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과 노조

집 앞 카페

by 청년실격

이번 학기에 고용관계론이라는 수업을 듣는다. 경영학과는 사실상 “피피티 만들어서 발표하기 학과”와 다르지 않다. 이 같은 수업 방식도 교수들의 매너리즘 중 하나라 생각한다. 하지만 미천한 학부생이 어쩌겠는가. 수업시간에 배운 것처럼 노조를 설립해서 파업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번 팀 프로젝트 과제는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비정규직을 정규직 전환하는 문제에 대한 발표다. 피피티 만들기는 적당한 소음과 함께 카페인이 무척이나 필요한 작업이다. 다행히도 우리 집 가까이엔 카페가 있다.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안 주고 커피 값도 2000원대다. 과제하기 좋은 카페다. 동네에 몇 개 없는 카페라 근처 대학생들은 모두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모인다. 카페 간판만 없었다면, 밖에서 볼 땐 스타트업 기업이라 생각할 것만 같다.


삼십분쯤 딴 짓하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공부를 시작한다. 나는 피피티 초반 부분을 담당했다. 보통 목차 처음엔 큰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 제기를 한다. 자료는 비정규직 문제가 IMF 때부터 본격적으로 증폭된다고 한다. 그전에는 고만고만하게 있다가, 그 시절에 사람들이 많이 해고된 후부터 비정규직 노동자가 계속해서 증가했단 거다. 자료는 노동 유연성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무슨. 그냥 자르기 쉬운 거겠지. 읽으면 읽을수록,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참 기형적인 모습이다. 아니, 임금노동자의 반이 비정규직이면, 도대체 얼마나 곯은 노동시장이란 말인가.


좋다. 한국 노동시장은 한 번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해고가 어렵다는 변명은 알겠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다수면 기업 입장에서도 손해다.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만큼만 일을 한다. 특히 기업 입장에서 그 일이 매일 해야 하는 일이면 더욱 그렇다. 또한 안전과 직결된 일이라면 비정규직이라는 "적은" 책임감을 주는 형태로 그들을 고용할 순 없다. 사람은 자신한테 주어진 책임감만큼의 역량만 발휘한다. 최저임금을 주면서 최고 노동을 요구하는 알바 사장님은 언제나 분노의 대상이지 않는가. 아니, 우리나라는 애국심을 가지라면서 왜 이렇게 안 좋은 것 투성인지 모르겠다.


카페가 따듯해서 그런지 화를 내다 땀이 날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카페 안에선 캐럴이 울려서 마음이 조금 진정된다. 갈증이 느껴져 모카 한 모금을 삼킨다. 과제에 너무 집중하느라 당이 너무 떨어진 것 같다. 마카롱을 한 입 베어 문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게 세상 이런 요물이 다 있나 싶다.


그러고 보니 “캐럴과 노조”, “모카와 투쟁”, “마카롱과 비정규직”, “직고용과 크리스마스"는 얼마나 기괴한 배치일까. 나는 왜 엄한 장소에서나 분개할까. 이 분노는 얼마나 사치스럽고 가식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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