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시를 방문하면 역사박물관은 매번 가보려고 한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역사박물관을 보고 예정에 있었던 일정을 뒤로 한 채 박물관에 입장했다. 다행히 거주민 및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어 인당 17달러로 입장했다. 적은 금액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두어시간을 둘러본 후 그 금액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시카고의 초창기의 모습은 영화 레버넌트의 배경을 떠올리게 했다. 레버넌트에서 디카프리오의 무리들은 눈 덮힌 산을 돌아다니며 짐승을 사냥하고 가죽을 채집한다. 아쉽게도 실제 레버넌트는 Montana주를 배경으로 했다고 하지만 모피산업과 도축업(meatpacking)을 주요 산업으로 했다는 초창기의 시카고 모습이 이와 유사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더불어, 영화 레버넌트에서 디카프리오 무리는 원주민 및 프랑스인 일당과도 대립관계에 있는데 이 모습 또한 시카고 영토 전쟁과 굉장히 유사했다.
미국의 많은 도시들이 그러했겠지만 시카고도 1차 세계 대전을 이후로 많은 변화들이 발생했던 것 같다. 특히, 미국 동부와 중부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시카고에 제조업 관련 일자리가 많이 생겨남에 따라 Mississippi, Illinois River를 통해 남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중에서도 흑인들의 인구는 1910년부터 1930년 사이에 약 4.5만 명에서 23만명으로 급증했다고 한다.
시카고 남부에 위치를 잡은 흑인들은 시카고의 음악, 예술 등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Blues 재즈도 시카고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완벽한 백인 위주의 시카고에서 이것은 너무 갑작스런 변화였던 것일까? 이 때부터 인종 간 갈등, 폭력, 범죄 등이 심해졌고, 불법물품 무역을 기반으로 갱스터들이 세력을 확장해 나감에 따라 ‘범죄의 도시‘라는 불명예를 얻기 시작한다.
또한, 2차 세계 대전을 이후로 Chicago의 주요산업이 제조업에서 financial service, government 및 health 산업으로 변화하게 된다. 나는 이것이 범죄율 증가에 또 다른 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변화에 따라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고 이들 또는 이들의 자손들이 범죄조직에 쉽게 유인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 현재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 주는 미 전역에서 흑인 실업률이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Chicago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skyscraper 이야기이다. Foot traveler인 나에게Chicago의 가지각색의 건출물들은 큰 재미를 준다. 특히 고층건물들이 굉장히 많은데 Michigan Lake가 바로 옆에 있어 기초가 굉장히 연약할 갓임에도 어떻게 이런 높은 빌딩들을 지을 수 있었을까라는 궁금증이 있었다. 박물관에서는 1907년 시카고에서 처음 적용된 Caisson foundation 공법 덕분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즉, 연약지반 아래에 있는 firm layer까지 pile를 뚫어 더 튼튼한 기초를 제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비롯한 Trussed and bundled-tube construction 등의 기술 덕분에 1970년대에 이미 100층이 넘는 John Hancock center, Sears Tower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대표적인 건축물 이외에도 길거리를 걷다보면 정말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들이 많다. 시카고에서는 두 번 정도의 아주 큰 규모의 화재가 발생했다고 한다. 도시 전체가 불타면서 전면적인 도시 재 계획이 있었는데 이 때 건물들의 심미적인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고, 이러한 고민이 시카고라는 도시를 아주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엄청 큰 규모의 박물관은 아니었지만 하나하나 살퍄보다 보니 세시간 정도 관람했다. 재미있고 또 유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