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첫 여름을 아내와 시카고에서
작년 9월 미국 땅에 발은 내딛은 후 어느 덧 1년이 지났다. 미국에서의 첫 여름은 아내가 있는 시카고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매서운 칼바람의 겨울과는 달리 시카고의 여름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된 아름다운 이 곳에서의 생활이 2주 후면 마무리된다는 생각에, 또 아내를 이 곳에 혼자 두고 와야 한다는 것이 매우 아쉬워 약 2달 정도 보낸 시카고 여름의 추억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Coffee and Bread
어바인보다 시카고가 좋은 점 중 하나는 수많은 커피와 빵의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프랑스 이주민들이 많은 시카고에는 프랑스 느낌의 소소하지만 고풍스런 빵집들이 많다. 그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은 La Fournette, 빵집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빵 뿐만 아니라 진하고 강한 산미의 커피 맛이 정말 일품이다. 이번 시카고에서는 애플 데니쉬의 맛에 빠졌다. 덴마크에서 노동파업이 일어나면서 대체 고용된 오스트리아의 제빵사들이 만들기 시작했다는 데니쉬는, 겹겹이 쌓인 밀가루 반죽이 주는 식감과 고소하면서 달콤한 버터향이 정말 맛있다. 내가 아침마다 방문하는 Dom's Kitchen이라는 카페에서는 하루에 하나씩 애플 데니쉬를 공수해서 판매한다. 왠지 나만을 위해 준비한 빵 같은 착각을 주어 기분이 더욱 좋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다보니 아내와 모카팟을 이용해 집에서 커피를 내리기로 결정했다. 원두는 시카고에서 유명한 intelligencia 커피숍에서 사온다. 여러 원두 중 Brundi의 single origin 원두를 사먹는데 Intelligiencia website에서 가장 Underrated된 원두라고 설명하고 있다. 커피의 맛은 내가 여태껏 마셨던 커피 중 역대급으로 산미가 높다. 마실 때마다 찌릿할 정도로 온 몸에 전율을 주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왜 매일 아침을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시작하는지 알 것 같다.
2. 시카고 중심가
시카고에서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는 Riverwalk이다. 집 주변에도 충분히 즐길 것들이 많아 자주 가지는 않지만 푸른 강과 다양한 건축물들의 조화는 언제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1871년 시카고의 대화재 이후 rebuilding된 도시의 모습은 도시계획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러한 고층건물을 짓는 것이 가능케 했던 당시의 건축기술에 감탄을 느낀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볼 때면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떠오른다. 기회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언제 한 번 부모님 모시고 이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혹의 향연이다. 그 중 쿠바 샌드위치의 맛이 궁금해 쿠바식 샌드위치와 모히토를 한 잔씩 했다. 아래 사진처럼 행복한 시간도 잠시 B는 한 잔 마시고 knockdown이 되버렸다. 어지럽고 속이 안좋다는 곡소리를 내는 그녀를 빨리 침대에 눕히기 위해 우버를 타고 집으로 직행했다.
3. 결혼 1주년
다행히도 아내와 결혼 1주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결혼 당시 불확실했던 우리의 상황에 비해 지금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아 미국에서의 삶에 적응하고 있다. 비록 한 달에 한 번씩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B가 아니었다면 이 아름다운 시카고의 여름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현재의 상황을 감사하며, 또 앞으로 우리가 함께 헤쳐나가야 할 길을 응원하며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결혼 1주년을 기념했다. 같이 있는 것만 해도 즐거워지는 인생의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인 것 같다.
