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기
다짐이 꼭 신년에만 허락되는 일은 아니다. 느닷없이 운전을 하고 지방으로 내려오던 중 결심이 섰다. 매일 아침 6시에 글을 써보기로. 나는 일곱 시 반쯤 집을 나선다. 20분쯤 걸려서 출근을 준비한다. 그러니 한 시간을 꽉 채워 글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한 시간이면 분량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막연히 다작 작가보단 불후의 한 권을 쓴 작가를 더 멋지다고 생각했던 적 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많이 쓰지도, 불후의 한 권도 없다. 그러니 뭐라도 되겠지 싶은 마음에 쓴다. 이 쓰기의 동인은 불안함, 위기감, 절박함이다.
21살에 처음 내 돈으로 책을 샀다. “철학자와 늑대”라는 책이다. 제목 그대로, 철학자가 늑대를 기르면서 떠오르는 에피소드, 혹은 철학적 사유를 차분하고 덤덤히 써 내려간 글이다. 그 책이 꼭 맘에 들었던 건 아니지만 그 책을 계기로 여러 책을 잡식했다. 10권을 읽으면 6권은 문학, 나머지 4권은 비문학, 에세이, 경제 관련한 책이었다.
독서하면서 언젠가 나도 작가가 되겠지 싶었다. 소설이나, 르포나, 아무튼 무언가 대단한 이야기를 적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30살이면 좋다고 생각했다. 내공이 쌓이기에 충분한 나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30이 됐고 나는 아직 제대로 된 한 문장도 쓰지 못했다. 내 위기감은 내 의지에 빈번히 실패하는 자아에서 비롯된 듯하다.
심지어 30살의 반년이 훌쩍 지났다. 평일 출근을 위해 운전대를 잡고 충청도로 내려오는 일요일 저녁에 큰 불안이 샘솟았다. 이러다간 정말 회사에서 출근 퇴근만 하면서 살아야 될 수도 있겠다는 아득한 마음. 그거 참 내가 한 번도 소망해본 적 없고 계획해 본 적 없는 30대다.
내가 글을 써내려 가지 못한 건 목적지를 찾지 못해서였다. 단편으로 된 글의 조각들, 상념의 파편들보단 대주제로 귀결되는 목차를 갖춘 이야기 꾸러미를 그려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목적지를 못 찾았다. 큰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무엇도 쓰지 못했다.
좋아하는 영화 쓰리 빌보드에서 주인공이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목적지를 위해 차에 탑승한다.
동승자가 조수석에 탑승하며 묻는다. 어떻게 할 거야? 그러자 주인공이 대답한다. 가면서 결정해보려고.
세상 많은 결정이 이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일단 쓴다. 쓰면서 결정한다. 글의 목적과, 방향과, 대주제는 추후에 결정될 일이다. 이 글이 세상 어딘가로 뻗쳐나가 어떤 화학 작용할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최초의 원자를 만들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