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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섬에 가장 많은 세 가지

세미 잠수함과 시원한 힐링타임

by 김중희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세 가지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섬 곳곳에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 들과 흔적들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어느 곳이던 맑은 바다를 만날 수가 있어 물속에서 지나다니는 물고기들을 눈으로 볼 수가 있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서서 낚시하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가 있다. 배 타고 나가서 하는 바닷 낚시가 아니라 그냥 바다가 보이는 아무 곳에서 나다. 세 번째는 길 고양이 크레타섬은 고양이 반 사람 반이 아닐까? 싶을 만큼 고양이가 많다.
이런데 서서도 물속에서 물고기가 다니는 것이 들여다 보인다. 그래서 이곳에서도 낚싯대를 드리우는 낚시꾼들을 자주 보고는 했다.

천둥번개로 난리도 아니었던 목요일을 보내고 금요일 아침 우리는 오늘만큼은 동네에서 푹 쉬면서 충전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하루하루가 버라이어티 해서 우리에게는 힐링타임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내던 아기오스 니콜라오스라는 지역은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길고 짧은 산악코스를 다양하게 계획할 수도 있고 큰 항구가 있어 산토리니 섬까지도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다.

아기오스 니콜라오스의 시내는 항구에 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시내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겠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아서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니 꽤나 여유 로웠다. 그 여유가 좋아 천천히 걷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른 날 보다 훨씬 더 많았다.


호텔 앞 해변가 에는 벌써 몇몇 사람들이 나와 걷기도 하고 바다 앞에 앉아 있기도 했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커플이 있었다. 뒷모습만 보아도 조금 연배가 있어 보이던 노년의 커플 바로 옆에 까만 고양이가 강아지처럼 붙어 앉아 있었다.

아마 그분들이 뭘 드시고 계셨던 모양이다 뭔가를 얻어먹고 싶었던 고양이는 그 커플 옆으로 왔다 갔다 하다가 아예 자리를 잡고 딱 붙어 앉아 있다가 베이컨 조각으로 보이던 것을 득템 했다.

크레타 섬에는 길고양이가 참 많다. 길을 걷다 보면 생각 지도 못한 곳에서 고양이들이 불쑥불쑥 나타나고는 한다.

뜨개질 털실 가게에 온 듯 다양한 색색의 털 뭉치 같은 고양이들은 길이나 식당 앞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동차 보닛 위에 껌처럼 붙어 있기도 하고 담장 위에 사람처럼 앉아 있기도 하고 벤치 위에 강아지처럼 누워 있기도 하며 또는 가로수 옆 큰 화분 안에 꽃처럼 또는 식물처럼 들어가 누워 있기도 했다.

이렇게나 곳곳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길 고양이들은 독일 우리 동네에서 만나던 집과 집사가 있는 고양이 들과 많이 달랐다.

돌아갈 집도 없고 보살펴줄 냥집사도 없는 얘네들은 낯선 사람들을 경계하거나 사람의 손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람들 에게도 아주 친근하게 먼저 다가온다.

원래는 고양이들을 그렇게 까지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야옹이 들의 찐 팬이 되었다.

요 사근사근 말랑말랑 하게 다가오던 털 뭉치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 거다.

이 가게는 얘네 집이 아니다. 그런데 마치 자기 집 안마당처럼 편하게 들어 누워 오는 사람 가는 사람 구경도 하고 다가오기도 했다.
흰색과 갈색 검은색이 골고루 섞여 있던 입이 갈색이던 야옹이는 식당을 오가며 손님들이 식당으로 들어오면 메뉴판 펼칠 때 벌써 옆으로 다가와서 앉는다.
요 하얗고 귀와 꼬리만 까맣던 아이는 호텔 안에서 살았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몸을 비비며 야옹거리며 다정한 인사를 하고는 했다

그렇게 고양이 들을 만나며 시내로 내려온 우리는 바닷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다 구경을 하기로 했다.

예쁜 바닷가 카페들이 줄지어 있는 항구의 선착장 가까이에는 배들이 정박해 있고 카페나 식당들이 주변에 있는 데도 생각보다 바닷물이 맑고 깨끗하다.

