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엔젤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사업을 한 지 10년 정도 되면서 여러 이유로 비상장 회사에 초기 투자를 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얼마 전 연말 정산을 하면서 지금까지 투자한 비상장 회사를 정리해보니 벌써 10개가 되었다. 더 늘어나기 전에 그간 투자한 소회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는 전문 투자자(VC, 엑셀러레이터)가 아니기에 딜 소싱을 위해서 쓸 시간이 없다. 그래서 비상장 투자는 보통 해당 회사의 대표와의 개인적인 인연에서 시작된다. 우연한 계기로 이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고 신뢰가 쌓이고 친해지면 나도 사업을 하는지라 자연스럽게 이 사람이 하고 있는 사업에도 관심이 가게 된다.
사업에 대한 관심은 '아니.. 이 사람은 도대체 뭐 때문에 좋은 직장, 커리어 내팽개치고 이 사업에 인생을 걸려고 하는 걸까?'에서 출발한다. 아직 시작전이라면 별로면 말려 보려고 유심히 이야기를 들어본다. 왜 이 사업을 하려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쭉 듣다 보면 감정이입이 되면서 어느새 함께 시장 진입 전략을 짜고 있는 나를 발견...
1)이야기에 매료되고 2)이 사람이 가고자 방향성과 비전, 사업적인 thesis에 공감이 가면서 3)내 기준에 이 사람이라면 할 수 있겠다는 본능적 느낌이 오면 보통 먼저 소액 투자를 제안을 한다. 이 본능적 느낌은 art의 영역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나에게 맞게 튜닝되고 있다.
원래는 지적인 역량과 포기를 모르는 grit에 끌렸다면 점점 더 비즈니스의 narrative를 잘 풀어낼 수 있는 역량과 인간적인 매력으로 흘러가고 있다. (왜냐고 묻는다면 뾰족한 답은 없지만, 사업의 스토리 텔링을 잘 해내는 게 사업을 잘하는 역량과 여러 가지로 맞닿아있다고 믿게 되었고, 인간적인 매력은 narrative 역량과 시너지가 나면 좋은 팀빌딩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봐서...)
아무튼, 사업하느라 바쁘고, 돈도 별로 없는 나는 왜 비상장 초기 기업에 투자를 하는가? 회사가 잘 돼서 돈을 벌면 좋겠지만 돈보다는 더 이기적인 목적이 있다. 내 사업 외적으로 내 인생에 의미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사업 스트레스가 극에 달 했을 때 나는 '의미 있는 인생'이란 무엇인지 읊조리고 현재 on track인지 여부를 확인하면서 잠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 결국 나에게 의미 있는 인생은 '의미 있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쏘 심플.
이를 내 사업 안에서만 찾고 싶지 않아서 회사 외부에서도 의미 있는 사람과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보았다. 초기 엔젤 투자를 한 대표님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인생을 걸고 하는 프로젝트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업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해주고, 고민 상담도 함께 하면서 매우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대표님들 사업을 배우면서 나를 더 똑똑하게 만들 수 있고, 회사가 잘 되면 나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나누면서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같이 운동을 하면서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기까지 한다... 사회에 나와서 누군가와 이렇게 깊고 유의미한 관계를 만들기가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이렇게 신뢰할 수 있고, 평생 갈 수 있는 롱텀 관계는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사는 것이 우월 전략이 아닐까?
아무튼 나와 인연을 맺게 된 대표님들 낯간지럽지만 우리 같이 힘내 봅시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성과는? (투자 라운드 기준이라.. 현금화 가능한건 아님)
반응이 좋으면 투자한 개별 기업 스토리를 풀어보고자 함.
by 전주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