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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 Jun Sep 26. 2016

[동아시아면류학說]센고쿠역 元喜의 사누키 우동

나는 이 동네에 살지 않습니다. 괜찮지요?  

둘째 날이 되자 만사가 귀찮아지려고 했지만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길을 나섭니다.

게스트하우스를 빠져나와 드르르르 트렁크를 끌고 아침을 먹으러 갑니다.

점심을 맛있게 먹어야 하니까 가볍게 먹자.

전날 지나갔던 가구라자카의 사찰 앞 카페에서 모닝 세트를 먹기로 합니다.

부티스트 그루브의 독경을 들으며 밖에서 먹기로 합니다. 예의상 무릎은 모은다.

독경을 들으며 먹는 버터 토스트는 맛있습니다.

아 버터를 딱딱하지 않게 해주다니. 그렇지 버터가 딱딱하면 빵이 여간 뜨겁지 않으면 안 된다고.

기억해라. 버터는 말랑한 채로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말랑한 버터를 빵에 쓱쓱 발라서 먹습니다.

아. 버터 바른 빵이라니... 이런 건 한국에서 못 먹습니다.

한국에선 자제의 영혼이 나를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지방. 니가 얼마나 맛있는 지는 무지방 우유를 먹으면 바로 알 수 있지.

계획했던 미술관 중에 어딜 갈까 하다가 우에노 구역에 갔다가는 오늘 안으로는 못 올 것 같아서(미술관이 너무 많아서 나는 또 노동처럼 다니게 될 것입니다.)

한적한 위쪽 동양문고에 가기로 합니다.

내가... 여길 왜 왔지.
열람실은 닫지만 박물관은 여는 일요일입니다. 물론 열람실이 연다고해서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천장이 높은 공간은 언제나 기분이 좋아요. 입장료는 비싼편 900엔
박물관 정원과 카페는 비싸지만 언제나 가고 싶게 생겼습니다. 물론 가지는 않습니다.


삼각대로 찍은 유일한 사진. 동양문고 지박령 컨셉.


다 필요 없고, 점심으로 면을 먹기로 합니다.

타베로그를 켜서 근처의 면집을 찾습니다.

사누키 우동 겡키.

오 높은 점수를 받은 우동집이군. 오늘은 여기에.

슬슬슬 걸어서 우동집을 찾아갑니다. 점심시간에 맞춰 갔더니 웨이팅이 있었어요. 아이를 데려온 젊은 부부, 커플들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있었습니다.

저도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한자로 세 글자 적을까 하다가, 점원이 내 이름을 훈독하면 나인지 모를 것 같아서 그냥 JUN이라고 적었습니다.

나중에 "쥰 사마, 쥰 사마"이래서 못 알아 들었습니다만. (못 알아듣기는 매한가지네...)

이보게, 뭘 여기까지 찾아오고 그러나


다먹고 나올 때 사진이지만, 처음인 것처럼 .


20분쯤 기다렸을 까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가게는 가득 찬 것은 아니더군요. 자신들이 요리해서 대접할 수 있는 사람들만큼만 들여보내는 게 맘에 들었습니다.

바와 테이블 3개로 구성된 조촐한 가게
혼자 오면 언제나 바 자리라서 좋아요.

기다리면서 메뉴판을 보아서 메뉴는 이미 결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900엔짜리 겡키 세트! 선택한 우동과 오늘의 반찬이 나오는 세트였습니다.

능숙하지 않게 더듬더듬(...) 주문을 하고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물도 맛있는 물을 줍니다. 맛있는 물 좋아요.

얌전히 앉아 있는데 저와 비슷하게 입장한 부부 중 아버지가 아이에게 '오뎅 먹을래?'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오뎅? 오뎅 오...오뎅?

아버지가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커다란 오뎅 냄비에서 오뎅을 몇 개 골라서 가져왔습니다.

눈알을 굴리며 슬쩍 쳐다보니 1개에 1500원 정도 하는 오뎅이 꼬치가 수북하게 냄비에 꽂혀 있었습니다.

능숙한 척 스르르 일어나서 오뎅을 가지러 갑니다.

