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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Jan 30. 2024

결국 삐그덕, 고장 났다.

  둘째 녀석이 어디서 열감기 바이러스와 친구 먹었다. 갑작스러운 열이었다. 잠복기가 얼마였는지 모른다. 급하게 오르는 열에 긴장감도 고조됐다. 아이가 열이 나는 이유가 여러 가지라 구체적인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지켜보며 돌봤다.


간호 이틀째, 결국 아이 곁에서 두 시간 간격으로 열 측정하며 끊어 자다 탈이 났다. 뭐 좋은 거라고 나눠주는지 열감기가 고스란히 옮아왔다. 진짜 죽을 맛이었다.



밤새 오한이 들어 오들오들 떨었다. 골반부터 발끝까지 근육통과 관절통으로 인간다운 움직임을 포기해야 했다. 상비약으로 버텼다. 이틀차에는 오전부터 온몸이 뻣뻣해지며 39도 고열에 손발이 저려왔다. 다행히 검사결과가 독감도 코로나도 아닌 단순 열감기와 몸살이 심한 상태였다.


20대 후반의 어느 때, 이런 고열 증상으로 고생했었다. 그땐 버티고 일을 해야 했기에 수액에 의지했다. 빨리 맞고 살기 위함이 우선이 아니라 업무에 복귀하기 위한 이유가 컸었다. 몸을 갈아 넣을 가치의 일이었나 후회를 담아 씁쓸히 웃었다.


지금은 오로지 잘 버티며 아이들 케어를 위해 수액을 찾았다. 알뜰히 한 방울이라도 더 느긋하게 맞고 기사회생해야 하기에 주렁주렁 달린 수액들을 바라봤다. 그 와중에 가계부 걱정이다. 컨디션 관리와 평소 면역에 더 고집부렸다면 일주일치 애들 식비를 이렇게 날리진 않을 텐데 말이다.



갑자기 떠올랐다. 감기수액도 실비처리가 되나? 는 궁금증에 검색창을 켰다. 된다! 음성결과도 서류 제출이 합당하면 청구가 된다! 동시에 식비 일부는 돌려받을 수 있단 결과에 마음을 놓았다. 돈에 씁쓸해하고 돈에 마음을 놓았다.


감기 몸살 수액과 면역주사액, 해열제를 한 시간가량 맞았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다리 통증이 가셔지는 느낌이었다. 병원을 거의 기어들어갔다 걸어 나가는 기적과도 같은 효과를 봤다.


남편이 아파서 돌본다 해도 잘 옮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 간호 앞에선 여지없이 함께 앓게 되니 분명 난, 아이들을 훨씬 많이 사랑하나 보다. 차라리 엄마가 아프면 좋겠다는 감상적인 말에 나는 가차 없이 부정했었다.


"내가 아프면 니들이 더 고생이야. 아프려면 각자 아프자. 뭐 좋은 거라고 날 주냐. 애미는 열심히 간호하고 먹이고 하는 임무 수행을 착실히 할게."


그간 너무나 현실적인 해석으로 놀린 세 치 혀 때문에 벌 받은 거다. 올 초에 된통 앓았으니 남은 한 해는 건강하리란 액땜을 운운하며 마음을 털었다.


일주일 차다. 기어코 기관지염 초기 증상까지 보이며 더딘 회복에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주말을 넘기며 평소에 무의식으로 숨을 쉬는 당연한 행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큰 들숨은 금방 막히며 기침으로 터져 나온다. 짧게 조절해서 숨을 얕게 쉰다.


어릴 때 하교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서 적막을 가만히 즐겼었다. 지금도 들숨은 짧게 날숨은 길게 신경 쓰는 일이 마치 놀이 같다. 당시 고요한 적막에 내 숨이 섞여 흐트러질까 봐 가만가만 내어 쉬던 숨소리를 떠올렸다.


이번의 호된 통증은 생각을 버리고 내 상태에 집중하며 나를 더 돌보라는 신호로 여겨진다. 세세한 요소들을 나에게 집중시키며 즐기던 어릴 때 시간이 뭔가를 알려주려 자꾸 떠오르나 보다. 아프면 별게 다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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