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전날엔 모든 게 재밌다
[2019년 기말고사 전 날 썼던 글]
200년 전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성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를 예측했다. 그리고 틀렸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한 명의 자연인이 거시적 세계를 예측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200년 전 공산당 선언을 만들 때 전혀 예측 못 했던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신의 책이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교양 과목 기말고사로 출제된다는 것. 그 때문에 자신이 욕먹을 줄도 몰랐을 거다. 마르크스는, 말이 너무 많았다.
마르크스는 양반이다. 플라톤부터 비트겐슈타인까지, 아무튼 철학자들은 말이 많다. 집에서 혼자 일기에 썼으면 좋았을 텐데. 세상에 자신의 똑똑함을 알리기 위한 철학자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현대 정치학 개론의 4번과 7번 문제를 만들어 냈다. 심지어 소크라테스는 말로만 남긴 걸, 제자 플라톤이 책으로 만들었다지 않는가. 그냥 뒀으면 이번 1번 문제는 없었을 텐데. 혹시 플라톤은 시험 문제로 출제될 걸 알고 있지 않았을까. 후배를 괴롭히고자 하는 의도가 없고서야, 수고스럽게 책으로 만들 건 뭐가 있는가. 한 명 철학자가 하나의 사상을 떠올리는 순간, 50명 수강생 최대 다수는 최대 불행을 느낀다.
위대한 철학자 한두 명만 덜 공부했어도, 폐강될 교양 수업이 넘친다. 예를 들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플라톤의 입을 막아보자. 그렇다면 지금 “문과”라는 전공의 1/3은 없어질 거다. 얽히고설키면 결국 서양 철학의 반은 플라톤에 빚지고 있으니깐. 플라톤에 성공했다면 이번엔 공자를 막을 차례다. 그렇다면 동양 철학은 반이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돌아오면 아마 학문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다. 실제로 한 시대의 철학은 이전 시대의 철학과 계속해서 상호작용 한다. 이전 철학에 반대되는 주장일 수도 있고, 또는 영감을 받아 등장한 철학일 수도 있다. 그렇게 계속된 비판과 도전을 이겨내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데올로기들은 원석처럼 단단하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들로부터 빚을 졌다.
채무액을 따지면 우리 교수님도 만만치 않을 거다. 20대부터 부단히 철학 공부를 한 교수님은 배움을 키워 강단에서 강의를 하신다. 그리고 철학 강의로 급여를 받는다. 물론 플라톤과 공자가 말을 못 해 철학이 없다 해도 교수님은 다른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하셨을 거다. 책을 좋아하셨으니 작가가 됐거나, 영화감독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교수라는 직업은, 말해 뭐 하지만, 굉장히 좋은 직업이다.
전국, 그리고 전 세계에 많은 교수들도 같은 방식으로 돈을 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모든 것들이 “철학 사업“아닐까 싶어 진다. 비판적으로 사고하기가 철학의 기본이라 했으니, 나는 단지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중이다.
비즈니스 모델은 철학을 통한 강연료고 고객은 학생이라 해보자. 철학자들은 밤을 새우며 새로운 철학을 고민한다. 마치 유튜버가 다음 새로운 콘텐츠를 고민하듯이. 그 콘텐츠가 논리적이고 매력적이면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창출된다. 마치 삼성이 새로운 스마트폰을 내놓는 것처럼. 교수들은 새로 출시된 이데올로기를 공유하고 강의를 팔아 돈을 번다. 시험이 코앞이라 삐딱한 걸 수도 있다. 아니면 며칠 전 보고 온 기생충 때문에 이데올로기를 통해 생계를 ”기생‘하는 이미지가 떠올라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쪼록 이 모든 일들이 ”철학 장사“에 지나지 않을까라는 발칙하고 꼬인 상상을 해본다.
나 역시 선배 철학자를 팔아 글 하나 남겼다. 나는 과연 누구한테 빚을 졌을까. 빚을 지긴 했을까. 그건 내일 시험 결과에 달려 있다. 이 글을 쓰느라 보낸 시간은 시험 범위를 두 번은 복습할 시간이었다. 어째 선배를 팔아 글 쓴 것도 나고, 책임을 지는 것도 나다. 여러모로 철학은 나에게 시련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