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시간이 빨라져 그런지,
새벽마다 방 문을 긁는 사랑이 덕인지.
몇 달째 새벽마다 눈이 떠진다. 뜰 수밖에 없기도.
말씀으로, 기도로 시작하고,
밤사이 지나간 세상의 소식을 읽는다.
참 신기하게도 혼란이 시작되고,
많은 걸 깨달은 이후로 난 새벽에 깬다.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새벽에 깨는 게 아니라 깨우시는 것이란걸.
그동안 인스타에 써왔던 글도
내가 쓰고 싶어 쓴 게 아니라, 쓰게 하셨음도 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이다. 새벽기도에 가고 싶었지만, 새벽에 그 짧은 거리를 걷는 게 조금 안전한 건 아니라서.
양심상 하루는 새벽에 빠른 걸음으로 다녀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엎드려 기도한다. 마음이 혼란스럽다.
자꾸 나를 흔들려 떠드는 세상의 소리가 내 삶에서도,
사랑하는 나의 엄마의 삶 속을 통해서도 흘러나온다.
분노할 수밖에 없는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음.
소음으로 가득 찬 새벽에 기도한다.
기도가 잘되지 않는다.
이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
예수님의 마음을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이 새벽에 느끼는 내 마음과 비슷할까?
그러나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깊이겠다.
그 혼란의 폭풍 속에서도
그가 십자가에 달린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마음을 어떻게 지켜냈을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에 달려 죽기 전, 인류의 대속자도 두려웠다.
그는 십자가 앞에 두려웠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으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했었다.
그러나 숨을 거둔 그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쪽으로 찢어졌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막힌 것이 사라졌다.
모든 인류는 속죄함 받았다.
오직,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견디었다.
오직 하나.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나는 십자가로 인한 값없이 주어진 삶에
합당하게 살았는가?
인류를 향한 눈물과도 같은 핏방울에
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감사를 잃어버린 채,
마치 나의 피처럼 당연하다는 듯 살아왔다.
그는 오로지 하나, 사랑으로 모든 것을 견디었다.
모든 핍박과 박해 속에 사랑 하나로 견디었다.
가장 큰 사랑 앞에 조롱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조롱이 없었다면
그 사랑은 가장 강력한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어지러움 속에,
진리를 따라야 할 자들이 비진리의 편에 서 있는 이때에,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이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 속에, 이제는 나도 그만 말하고, 그저 모든 일상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길 바라는 새벽에,
다시금 결심한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늘 옳은 예수의 사랑 곁에 서 있자고.
오직 사랑 곁에.
그 진리를 지키라고 값없이 삶을 내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