햇빛 드리워진 바다 안으로 작은 물고기들이 끊임없이 오가며 수영하는 모습이 훤히 드려다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리스 크레타 섬의 바다는 깨끗하고 물색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그 덕분에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바닷물 속으로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바닷가 근처 어디서든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를 하고 있는 낚시꾼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날은 우리 막내 보다도 어려 보이는 개구쟁이 소년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마치 아빠 신발 신고 나온 아이들처럼 낚싯대가 버거워 보였지만 낚싯대를 만지는 동작에서 프로의 스멜이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손바닥 만한 물고기들을 연거푸 잡아 올렸다.

우리는 그 모습이 마냥 신기해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잡아 올린 물고기를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아니면 우리처럼 구경을 하고 있던지 알 수 없는 갈색 줄무늬의 고양이에게 던져 주었다.

고양이는 팔딱 거리는 물고기를 발로 살살 건드리기도 하고 옆으로 밀기도 하더니 물고기를 입에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우리는 " 야 크레타의 고양이는 바다에서 바로 건진 생선도 얻어먹네!" 하며 웃었다.

그렇게 물고기 구경을 하던 우리는 원래는 예정에 없었던 배를 타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거의 매일 종류 다르게 배를 탔던 것 같다.

물속으로 물고기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보인다.
요 작은 아이들이 놀랍게도 낚싯대로 물고기를 척척 건져 올렸다, 진짜 신기 방기 했다. 사진 에는 잘 안 보이지만 뒤에 갈색 무늬의 귀여운 고양이가 있었다.

바닷물 안에 있던 물고기 구경을 하던 우리는 바닷속으로 인어처럼 내려가 물고기들을 종류대로 보여 준다던 세미 잠수함을 탔다.

노란색 장난감 같이 생긴 배는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 나 코로나 테스트 음성 확인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한해서 정해진 숫자만 탈 수 있었다.(모든 배가 동일한 규정을 가지고 있다)

13시 에는 자리가 없어서 15시 를 예약하고 점심을 먼저 먹은 후에 우리는 식구대로 핸드폰에 담아온 디지털 백신 접종 증명서를 보여 주고 배에 탑승했다.

산토리니 섬에 갈 때처럼 먼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는 것이 아니니 괜찮겠지 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달려가던 배는 속도나 편하기가 스피나롱가 섬을 갔을 때나 그전 여행에서 해적섬에 갔을 때 탔던 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지만 편안한 항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배의 속도가 줄더니 배 안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승객들이 차례로 배의 정 가운데 양쪽으로 달린 하얀 문을 열고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이때 같은 가족 이어도 남자 여자 아이들을 나누어 양쪽으로 있는 긴 의자에 나누어 앉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배의 무게를 분산해서 중심을 잡기 위한 것이었다.)

게 중에는 "위 아 패밀리!" 해가며 가족끼리 같이 앉아서 가고 싶다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주던 근육맨 그리스 아저씨 들은 베리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노우!"라는 단 한 마디 대답과 함께 단호한 손짓으로 그 자리를 가리키며 딱 그 자리에 앉으라는 표시를 했다.

모두 어쩔 수 없이 나뉘어 앉았다 나는 딸내미와 막내는 남편과 나뉘어서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았다.

양쪽에는 큰 특수 유리 창문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양쪽으로 파란색 긴 의자가 놓여 있었다.

승객들은 여자와 아이들 한 줄 체격 큰 남자들 한 줄 이렇게 줄과 방향을 나누어 앉았다.

배는 점점 바닷속으로 입수 하기 시작했고 아까 노우라고 했던 까까머리에 근육맨 그리스 아저씨가 손에 알약 한판을 들고 우웩 하는 제스처를 취하며 약판을 흔들어 댔다.

뱃멀미 약이었던 거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들고 멀미약을 받아 삼켰다

아니 얼마나 멀미가 나려고 저걸 주나 싶어 산토리니 가던 날의 뱃멀미가 생각나 아찔해졌다.

그러나 나는 멀미약 대신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기로 했다.


딸내미는 연신 엄마 괜찮아?라고 내 상태를 확인해 주었고 나는 생각보다 잘 버텼다.

어지럽거나 울렁 할 것 같으면 눈만 질끈 감으면 까만 선글라스에 가려 별로 보이는 것이 없어 다시 금세 괜찮아 지고는 했다.

세미 잠수함은 물에 푹 잠겨서 계속 그 속도로 가다가 더 깊게 물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그러다 다시 올라와서 옆으로 움직였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자리에서 사방팔방 움직여 대는 것이 마치 아이들이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노는 트램펄린 같았다.

