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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Jul 19. 2020

발코니에서 득도를

지금을 원하라

갑자기 이런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이발소에 손님이 없을 때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보며 많은 것을 배운다. 새로운 헤어 컷팅 기법과 디자인도 많이 올라와있거니와 자상하게도 가르쳐주니 잠깐씩만 들여다봐도 바로 손님 머리손질에 써먹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집안에서 각종 허브를 키우는 동영상을 보다가 길고 긴 겨울날에 푸른 싹을 틔워보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시작한 것이 보리새싹 키우기였다. 겉보리를 사야 해서 아마존을 다 뒤져 5 파운드 짜리 한 봉지를 주문하여 동영상에서 본 대로 시도를 하였더니 연두색 새싹들이 올라와 잔디처럼 튼실하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워 한걸음 더 나아가 허브 씨를 종류별로 주문을 하고 모종 틔우는 컨테이너와 히팅 패드, 흙까지 주문했더니 속속 배달되어 야심 차게 인도어 파밍을 시작했다. 베이즐과 파슬리, 레몬 밤의 깨알보다 작은 씨앗으로 시작된 싹틔우기가 재미있어 토마토를 먹다가 씨를 쭉 짜내어 묻은 게 마구 자라나와 이 사람 저 사람 나눠줄 만큼 튼실한 모종이 되었고 레몬차를 마시며 얻은 씨앗을 싹 틔워 아기 레몬트리가 댓 그루 자라고 있는데 씨를 뱉어 묻는 데에 맛이 들리다 보니 시도하는 씨앗이 점점 커져 망고 씨에 아보카도 씨까지 싹을 틔워보기에 이르렀다. 워낙에 크고 단단한 놈들이라 싹을 보는데 만도 한 달은 걸렸는데 그 두꺼운 껍질을 깨고 뚫고 나오는 싹은 더욱 신비롭다. 이렇게 작디작고 여리디 여린 싹이 자라나 그렇게 큰 나무가 되고 또 열매를 맺고 그 안에 다시 단단한 씨앗이 들어차는 자연의 이치가 재미있고 놀랍다. 일미진중 함 시방, 일체 진중 역 여시. 하나의 지극히 미세한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들어있고, 온 우주 속에서 하나의 티끌이 들어 있으며 일체의 티끌도 이와 같다는 뜻인데 이리도 긴 말이 일곱, 일곱 하여 열여덟 자로 표현될 수 있는 한자어도 참 멋지다. 씨앗 발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모든 진리가 한 번에 통째로 들어오고 흡수되고 이해되는 ‘봄과 깨달음’ 이 동시에 일어나 그야말로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경지가 이것이었다. 때맞춰 씨 뿌리고 할 일 하면서 기다리다 보면 어떤 해는 자연조건이 잘 맞춰줘 풍성하게 수확이 되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자연재해로 좀 적게 수확이 되기도 하지만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거기에 맞춰서 먹고살아지는 자연의 이치를 농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오는 것이 흥분되고 재미나서 야채 과일 씨 뱉기, 쭉 짜기가 취미생활이 되어간다. 아파트 삼층에 살기 때문에 마켓에서 흙을 사 가다 큰 컨테이너에 쏟아놓고 쓰는데 그 흙을 만질 때 손에 느껴지는 푹신함과 흙의 향기가 마음을 포근하고 편안하게 해 주고 또 그냥 왠지 좋아 하루라도 안 만지면 영혼이 아파오는 듯하여 삼층까지 마트의 포장 흙을 사다 나르느라 죽을 똥쌌다. 바나나도 속 씨를 파내어 묻으면 나온다기에 그나마 부담이 덜 가는 베이비 바나나를 키워보려 속 씨를 파내어 묻었다. 처음엔 씨 묻힌 자리마다 종류별로 이름표를 예쁘게 써서 꽂아놓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이 씨앗 저 씨앗을 하도 많이 묻다 보니 것도 일이라 나중에 자라나면 뭐가 나오는지 저절로 알게 될 텐데 싶어서 이름표를 생략했다. 파는 소파와 대파를 뿌리 부분을 길게 잘라 화분에 파묻고 마늘도 몇 통 쪼개어 묻었더니 싹이 올라오긴 하나 성에 차지 않아 아예 대파 석단을 단채로 통째 심어놓고 마늘은 스무 통쯤을 쪼개어 화분 두 개에 빽빽이 묻었더니 싹이 마구 자라 올라와 가위로 한방에 싹둑 잘라먹는 재미에 영어 때문에 쌓인 분이 풀린다. 하도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묻어두었더니 떡잎 몇 개로는 그게 이 건지 저게 그건지 알 수가 없고 좀 더 자라 봐야 안다. 아무리 작은 새끼 잎이어도 뜯어서 냄새를 맡아보면 깻잎 향이 나고 토마토향도 난다. 그 오래고 오랜 세월 동안 깻잎은 깻잎대로 토마토는 토마토대로 자신들의 사이클을 되풀이해오고 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우리의 십 대 전 조상의 얼굴과 체형을 떠올릴 수 없어도 우리 몸은 그 조상의 몸을 그대로 재현해 보여주고 있다니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놀랍다. 갑자기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먹어도 먹는 게 아니고 자도 자는 게 아니고 돈을 벌어도 버는 게 아니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니 너무 열심히 살지 말고 너무 결사적으로 원하지 말라고 한다. 이대로 삶은 완벽하고 충분히 족하고 족하니 그저 지금을 원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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