아쉬움, 전업으로 글밥을 먹고 있진 않았지만 글 쓰는 맛을 잃어버린 나는 마치 미각을 잃은 장금이 같이 비련 해져 버렸달까.


오리지널리티란 뭘까

독창성, 나만이 쓸 수 있는, 나를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무언가.

ctrl + c, ctrl + v라는 마법 주문만 외우면 그 아무리 독창적인 글이라도 원본의 흔적은 게 눈 감추듯 사라져 버리는 게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챗 지피티는 참 쉽게 내 글에 대해 평가한다. “너무 장황하기만 한 글이네요”,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 그(또는 그녀)가 내놓은 잔털하나 없는 글을 보고 있자면 어떤 글을 쓰는 게 맞을까 라는 당위성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예를들면 공모전 같은 경우 대략적인 심사 가이드라인 내에서 ‘인간’ 심사위원의 마음을 울려 그들의 ’주관에 의한 평가’로 인해 당선되는 글들이 잘 쓴 글일까, 아니면 물론 챗 지피티도 틀릴 수 있다지만 ‘감정’이란 없는 이성 100%의 챗 지피티의 평가가 옳은 것일까. 그 무게를 저울로 잰다면 각자의 잣대에서 수평을 이룰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스멀스멀 무기력이라는 험악한 손님이 찾아온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은 뭔지,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은 뭐였는지,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뭐였는지, 한마디로 나의 주체성을 잃어버리는 기분이 든다.


어떻게 보면 이제는 단순히 표면적인 번역을 위한 번역가는 설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앞뒤 맥락과 그 안에 담겨있는 의도를 본인의 스타일로 해석하고 오직 경험에서만 나올 수 있는 한 끗 차이의 맛을 더해내는 사람.


그러다 불현듯 한 가지 희망적(?)인 부분이 머리를 스쳐지나가고 나니 조금 신선한 공기를 들이켠듯한 상쾌함을 느꼈다. 펌프 영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펌프를 예로 들자면, 펌프는 흡입되는 유체가 없다면 속도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변환되지 못해 작동하다가 과부하가 걸려 불이나 버린다.


최소한 무엇이라도 빨아들일 수 있는 유체가 공급되어야 원활히 작동 한다. 챗 지피티도 크게 보면 기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런 형태인 것이다. 내가 말을 걸거나 로직을 짜놓지 않는다면 (트리거를 주지 않는다면) AI는 스스로 생각을 시작하지 못한다. 물론 미래에 스스로 생각하는 AI가 나온다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만 현재로선 내가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이상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오리지널의 필요성이 여기서 나온다. 오리지널이 없다면 카피는 존재하지 않는다. 무수한 카피본이 세상을 잠식하더라도, 수많은 변주곡이 나오더라도 그것의 시작엔 언제나 원본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오리지널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물차도 필요하다

KTX 나 SRT와 같은 고속철도가 있음에도 무궁화호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 렌즈나 라섹수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빅테크기업 회장인 젠슨황과 이재용이 안경을 고집하는 이유. 조금의 불편함은 우리 사람에게 필수적이다. 그 불편함 속에서 느끼는 여유. 빠르기만 한 속도에서 느끼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유대와 관계 속에 쌓이는 정, 진정 ’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시간인 것이다. 단거리 스프린트가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장거리 마라톤이, 슬로 러닝이 잘 맞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빨라진 세상에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역량에 맞는, 구미가 당기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그것” 을 찾기 위해선 조금 늦더라도, 시간을 들여 나를 촘촘히 들여다보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이 시대에서 오리지널리티, 그 자체가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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