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인투자자로서 사춘기를 겪고 있다.
그동안 자산배분 투자를 원칙으로 삼았다. 토니 로빈스의 ‘MONEY’를 통해 레이달리오의 올웨더(이 책에서는 올시즌스라고 표현했다) 포트폴리오를 배웠다. 그 뒤 브리지워터의 리포트를 참고서 삼아 자산배분 투자를 시작했고,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비슷한 투자 원칙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포트폴리오를 곁눈질 해가며 나만의 올웨더 포트폴리오를 다듬어 갔다.
2020년 3월 펜데믹으로 시장이 크게 추락할 때도 나의 심리는 단단했다. 주식의 수익률은 빠지지만 그만큼 채권의 수익률이 올라왔다. 채권 비중이 늘어난만큼 팔고, 그 돈으로 주식을 사면 오히려 저가 매수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시장은 금새 회복했고 주식은 사상 최고가를 연거푸 경신했다. 올웨더는 주식 비중이 30~40%로 높지 않아 강세장에서는 소외감이 들기 마련이다. 100% 전부 주식에 올인했더라면 수익률이 더 높았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불과 몇개월 전의 펜데믹 쇼크가 기억에 생생했기 때문에 아쉬운 수익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신 내 포트폴리오는 아래로도 변동성이 적을테니 말이다.
내 심리를 흔든 것은 점점 늘어가는 주식 비중이었다. 정석 올웨더라면 주식 일부를 팔아 비중을 낮추고 채권, 금, 원자재 중 비중이 낮아진 자산을 사야했다. 문제는 한번 산 주식은 수익이 나든, 손실이 나든 팔기 어려워 하는 나의 투자성향 때문에 리밸런싱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데서 비롯 되었다. 강세장에 힘입어 주식 비중이 40%, 45%를 넘겨 50%에 육박하게 되었는데, 더이상 올웨더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는 매수하고 그냥 깔고 앉아 버티는 소위 ‘바이 앤 홀드’ 전략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산배분은 정기적으로든, 비중 밴드에 의해서든 리밸런싱을 해주어야 하는데 나는 칼 같이 리밸런싱을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팔아야 하는게 주식이든, 채권이든, 미련이 가득하여 미적거리기만 하는 스타일이었다. 투자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같다. 이런 면모를 미루어 짐작하건데 퀀트 투자 역시 나에게 맞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다시 들춰보게 된 것은 가치투자였다.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 가치투자보다 자산배분을 선택한 것은 딱 한가지 이유는 나의 증권분석 실력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직접 발굴한 주식이 정말로 저평가 된 것인지, 앞으로 성장성이 있을지 신뢰할 수가 없었기에 기대 수익률을 낮추고, 단순한 레시피에 따라 리밸런싱을 하면 되는 올웨더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돌아서 다시 가치투자가 길이라니…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구루들의 책을 독파했다. 벤저민 그래이엄, 피터 린치, 워렌 버핏, 장마리 에베이야르, 존 템플턴, 앙드레 코스톨라니까지 한국의 투자자로 돌아와서 강방천, 이채연의 책들을 읽으며 대가들의 투자 원칙과 방법론을 공부했다. 애스워드 다모다란의 책을 통해 가치평가를 위한 밸류에이션 방법을 공부했다.
가치투자에 대한 이해를 약간이나마 쌓고(책으로 공부한 것이므로 이해한 것이지 체화한 것은 아니다), 재무제표를 보며 저평가 된 국내 주식을 찾아보았다. 올해 7월에는 어느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 올웨더의 비중을 축소하고 새로 계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공부했던 기업들, 2~3년 이상 보유를 바라보고 80% 이상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업을 골라냈다. 아직 자신이 없어 3개의 종목으로 분산했는데, 싸고 유망한 종목이 눈에 보이면 또 사고 싶은 마음이 들어 지금은 5개 종목을 매수하고 있다.
이렇게 개별 종목 투자를 하게 되니 올웨더를 운용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에 할애해야 했다. 하지만 올웨더는 더욱 방치 시키고 있었는데, 자산 간 비중도 원칙에서 벗어나 있고 리밸런싱마저 하지 않으니 자산배분이 의미가 있나 의구심이 들었다. 이미 아무 대응도 하지 않는 상태지만 더 가열차게 가만히 두고 싶었다. 어차피 이렇게 리밸런싱 없이 바이 앤 홀드 전략을 고수할 거라면 올웨더보다 S&P500을 적립식 매수로 모아가거나, 빅테크 종목을 급락할 때 모아가는 편이 내 투자 스타일에 더 잘 맞을 것 같았다. 어차피 올웨더의 주식 안에 S&P500과 나스닥100을 추종하는 ETF가 있었으니 이 종목을 중심으로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올웨더 전략은 S&P500, 빅테크 바이 앤 홀드 전략으로 변경하였다.
결국 지금 내가 관리하는 계좌는 미국주식(바이 앤 홀드) 계좌, 한국주식(가치투자) 계좌, 나와 아내의 연금/IRP 계좌 5종(자산배분) 그리고 테슬라를 보유 중인 계좌까지 총 8개 계좌가 되었다. 계좌마다 추종하는 전략도 조금 다르고, 보유한 종목도 다르다 보니 산만하기 그지 없다. 그나마 다행인건 모두 장기보유 하는 전략이라 따박따박 매수만 하고, 더 이상 들여다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지난 2년에 걸쳐 투자 원칙을 재정립하고, 포트폴리오도 정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역시 나의 종목 발굴 능력은 믿을게 못 되어 자산배분을 고수하는게 맞는 것 아니었을까 의심도 들고, 직접 발굴한 종목에 믿음이 부족하여 다시 검토하고 의심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사실 자산배분, 가치투자, 모멘텀 투자 같은 전략들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흔들리는 투자원칙과 장기간 하나의 원칙을 고수하지 못하고 투자 전략을 뒤집어 엎는 투자자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전에는 올웨더 스타일의 자산배분이라는 뚜렷한 원칙을 가지고 투자를 했다. 지금은 원칙을 잃은 채 방황기를 보내고 있다. 연금계좌들은 60:40 자산배분을 하고 있고, 미국계좌는 적립식으로 사고 장기간 버티는 투자를 하고 있다. 한국계좌는 가치투자를 하겠다고 저평가 주식을 골라 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전략들을 문어발처럼 펼쳐 놓고 있으니 정신 없기 짝이 없고, 장기간 성공적인 투자를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 시기를 거치며 나의 투자 원칙들이 더 다듬어 지리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전략, 저 전략 기웃거리며 계속 사고, 팔고를 반복하지는 않아서 한 숨 돌린다. 질풍노도 같은 투자 사춘기는 아니라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