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의 남편이 된 동생을 보며

가족이라는 그물 속에서 우리는

by 담백


내가 알던 동생이 사라진 자리


언제부터일까, 동생이란 존재는 마음속에서 서서히 옅어져 갔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동생에게서 멀어졌다고 해야 할까. 첫사랑인 6살 연상의 여자친구와 8년간의 긴 연애 끝에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은 낭만적인 스토리의 커플이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의 아들과는 마땅히 남은 추억이 없었고, 누나 입장에서는 자매같이 많은 대화를 나누며 의지하던 동생, 매일 집에서 마주하며 익숙하고 편안했던 동생의 모습은 점점 알 수 없게 돼버린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성인이 된 청년이 자연스럽게 성장하며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예상 범주를 벗어나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동생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동생의 머리 뒤로 여자친구의 얼굴이 떠올랐고, 말투나 결이 달라져 살에 스치는 불편한 감촉이 늘어가는 기분이었다. 삶의 가치관도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져 말문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나날이 이어졌다. 마치 하나였던 땅덩어리가 어느 날 쩍 하고 갈라져 다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막막한 느낌이었다.


어떤 일이든 시작이 어렵다고, 첫 말다툼을 기점으로 동생과의 마찰은 시간이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늘어만 갔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서로 힘이 빠져가는 게 느껴졌다. 얼굴을 보고 만나도 미묘하게 그어지는 선에 깊은 대화를 잇기보단 선 안쪽에서 겉도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매웠고, 우리 사이는 자연스럽게 소원해졌다.



3살 연상의 올케


올케는 나와 비슷한 부분 보단 다른 부분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지지 않은 부분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바에 기반해 생각하는 편이었고, 복잡하게 생각하고 계획하기보단 때에 따라 맞춰가는 편이다. 상냥하고 사근사근한 말투를 지녔지만 주변을 먼저 궁금해하거나 안부를 묻지는 않는 편이다. 더불어 본인의 근황을 먼저 전하지도 않는 편이거니와 주변의 관심을 요하지도 않았다. 본인들의 문제는 어떻게 서든 본인 가정 내에서 해결하려고 하는, 소위 앓는 소리 하며 구태여 남에게 싫은 소리는 절대 늘어놓지 않는 편이다.


나보다 3살이 많은 올케와 가족이 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일례로 처음부터 '언니'라고 불렀던 터라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가족이 돼도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자던 동생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단순히 족보가 꼬이는 일임을 떠나서 나는 애초에 호칭문화를 따르지 않을 거라면 미국식으로 이름을 부르자고 제안했지만 또 그건 맘에 들지 않는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이런 시시콜콜한 신경전이 반복될수록 동생은 올케 편을 들었기에 타격을 입는 건 내 쪽이었고, 더 이상 이런 작은 일에 진을 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동생이 행복하다면야 그걸로 된 거겠지,라고 마음을 비우면서도 올케와 가족이 되는 일은 마지막까지 없었으면 바랬다.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도 불편한 미래만 그려질 뿐이었고 나만 속 좁은 사람이 된 것 같아 괴로웠다. 가족 중에 언니가 없기도 했거니와 한때는 가까워지려 시간을 보내며 올케가 가족이 된다면 자매 같은 관계가 되길 꿈꿔왔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진 않았다. 더욱이 중간다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철부지 동생 덕분에 상처받는 엄마를 보며 동생커플은 내 마음속에서 단단히 미운털이 박혔고, 그 털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기다랗게 자라났다.


불편한 가족


동생네 부부와 한자리에 모일 때면, 우리 집인데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긴장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 주제도 점점 가벼운 쪽으로만 흘렀고, 그 공기가 어딘가 공허하고 삭막하게 느껴졌다. 결혼 후 동생은 내가 좀 무거운 생각이나 깊은 속얘기를 할 때면 왜 굳이 그렇게 딥한 생각을 하냐는 시선과 함께 내 얘기를 계속 듣고 있기 불편하다는 기색을 내비치곤 했다. 예전엔 동생과 종종 막막한 생각이나 요즘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내게 얼마나 소소한 행복이었는지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둘만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거리를 두는 우리 커플과 달리 동생은 부모님이든 손윗사람이던 누구와 함께할 때도 와이프에게 섬세하게 애정을 표현한다. 그 모습이 부러웠던 건지, 동생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일지 계속 보고 있자니 뭐랄까, 삼키기 어려운 비린 음식을 계속 씹는 듯한 그런 느낌을 들게 했다. 그저 최대한 만남을 줄여 가까이하지 않는 게 나로선 최선이었다.


