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맛이 인상적이었던 카페에 다시 왔다. 바닐라라떼 한 모금 홀짝했을 때, 커피가 아니라 간장맛이 났달까.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찾아왔다. 차가운 플랫 화이트 한 잔을 주문했고 굳이 창밖을 봐야겠다는 일념으로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있는 창가 오른쪽 구석에 몸을 구겨 앉아있다.
눈앞엔 오래된 상가가 있던 자리에 공사가 한창이다. 흙먼지를 일으키는 포크레인의 작업에 시간도 함께 먼지처럼 사라진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시점부터 이곳은 늘 내게 같은 풍경을 선사했는데 이제 없다. 브랜드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일 테고 멀리 있어도 보이던 건물이 고층에 가려지면 저 너머의 산도 볼 수 없게 될 테지. 이젠 생각 너머로 산을 떠올려야겠지. 생각 너머로 떠올릴 게 산 뿐이겠냐만은. 시간을 들춰보면 층층이 쌓여 있는 먼지 같은 사건들, 감정의 격차가 만들어낸 굴곡진 능선이 있겠지. 내 인생도 저 뒷산의 능선을 닮았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오늘처럼 생각할 수도 없겠지. 인생을 감상하게 만드는 풍경이 자꾸 사라진다. 더 멀리 떠나야만 인생을 마주할 수 있는 걸까.
추워도 제법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 거리를 나서는 게 꺼려지는 삼월이다. 가벼워져야 한다는 걸 무의식의 몸이 부추긴다. 일월도 아닌 한참 지난 삼월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는 걸 계절의 변화에서 배운다. 어느 ‘지점’에서 시작하는 건 중요하지 않겠다. ‘시작’이 중요한 거겠지.
오른쪽 손목이 아픈 지 꽤 됐다. 등과 어깨가 아픈 지 두 달이 넘어간다. 들어맞지 않는 곳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니 당연한 일. 시작이 늘 힘차고, 미래를 기대하게 되는 지점은 아니다. 어떤 시작은 불편하기만 하다. 모든 게 예상되는데도 뛰어들 수밖에 없는 건 어리석은 게 아니라, 때론 어쩔 수 없는 떠밀림이기도 하다. 인생이 어느 지점에선 내 마음대로 되지 않듯.
떠밀려 온 여기 삼월에서 나는 무엇 하나 재미없는 시작을 맞이한다. 그리고 입을 오므려 봄이라는 단어를 내뱉는다. 겨울보다는 가볍다. 한 글자니까. 그래, 겨울보단 봄이 사근사근하겠다. 더 상냥하겠다.
다시 찾아온 카페의 커피에서 간장맛이 나지 않는다.
입안을 맴도는 커피의 향이 내 삼월을 감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