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몇 주 동안의 주말 루틴이 생겼다. 매주는 아니지만 매번 예배를 드리고 쇼핑몰에 가서 내 얼굴 톤에 맞다고 여겨지는 립 제품을 사고, 서점에 간다. 그러고 나서 카페에 간다.
나에게 잘 어울려서 좋아했던 립 제품이 단종 됐다. 단종 이후에 남아있는 재고를 인터넷으로 샀었는데 이제 그마저 내게 없다. 이것저것 아무리 발라봐도 내 얼굴에 딱 맞는 색이 없다.
코랄톤이 잘 어울렸는데 나이 덕분인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어릴 적에는 어울리지 않던 말린 장미색이나 연한 모브톤이 맞는 듯하다. 최근에 세 개의 립을 샀다. 오늘 산 건 그나마 최근 구매 제품 중 가장 낫다. 내 나이에 생기라는 단어는 억지로 젊어지려 하는 헛된 노력 같다. 그렇다고 분위기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면 더 나이 든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싫다. 그럼 뭐 어쩌라는 건지?
아무튼, 립을 사고 난 뒤에는 서점에 간다. 새 책을 사고 싶을 때가 있고 중고서적을 사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기준이 어떤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끌리는 대로 산다. 어떤 책을 읽고 마음에 여운이 남거나 흥미가 생기면 작가의 또 다른 책을 연달아서 구매하는 게 내 독서 습관 중 하나다. 어제까지 박준 작가의 산문을 읽었고 그의 시집 두 권이 내 방 책장에 있는 걸 확인하고 오늘 그의 다른 책 두 권을 샀다. 작년에 출간된 시집 한 권과 오 년 전에 나온 그의 시가 담긴 그림책. 그의 서정성과 낮은 슬픔은 따뜻하고, 나는 날카롭다(고 제미나이가 평했다). 내 문체가 국내 작가 중에 누구와 비슷하냐 물었더니 박준 작가와 비슷하다나.
입술에 부드러운 색을 바른다고, 크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립을 바른다고 포근한 사람이 될 수 없는 거겠지. 멜팅 밤을 바른다고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겠지.
차가운 사람? 따뜻한 사람? 어떤 온도의 사람인지 모른다. 나는. 나는 그냥 내가 될 거야.
허벅지가 훤히 드러난 반바지에 검은 후리스를 껴 입고 허스키로 보이는 하얀 털에 검은 잉크를 묻힌 듯한 저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처럼. 마음대로 옷을 입고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오는 저 견주는 내 눈에 보일 때마다 개에게 끌려다니는 듯하다. 어쩌면 인생도 내가 걷는 게 아니라, 인생이 나를 끌고 가는지도.
견주 뒤로 보이는 산책 코스에 있는 철봉에는 왜 유독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할아버지들이 더 매달려 있는 걸까. 봉을 놓지 않으려는 건 삶에 대한 애착 같은 걸까. 어쨌거나 그것도 할아버지 마음이지 뭐.
나도 내 마음대로 살고,
허스키도 자기 마음대로 걸어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