4. Michigan Lake
개인적으로 시카고의 여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은 Michigan Lake라고 생각한다. 1년의 절반을 매서운 추위 속에 웅크려야 했던 상황에 맺힌 한을 표하듯여름에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호수변을 따라 조깅, 자전거, 비치발리볼, 수영 등의 야외활동을 즐긴다. 우리 집은 Michigan Lake까지 두 블럭 거리의 초 접근성을 자랑한다. 화려한 명품거리를 두 블럭만 지나가면 푸른 호수의 또다른 세상이 펼쳐지는데, 이 축복된 주변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매일 저녁 일과를 마치고 조깅을 한다. 조깅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는 시간은 아주 다양한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도 보람차게 살았다'라는 나에 대한 격려 및 자아성찰, Lake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궁금증, 얼마남지 않은 시카고 생활의 아쉬움, 또는 그저 멍하니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싶지만 사진으론 해변가 사람들의 역동성을 담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Michigan Lake에는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매주 금요일 오전 7시에는 swimming club이 열리는데, 예상컨대 1,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오전 7시에 모여 동시에 다이빙을 한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른 아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 참 신기하면서도, 그 무리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은 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나는 runnging club 사람들과 매주 금요일 새벽 6시 15분부터 4.5miles을 뛰고, 다 같이 물 속에 뛰어든다. 생각보다 깊은 수심 때문에 처음에는 겁을 먹고 발버둥치며 나왔지만 running으로 열이 오른 몸을 강가에 담금질할 때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Michigan Lake의 또 다른 추억은 firework이다. 여름 기간에는 매주 수요일, 토요일에 10분 정도의 폭죽놀이를 진행한다. 어떻게 저 규모의 firework를 매주 두 번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지만 그저 원없이 폭죽 쇼를 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5. Chicago Botanic Garden
근교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곳들을 알아보았다. 싱가폴 Botanic garden에 좋은 기억이 있더 우리는 Chicago의 Botanic garden을 탐험해보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30대 노년부부라고 불리우리는 우리답게 Botanic garden은 노년 분들의 성지였다. 항상 북적북적한 도심에서 벗어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6. NasCar
시카고에서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고 있다. 그 중 가장 먼저 즐겼던 것은 NasCar 레이싱 경주였다. 미국의 쉐보레, 포드 차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만의 리그로 F1에서 보는 레이싱 차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갑작스런 폭우로 경주가 취소되는 등 여러모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자동차 경주를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아주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보다 자동차 경주에 빠져 열광하는 B의 모습은 나에게 배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7. 임윤찬
운이 좋게 내가 시카고에 거주하는 동안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시카고에 방문했다. 나는 클래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기 때문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가 열리는 곳은 Ravinia Park, Ravinia Park를 입장하면 picnic 공간이 펼쳐진다. 그 안에 콘서트장이 있는데 위에 천장은 있지만 양옆으로는 open 된 공간이라 외부에서도 연주를 즐길 수 있다. 혹시나 졸면 어떻하지?라는 조금의 걱정과는 달리 시카고 심포지엄과 임윤찬의 연주는 눈과 귀에 쉴 틈을 주지 않았다. 특히나, 임윤찬의 연주는 정말 대박이었다. 지난해 반 클리번 콩쿠르 결선 당시의 우승곡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알솝 지휘자와 호흡하였는데 강렬한 연주에 나를 포함한 모든 관객들이 압도되었다.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이 임윤찬에게 보낸 환호와 박수는 여태까지 들었던 갈채 중 단연코 가장 컸다.
8. 축구
차이나 타운을 갔다가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우연히 Solider stadium을 발견했다. 경기가 막 시작하려고 하길래 보니 Chicago Fire FC의 축구경기였다. 평소의 나였으면 '그렇구나'하고 그냥 지나쳤겠지만 호기심이 많은 B의 적극적인 관심 덕분에 표를 티켓팅하고 경기장에 들어섰다. 어느 누가 미국에서 축구가 비인기 종목이라고 했던가. 관중석을 가득 채운 경기장의 열기는 유럽 못지 않았다. 다만 유럽과는 달리 경기결과보다는 가족, 친구들과 주말을 즐기러 온 느낌이 강했다.
경기를 보는데 낯이 익은 축구폼이 보이지 않던가? 이게 왠걸? 바로 리버풀에서 뛰던 샤키리 선수가 공격수로 뛰고 있었다. 리버풀에서 잘 풀리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있던 선수였는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경기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영국에서 교환학생 시절 본 이후 처음인 축구경기 직관에 활기찬 분위기를 즐기다 왔다.
또 다른 일화는 Chicago에서 열린 Chelsea와 Dortmund의 프리시즌 경기이다. 시합 전날 나와 아내는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저녁에 장을 보러 집 밖을 나섰다. 근데 웬걸? 집 옆 호텔 입구에서 Dortmund의 벌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아닌가? 얼마 지나지 않아 대형버스가 도착해 선수들이 버스에 내리기 시작했다. Reus, Hummels, Brandt, Sabitzer, Hazard와 같은 유명한 선수들을 정말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어리둥절했지만 머리 속에서 흐려질 이 순간을 담기 위해 열심히 동영상을 찍었다. 내 앞에 목소리가 엄청 큰 외국인이 선수들을 우리 쪽으로 유도한 덕분에 많은 선수들이 내 동영상에 등장해주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지만, 또 다음날 아내로부터 첼시 선수들이 동네에 출현했다는 전보를 받았다. 이번에는 동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들이 식사에 흡족한 표정으로 식당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New player들이 많이 영입되어 생소한 얼굴들도 많았지만 뒤에 Chelsea 극성 팬 아저씨께서 상세한 설명을 해주셨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James, Chilwell, Enzo, Mudryk, Sterling, Silva, Sterling 볼 수 있었다는 것에 축덕으로 정말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다음날 축구 경기를 보니 Mudryk은 확실히 물건이었고, Sterling은 확실히 폼이 많이 죽었다. Chelsea의 오른쪽 윙과 미들필더가 좀 더 보강된다면 확실히 작년보다는 훨씬 좋은 성과를 이룰 것 같다. 기대가 된다.
9.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시카고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시간을 가졌다. 소중한 인연들로 인해 시카고에서 즐거운 추억들을 많이 쌓았다. 사진을 찍지 못한 자리도 많았지만 다음에 시카고와 왔을 때에도 연을 유지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