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를 막으려는 고려아연 경영진의 청야전술, 어떻게 봐야 하나?
지난 주,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던 고려아연 공개매수전은 83:83의 동점 상황을 만들면서 연장전으로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MBK가 기존 공개매수 마지막 날 83만 원으로 매수가격을 인상하면서 (최소 수량도 삭제) 공개매수 기간이 10일 연장된 것인데, 이는 앞서 고려아연 이사회(경영진)가 발표한 약 2조 7천억 규모의 자기주식 공개매수 조건과 사실상 같은 것입니다.
이번 MBK의 공개매수에 대한 회사의 대규모 자사주 취득은 한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대규모 공개매수에 대한 회사 경영진과 이사회의 방어수단 활용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1985년 Unocal 사건 [관련 링크], 일본의 2005년 닛폰방송 사건 [관련 기사]과 상당히 유사하고, 앞으로 우리나라 자본시장 실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례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반적으로 포이즌 필이라고 불리는 회사 경영진의 공개매수 방어수단은 기존 주주에 대한 낮은 가격의 신주예약권 발행 (shareholder rights plan)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공개매수자가 투입하는 돈에 비해 취득할 수 있는 지분율을 낮춤으로써 공개매수의 실익을 없애려는 방어 전략인데, 적어도 회사의 자금이 직접 쓰이지는 않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고려아연 이사회는 공개매수자의 매수가격보다 높은 83만 원으로 자기주식을 매입하여 소각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회계적 재원은 원래 해외투자 및 자원사업 등을 위해 적립해 두었던 돈 (약 7조 원)이고, 현실적 재원은 CP 발행, 고금리 단기차입 등을 통해 조달한 신규 부채 약 2조 7천억 원이라는 점에서 사상 초유의 '청야전술'이라 불릴만 합니다.
누구든 공개매수자가 등장하면 기존 경영진과 이사회는 해임의 위험에 직면합니다. 따라서 회사의 자원을 이용해서 '수성전'을 펼치고 싶은 유인이 있게 됩니다. 따라서 공개매수에 대항하는 방어수단이 적법한지에 대한 판단은 기본적으로 '그것이 개인적 이익이 아닌 회사와 전체 주주를 위한 것이었는지' 여부가 되고, 이러한 원칙은 미국과 일본에서 거의 같습니다.
물론 공개매수를 방어하려는 회사의 경영진과 이사회가 '자신의 유임을 위해' 공개매수 방어수단을 결의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두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한 명분을 내세웁니다. 따라서 법적으로 중요한 쟁점은 그것이 '팩트'이며 '합리적'이냐는 것이 됩니다.
유명한 미국 Unocal 판결은 이사회의 방어수단이 적법하려면 (1) 공개매수가 회사에 대한 위협(threat)이고, (2) 방어수단이 위협의 정도에 비례적으로 맞는 것이라는 두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일본 닛폰방송 사건에서는 공개매수에 대항한 신주예약권이 적법하려면 '매수자가 지배권을 획득하는 것이 회사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초래한다는 사정', 즉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현 경영진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소명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쟁점은 오는 10/18(금) 심문기일이 예정된 법원의 2차 가처분에서 첨예하게 다투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관련 기사]. 구체적으로, 이번 자기주식 공개매수에서 (1) 임의 적립금 해소를 위해 주주총회 승인이 없어도 되는 것인지, (2) 실체적으로 선관주의 및 충실의무 위반인지 및 (3) 공개매수를 방해하고 시세를 조종하는 것인지 등이 판단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세 번째 쟁점은 1차 가처분에서 사실상 해소된 것으로 보이고, 결국 2차 가처분에서의 핵심 쟁점은 미국 Unocal 사건 및 일본 닛폰방송 사건에서와 비슷하게 흘러갈 것 같습니다. 즉, 고려아연 이사들이 영풍과 MBK가 공개매수로 지배권을 획득하는 것이 회사에 손해가 되는 위협이라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것인지, 거액의 임의 적립금 해소 및 대규모 차입을 통한 자기주식 공개매수가 적법하고 비례적으로 적절한 수단이었는지 여부가 중요 쟁점이 될 것입니다.
이번 고려아연 이사회의 자기주식 공개매수는 3조 원 가까운 대규모의 유보금을 소진하고 부채를 증가시키는 엄청난 규모의 공개매수 방어행위입니다. 장래 투자를 위한 자금이 사라지고 그만큼 빚과 이자가 늘어나는 커다란 후유증과 후폭풍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명백히 회사 돈으로 경영진과 이사회의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논리는 '현재의 경영진이 유지되는 것이 최소한 이 돈을 쓰는 것 이상으로 회사와 전체 주주에게 훨씬 더 좋다'는 것 뿐일 것입니다.
이번 2차 가처분 사건에서, 고려아연 이사회가 이러한 규모의 회사 피해와 비용 이상으로 현재의 경영진이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를 강력하고 명확히 소명하지 못하는 한, 이러한 청야전술식 공개매수 방어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