이때까지는 제가 세트를 시켰다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냥 배가 고팠어요.

비밀이지만 나...무 매니아에요. 무 너무 좋아.

시즈오카식까지는 아니어도 시커먼 국물에 담긴 오뎅이 신기하고 좋습니다.

평일 한정 90엔이라지만, 오늘은 평일이 아니니까.

무와 완자 어묵 꼬치를 가져왔습니다. 꼬치 끝에 빠지지 말라고 곤약 조각을 끼워 놓은 게 귀엽네요.

이런 디테일이 역시 귀여워요.


어묵인데 묘하게 완자의 식감이 있는 동글동글이
무...무가 좋아 무가 좋단 말이야.하악하악 (무성애자)


제게 오뎅의 존재를 알려줘서 고마워요. 오토오상.  뒤에는 제면실.


맛이 좋았는데, 무가 좀 커서;; 배가 부른가.. 아닌가 하던 찰나.... 음식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으응?

세트에 밥이 있습니다? 아니, 내가 메뉴에서 읽은 건 오늘의 반찬이 붙은... 우동 세트였는데...

밥이 있네? 부실한 일본어 독해는 생각지도 못한 밥을 가져오고야 마는데...

타키코미고항처럼 다싯물에 버섯과 당근을 넣어 만든 맛있는 밥. 양도 많아요.


예상하지 못했지만... 주..주는 거니까 일단 좋다.

이때부터 오뎅을 먹지 말걸... 아니면 무만 먹을걸 약간 후회할랑 말랑.

오늘의 반찬은 튀긴 가지 요리. 서른이 넘어서 가지, 너의 맛을 알게 되었다. 너는 맛있는 것. 그런 것.
우동은 生醤油우동입니다. 차가운 면에 무를 갈은 오로시, 스타치 즙,  생간장을 뿌려 먹는 거에요.
사누키라서 인가. 면발이 아주 단단하고 쫄깃합니다.
오로시를 섞고 간장을 슬슬 뿌려서 네 줄기를 집습니다. 으아 이 면은 딴딴하다!

더운 여름날, 치감이 좋은 찬 우동 한 그릇을 먹는 것은 무척 좋은 일이에요.

생간장을 슬슬 조금씩 쳐가면서 여름의 오로시를 뒤적뒤적. 스타치의 향이 슬쩍 면위에서 감돌면 코로 한 번 냄새를 맡고 후루루루룩. 오물오물오물오물 씹어 넘깁니다. 조금 씹긴 해야 해요.

그냥 목으로 갈 순 없습니다. 면이 딴딴딴딴 하거든요.


타베로그의 리뷰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면에 압도적인 강력함이 있다. 

사스가... 나루호도...

압도적인 강력함으로 다 먹었다....


결국 남김없이 다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뎅 2개, 맛간장 버섯밥, 튀긴 가지, 그리고 생간장 우동.

여러분 제가 이런 여자입니다.


우동집 바에 앉아 있었을 때 어쩐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이 동네에 살지 않습니다. 뭐, 괜찮지요? 응, 역시 괜찮네요.'

주민이 아니어도 주민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을 주는 곳이에요. 여기.

주말이 되면 동네 주민인 것처럼 슬슬 가서 카레 우동도 한 번 먹고 튀김 우동도 한 번 먹고... 그러고 싶은 집이었습니다.


다 먹고 슬슬 걷기 시작할 때 동네 야구부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유니폼을 입은 스무 명 남짓되는 아이들이 날랜 날치 떼처럼 일요일의 거리를 질주합니다.  

아직은 무더운데도 일요일의 야구를 하러 달려갑니다.


리쿠기엔(六義園) 옆에 야구를 할 수 있는 공원이 있더군요. 리쿠기엔 담벼락을 걷다가 그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슬슬 걷고 또 걷습니다.




길고 붉은 담벼락 밑을 걸어 갑니다.


타베로그 링크는 여기에.


讃岐饂飩 元喜

03-3945-8017

東京都文京区千石1-19-8 エクセル千石 1F

http://tabelog.com/tokyo/A1323/A132301/1302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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