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물로켓

by 주명


'더 이상 고래는 노래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짧은 글을 읽었다. 대왕 고래는 짝을 찾기 위해 낮은 음의 노래를 부르는데 포경으로 고래 수가 줄어들자, 멀리까지 들리게 높은 음으로 노래 불렀다고 한다. 최근에는 먹이인 크릴까지 사라지면서 발성이 감소했고, 노래가 40% 정도 사라졌다는 내용이었다. 속을 알 수도, 끝을 알 수도 없는 대양에서 노래를 불러내 사랑의 대상을 찾는 게 고래였다. 마치 낭만을 안다는 듯이.


고작 물로켓 같은 비행체라도 끝까지 우주에 도착하길 바라는 맘으로 '잘 가, 꼭 목적지까지 잘 가야 해'하며 하늘을 향해 눈물을 조금 머금고 꿈을 쏘아 올리는 사람들의 바람이 있다. 보잘것없어도 마음을 담으면 그건 인류가 최초로 쏘아 올렸던 역사와 최신 기술로 구성된 장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도전이 된다.


깊은 바다의 어두움과 혼란, 때로 고요 속에서 고래는 사랑을 찾는다. 노래를 부른다. 그게 생존과 개체 수 유지를 위한 자연의 단순하고도 위대한 법칙과 본능이겠지만 고래는 마음을 다 해 표현한다. 노래를 부르는 건 고래의 세계에선 당연한 일이라 고래 끼리는 비웃지 않겠지. 구애의 음률이 새롭거나 놀라운 건 고래가 아닌 동물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다. 고래가 아니면 알 수 없다.


하찮은 로켓이라도 열과 성을 다한 사람에게는 꿈과 희망의 결정체가 된다. 허무맹랑한 꿈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은 성공과 규모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거라 실패도 쉽게 말하겠지만, 성공하지 못했을 때의 좌절과 다시 추진하기 위해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의 난이도와 지새운 밤은 모른다. 오직, 만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뇌와 바람이 있다.


고래만이 하는, 개발자만이 하는 애정과 노력이 있다.


아이일 때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꿈을 묻던 어른은 어차피 꿈은 꿈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포기를 살았으면서 왜 꿈을 물었을까. 꿈은 정말 꿈이기만 할까. 나는 왜 노력과 애정을 속으로 비웃는 사람이 되었을까. 나도 어른이 된 걸까. 여전히 낭만은 영화와 소설 속에만 있는 허상이 아닌 실제고, 사람들의 비웃음은 누군가의 위대한 시작의 전조였다.


바다를 가르든, 하늘을 가로지르든

더 높이, 멀리, 길게 날아갔으면 좋겠다.

고래가 쏘아 올리는 물로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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