왜 항상 가족여행은 힘든 걸까


그러다 얼마 전 가족들과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 동생과 배 속에 아기를 데리고 부푼 배의 올케, 나와 남편, 그리고 엄마 아빠 부부. 그전과는 다른 새로운 6인 가족으로서의 첫 여행이었다. 솔직히 그간 유지하던 거리를 좁히고 싶지도 않거니와 여행을 떠나 추억을 쌓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기에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왔었다. 그래도 이번 여행은 아빠가 여섯 명이 함께하는 가족여행을 성사시키려고 5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돈으로 떠나는, 꿈에 그리던 여행이었다. 그런 아빠의 간절함을 K-장녀로서 더 이상 모른 척할 수만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각자 다른 이상에 빠져있던 점이었다. 부모님은 알아서 준비해 주면 따라가겠다며 관전모드에 돌입했고, 동생은 올케가 임신한 상태라 얼마 돌아다니지 못할 테니 본인들은 없는 셈 치라며 슬쩍 한발 빼는 분위기였다. 동생 부부를 배려하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기본적인 것들은 같이 챙길 수밖에 없다 보니 결국 계획형인 나와 남편이 일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에 여행을 가기도 전에 슬슬 화가 치밀었다.


사실 동남아 가족 여행이 처음은 아니다. 5년 전 떠난 코타키나발루 여행에서 우리 가족은 하루가 다르게 싸웠다. 성인이 되고 나서 부모님을 모시고 처음 떠난 여행에 모두 부푼 마음이었지만 기대에 부응하기엔 동생도, 나도 너무 경험이 부족했다. 처음 가는 나라였을뿐더러 어릴 때처럼 부모님만을 의지하던 여행에 익숙했던 탓인지 우리 둘 다 우왕 자왕했다. 부모님은 답답한 마음에 그날 그날 할게 뭐가 있는지, 어떻게 이동할 건지 등 끊임없이 물어왔고 정신없는 와중에 엄마는 말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이 이어지며 서서히 쌓인 스트레스에 조금만 답답해도 쉽게 화가 표출 됐다.


새로운 가족의 형태


지난번 같은 불상사를 막고 싶어서 동생에게 SOS를 쳤다. 엄밀히 말하면 SOS라기보단, 내가 먼저 아쉬운 소리를 꺼낸 거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모두가 하하 호호 웃는 자리에서 나만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이 될 게 뻔해 보였다.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는데, 동생은 그 말이 쉽게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아는 듯했다. 내가 느꼈을 수고를 이해한다며 “현지에선 내가 챙길게” 하고 에둘러 말했고, 그 한마디에 단단히 조여 있던 마음이 조금은 느슨해졌다.


아빠는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기도 전부터 말수가 급격히 늘어, 내가 괜히 민망해질 정도였다. 늦은 시간이어서 다들 피곤에 절어 있었는데도 아빠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끊지 않고 이어갔다. 나라면 슬슬 짜증이 올라왔을 텐데, 동생은 아빠의 긴 설명을 묵묵히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해 줬다. 그 덕에 아빠 말은 더 길어졌지만, 나는 그 틈에 한숨을 돌렸고 비행기에서 그대로 긴 잠에 들었다.


여행 중에도 지난번이랑 똑같이 아빠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을 때도 동생과 올케는 화 한번 내지 않고 차분히 몇 번이고 설명해 주었다. 엄마도 말없이 사라지곤 했지만 그때마다 찾아 나서면서 진을 빼기보단 가던 길을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합류해 있었다. 더불어 남편이 시시각각 바뀌는 계획에 맞게 교통수단이나 준비를 도와주니 내가 예민해질 일이 없었다. 우리의 가족 여행은 계획 없이 시작했지만 각자 맡은 역할을 해내며 예상보다 훨씬 더 스무스하게 진행됐다. 아픈 사람도, 화난 사람도, 서운한 사람도 없는 산뜻한 여행이었다.


여행 한 번으로 우리의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앞으로 또 동생네 가족과 여행을 하게 될지도 미지수다. 다만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내가 불편해했던 건 ‘동생 부부’가 아니라, ‘남편이 된 동생’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나였던 게 아닐까. 만약 올케가 내 언니였고 동생이 내 형부였다면, 나는 이 관계를 이렇게까지 불편해했을까. 결국 문제는 ‘동생이 변했다’가 아니라, 변한 동생을 내가 아직 내 방식대로만 이해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가족이 되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왜 좋은 일은 안 좋은 일 뒤에 숨어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