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편지 한 장이 있습니다
보내준 편지는 잘 읽었네. 답장이 늦었지만 마음 한 구석엔 얼른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늦은 회신에 너무 마음 상하지 않았으면 하네.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면 돌멩이는 금방 물속으로 가라앉지만 파동은 얼마 동안 남지. 파르르-
사람의 마음도 똑같아. 사람 몸의 70%가 수분이라는데 그 찰랑이는 사람에게 말과 행동, 상황의 돌이 던져지면 마음에도 파동이 일겠지. 사람은 그 물결을 따라 살고.
어제는 기쁨으로 살았어도 오늘은 분노로 살지. 내일은 알 수 없고. 우린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으로 추진력을 얻어 순간을 산다고 할 수 있겠네.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언제나 매 순간 이성만 가지고 살았던 적이 있던가?
가슴 터질 듯한 환희의 순간에 굳은 몸을 했었나? 아니,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뛰며 박수를 쳤지. 분노로 욱여넣은 마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에 생글생글 웃었나? 아니, 입 안에서 터져 나온 소리를 내뱉고 바닥에 가만히 있는 돌멩이에 한껏 마음을 담아 걷어찼지.
생각해보면 나는 이성이 아닌 감정에 따라 살았어. 이성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지만 감정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였지. 누군가는 감정이 이성보다 덜 떨어진 멍청이 같다고 하지만 나를 흔들어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은 언제나 감정이었다네. 감정이 나를 살게 했지. 나는 내 요동치는 느낌의 울림으로 살았네. 그 흔들림을 사랑했지.
어떤 일에 대해 우리가 느낄 수 없다면, 무언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우리 삶은 얼어버린 연못이 된다네. 그래서 우리는 얼지 않았을 때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고, 다양한 감정을 터득해야 하지. 마음을 넓히는 건 나를 확장시키는 일 일세. 넓은 연못은 수면 위는 얼어도 조금 더 깊이 내려가면 얼지 않지. 하지만 좁은 연못은 얼면 생명이 살 수 없어.
그렇다고 얼어버린 넓은 연못이 꼭 좋다는 건 아니야.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할 생명들이 수면 아래에 갇혀 이리저리 맴돌기만 하면 그게 살라는 명령에 합당한 행동이겠는가. 뛰어오를 것은 뛰어오르고, 터져버릴 것은 터져야 연못에도 공간이 생기지. 우린 시간을 따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공간을 넓히며 살아야 해. 한없이 들어찰 것들이 인생에 가득하니까. 하다 못해 연못이 아닌 어항에 쓸 데 없는 것으로 채우면 물고기가 헤엄 칠 공간이 있겠나? 무조건 꾹- 꾹 담아둘 순 없다는 걸 기억하길 바라네. 어떤 것은 버려야만 물고기가 살 수 있어.
얼어버린 감정으로는 생을 만지고 느낄 수 없다네. 감정은 언제나 불이 붙어 있어야 해. 항상 열정적이고, 화를 내라는 말이 아니야. 어떤 감정이든 불씨가 있어야 해. 그래야 내게 자극이 전해지면 불씨가 타닥타닥 튀어 올라 불꽃이 피지. 살아서 춤추는 불꽃을 볼 테고 그 불꽃에 맞춰 인생의 무대에서 춤추는 나를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지금부터 노래에 맞춰 춤을 추게. 관객이 되지 말고.
그게 절망이든, 즐거움이든, 노여움이든,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노래든.
이건 무대를 넓힐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야. 감정은 내가 살아있다는 신호고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지.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음을 가장 확실하게 알려줘. 나는 언제나 존재하는데 나를 느끼지 못하는 순간은 허다해. 하지만 조금만 나를 들여다보면 나는 분명 내가 인지하지 못한 순간에도 어떤 감정에 휘둘려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나처럼 나이가 들면 감정도 나이가 들어. 많은 걸 경험했으니 더 역동적이고 화려한 춤을 출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보폭이 줄어들지. 삶의 웬만한 불꽃을 경험했기 때문에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불꽃이 아니고서야 시큰둥하지. 불꽃이 시드는 거야. 사람은 어쩌면 큰 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점점 꺼져가는 불꽃을 가지고 사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네. 그러니 모든 순간에 언제나 활활 타오르는 게 좋겠어.
모든 감정을 겪어야 생을 알 수 있지 않겠나. 살아있는 한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느끼며 살 걸세. 그 느낌을 스승으로 삼아 나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게. 사실 그 스승은 내 곁을 벗어나지 못하지. 죽기 전까지 말이야. 어쩌면 가장 좋은 스승은 모든 걸 느끼며 사는 나인지도 모르겠네. 내가 스승이 될 수 있다니 겸연쩍지만 너무 멋진 일 아닌가!
물론 닮고 싶지 않은 스승도 있을 걸세. 하지만 스승의 단점에서도 배우고 깨닫는 것이 진짜 공부하려는 제자의 자세 아니겠는가.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하지. 배움은 내게로 떨어지는 것만 주워 담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 것을 주워 먹고 그 든든한 포만감에 힘을 얻어 앞으로 나가는 것이지. 그러니 자신에게서 배울 것을 찾아. 내가 나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분명 나는 매력적인 사람일 테니. 아니지, 매력적인 사람은 자신에게서 배우려 하는 사람이라 하는 게 좋겠네.
그대의 감정을 무시하지 말게. 그건 언제나 그대가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살아있을 수 없어. 그건 그대도 잘 알고 있지. 그러니 살아있는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모두 받아들여 보려고 하게나. 넘실거리며 오는 것이든, 스멀스멀 오는 것이든, 벼락같이 오는 것이든. 받아들이는 만큼 그대와 그대의 세상은 넓어질 테니.
그대의 감정을 잘 쥐어 봐. 그러면 그대의 감정을 넘어서 더 많은 것을 쥘 수 있을 걸세.
건투를 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