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헤집고 다니는 짜증에 몸이 꼬인다. 인강을 듣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파트에 머문 지 한 시간. 대체 이게 뭐냐고 속으로 소리를 질러대며 머리카락을 움켜 잡았다.
원래 모른다 생각되면 시야가 좁아들어 이해의 폭도 그만큼 줄어든다. 뭘 의미하려는 내용인지 파악하려고 해당 절의 처음부터 낱자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이해를 돕는 핵심 단어를 찾아내서 검색했다. 아, 그제야 머리에 돌 튀는 소리가 들린다.
이불 위로 몸을 내던지고서 중얼거리며 정리를 했다. 그런데 짜증이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 책상에 앉아 그림 그리기에 열중하는 아이에게 향했다. 아이의 등에 머리를 기대고 내 허벅지 둘레보다 얇은 작은 품을 안았다.
힝. 공부가 너무 어려워. 잘 안돼.
엄마, 그럴 때는 계속 계속하다 보면 안 틀리게 될 거야.
나 봐. 나무도 못 그렸는데 이제는 이렇게 화분까지 잘 그리잖아.
여섯 살 아이가 말하는 '예술 나무' @지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아이가 이젠 더우니까 좀 떨어져 달라는 웃음 섞인 말에 서로 장난을 쳤다. 마음이 가벼워지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욕심이 나니까 당장의 어려움에 머리 터질 것 같은 거라며 남편이 말한다. 서로 얼굴 보며 같이 있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날에 쉬었다 해도, 천천히 해도 괜찮다 위로도 남긴다. 고맙지만 아이의 말보다 감동은 없다.
논어에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는 말이 있다. 허물이 있으면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는 의미다. 잘못을 모르는 것보다 잘못됨을 알면서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 된다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다른 시선으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라 선을 그으면 편협한 시선으로 가족들을 대하게 된다. 내 입맛에 맞는 상태로 바꾸려 기를 세우기 때문이다. 이득 없는 짓임은 분명하다. 구성원은 기회를 엿보다 튕겨 나간다.
고맙게도 우리 사이에 서로의 허물을 헐뜯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식구들마다 개성 있는 성향을 그러려니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안다. 상처되지 않고 둘러서 이야기하는 센스도 있다. 서운해도 순간뿐이고 악의가 있지 않기에 오해를 남기지 않으려 대화를 많이 한다.
가족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존재들과의 공존이다. 그러기에 우리 각자는 자신을 바르게 고쳐가며 어우러짐을 배우고 있다. 만나면 기분이 좋고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행복한 삶이 이루어진다. 볕은 뜨거워도 시원한 공기만 집으로 들어오는 날, 그깟 이해되지 않는 문장 몇 줄에 내 더러운 성질로 분위기를 망칠 수 없다. 성질 죽이고 오늘도 '차카게' 살아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