그리고는 배위에서 물속으로 물고기 먹이 들을 마구 뿌려 주고 주변에 있던 물고기들이 먹이 따라 우르르 달려들고 했다.

이때 우리는 창문을 통해 수족관에서 처럼 가까이 물고기 들을 관찰 할수 있었다.

단지 수족관은 육지에 있지만 우리는 물속에 배 타고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스쿠버 다이빙하는 영상에서 처럼 화려한 산호초나 다양한 물고기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네다섯 가지의 종류 다른 물고기 떼를 볼 수 있었다.

물론 광고 포스터 에는 수십 가지의 물고기와 돌고래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그 광고를 리얼로 풀이하자면 요기 쓰여있는 물고기들은 한 번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번이 합쳐지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돌고래는 로또 맞을 확률로 볼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좌우지 당간 세미 잠수함 타고 깊은 바다속으로 들어간 우리는 바닷속의 인어처럼 자유로이 물속을 누비며 수많은 물고기들과 인사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덩 더티 덩덕 엀쑤! 하고 춤을 춘 듯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쟁반에 올려져 냅다 던져지듯 배안에서 마구 구르듯 흔들려져 그놈의 물고기 구경이 끝나고 나니 삭신이 쑤셨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우리는 헹가래 쳐진 듯한 잠수함 타고 물고기 구경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했던 일정은 아니었지만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갔던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끝이 났다.

돌아온 숙소에서는 아침에 작동이 되지 않았던 엘리베이터는 아직도 되지 않았고 우리는 5층 건물 계단을 다시 열심히 걸어 올라 산길을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우린 그때부터 진짜 힐링 타임을 가져 보기로 했다.

식구대로 가방을 털어 보니 각자 종류 별로 마스크 팩들을 담아 왔다.

남편도, 딸내미도 나도...

편한 옷으로 갈아 입고 우리는 식구대로 원하는 마스크팩을 골라 얼굴에 붙이고 누웠다.

마스크팩을 붙이고 바다가 보이는 베란다에 누워 있으려니 힐링이 따로 없었다.

새벽까지 천둥번개 때문에 안절부절못했던 그 모든 것은 꿈처럼 아스라이 해지고 이번 여행은 여러 가지로 스페셜한 추억이 한가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마스크팩을 떼고 아 피부 맨질 맨질 해 진 것 같아 이제 따뜻한 물에 씻고 조금 쉬다가 저녁 먹으러 가면 되겠다 했다.

그런데...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찬물만 나왔다... 어제 까지 잘만 나오던 뜨신 물이 나오지를 않는다.

호텔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다니?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날씨가 더워 땀이 삐질삐질 나는 30도가 넘는 한여름에도 냉수로 샤워를 하기가 힘든 나는 23도 의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날씨에 펄펄 끓는 물은 아녀도 최소한 내 기준의 미지근 한 물은 있어야 했다.

혹시 지금 호텔에서 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싶어 조금 기다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호텔 로비로 가서 프런트에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확인했다.

호텔 직원은 너무 미안해하며 지금 기술자를 불렀는데 만약 해결이 되지 않으면 방을 바꿔 주겠노라 했다.

우리 쪽 라인에 방들 중에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 방들이 여럿 있다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놈의 환장할 천둥번개 때문에 작동되지 않는 엘리베이터에 이어 이제 뜨거운 물도 안 나오는 상황이 생겨난 것 같았다.

그날 결국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집도 아닌 호텔에서 흐억 소리가 나게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오던 잠도 홀랑 깨고 피로도 도망가게 겁나 시원한 힐링 타임 이였다.

끝까지 환장할 이였던 것이었다.


PS:저희 집 멍뭉이 나리의 안부를 궁금해해 주신 독자님이 계셔서 사진 한 장 첨부합니다.

나리는 저희가 가족 여행을 보내고 있던 때 예전에 한번 소개했던 강아지 호텔에서 다른 강아지 들과

즐거이 잘 지내고 있었답니다 어찌 아냐고요? 녀석은 가져간 밥도 잘 먹었고 찾으러 간 날 도 그곳에서 다른 친구들과 작별하는 것을 못내 아쉬워했답니다. 집에 와서도 한이틀 심심해했어요.

지금은 또 집에서 신나게 지내고 있어요.

이제 그리스 크레타 여행기 두 편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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