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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Nov 17. 2022

그란 카나리아섬 동네 장 서는날

타잔이 십 원짜리 빤스를 입고…


돌고래 만날 확률 98프로 라던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날이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쪽저쪽에 출몰하는 돌고래의 모습에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는 사이 짙푸른 바닷물 색만큼이나 뱃멀미를 하시느라 파래진 남편의 모습은 전날 산길 버스를 탔을 때의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러게 진작 멀미약 먹자니까...라고 구시렁 거리며 남편의 차가워진 손을 연신 주물러 주었다.

멀미약을 먹고 배를  나는 멀쩡 했으나 자기 사전에 멀미는 없다고 큰소리치던 남편은 헹가래 치듯 오르락내리락하는  안에서 사색이 되었고 급기야 먹고  아침 메뉴를 점검하게 되고 말았다.


배가 어서 빨리 항구에 도착해야 남편의 울렁거리는 속이 좀 가라앉을 텐데... 싶어

안타까이 바라보던 바다는 여전히 세찬 푸른 물결 만이 넘실 댔다.


그렇게…

한참을 검푸른 파도가 끝없이 펼쳐지던 망망대해를 뒤로 하고 어느 순간 크고 작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부둣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를 태운 배가 드디어 프에르토 모건이라는 아름다운 항구에 도착한 것이다



우리가 예약한 돌고래 항해 안에는 그란 카나리아섬의 동네 장을 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일정 순서가 바뀐 것도 동네마다 장 서는 날이 달라서 그걸 맞추느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원래 일정표 에는 버스 타고 동네 장에 들렀다가 항구로 가서 배를 타고 돌고래 보러 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장에 가서 구경하고 필요하다면 그때 멀미약을 미리 먹겠노라 했고 나는 그전날 산길에서 너무 고생을 했던 덕분에? 일단 멀미약부터 털어 먹고 출발했다.

우리는 아침 먹은 거 소화도 되기 전에 배를 타리라고는 파도가 그렇게 높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우리가 도착한 프에리코 모건이라는 항구 도시는 예뻤으며

배에서 내리자마자 시작된 장은 동네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독일에서 동네마다 장 서는 날이면 주로 생선, 정육점, 채소, 과일 , 꿀, 쨈, 꽃, 등등 주로 먹거리 생필품 위주 다. 그란 카나리아 섬 동네 장도 특산물 토는 향토 식품들 위주로 그와 비슷하지 않으려나 했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옷, 모자, 가방 등등 엄청 다양했다.

언젠가 한국에 놀러 갔을 때 만났던 아파트 단지 안에 펼쳐지던 동네 장 과 비슷한 느낌이라 괜스레 더 정이 갔다.


마음 같아서는 요것조것 장 구경 실컷 하고 점심은 패스해도 되겠다 싶었으나

다리가 후들거리는 남편과 땡볕 아래 돌아다니는 건 무리였다.

일단은 어디 가서 마실 것 좀 마시고 앉아서 쉰 후에 남편이 기운이 나면 마저 구경을 해야지 하고는 들어갈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라 이 골목 저 골목 가볍게 먹고 마실수 있는 곳들은 이미 자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바다가 바로 보이고 바닷물 속에 물고기들이 오가는 것이 보이는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남편의 상태가 괜찮았다면 간단한 샌드위치를 사서 바닷가 벤치에 앉아 먹어도 좋았을 테지만..

딱 어디 가서 누웠으면 좋겠네 하는 표정의 남편과 땡볕 받으며 그리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자리 있는 곳에 들어 가는 수밖에...

아이들이 검색해 본 결과 이곳은 퓨전 레스토랑으로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 제법 랭킹이 높은 곳이었다.

그만큼 코스요리에 가격도 만만치 않았다.

점심값 아끼려고 식구들을 독려해 마치 호텔 조식 먹방을 찍듯 먹었고 배안에서 본인이 얼마나 많이 뱃속에 담아 왔는지 확인했던 남편은 여러모로 속이 속이 아니었다.


우리는 훌륭한 코스요리의 끝인 그란 카나리아 섬의 바나나로 만든 후식까지 먹고 자리에서 빠르게 일어났다.

나는 음식은 멋지고 맛났으나 차례로 나오는 바람에 밥 먹느라 자유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장 구경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마음이 급했다

남편은 날은 덥고, 힘은 들고 다른 식당에 앉을자리는 없고.., 비싼 거 알고 들어 왔다만 코스 요리가 그렇지 뭐 이쁘고 맛은 있지만 양이 겁나 작았다.

해서 혹시라도 아이들이 다른 걸 더 먹겠다고 할까 싶어 급하게 일어났다.

그렇게 우리는 식당 동상이몽으로 각자 다른 생각을 했지만 결론 적으로 같은 속도를 냈다 (*먹거리들은 나중에 그란 카나리아섬에서 먹은 것으로 함께 올릴 예정입니다 궁금하셔도 기다려 주세요!)


밖은 여전히 더웠지만 먹고 쉬고 나니 모두 돌아다닐 힘이 재충전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에리토 모건은 그란 카나리아의 작은 베네치아로 불릴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한 항구 도시였다 어쩐지.. 이쁘더라니..

게다가 동네 장 서는 날이라 전체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다 우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 가게에서 딸내미의 절친들을 위한 앙증맞은 귀걸이 선물을 사고 그란 카나리아 섬의 당도 높은 망고 음료를 한 손에 들고 이 골목 저 골목 구경을 다녔다.


그란 카나리아 섬은 아프리카 모로코가 가까워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물건을 들고 다니며 판매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자주 만나게 된다.

동네 장에도 아프리카 사람들이 손으로 만든 해변용 깔개 라던가,화려한 색감의 전통의상,짝퉁 메이커등을 가지고 나온 이들이 많았다.

르박!,나이슈!,오마다스!..등 메이커 짝퉁 모자들을 지나고 보니 재밌는 것을 파는 곳이 나왔다.


남성용 사각팬티가 빨랫줄에 널려 있듯 줄지어 널려 있었다.

문득 아이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가 떠올랐다. 타잔이 십원 짜리 빤스를 입고 이십 원짜리 칼을 차고 노래를 한다 아~아~아

그런데 이건 십원 짜리 빤스 가 아니라 무려 500유로 200유로 빤스였다.

평소에는 보기도 어려운 500유로 200 유료 모양의 화폐 디자인을 찍어낸 남성용 사각팬티,

타잔의 십 원짜리 빤스에 비해 이 얼마나 럭셔리 한 빤스인가.. 이름하여 돈지랄 빤쥬 되겠다.

남편 에게도 돈지랄할 기회를 줄까 했는데 한사코 마다 해서 우리는 재미있어하며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딸내미가  빤쥬를 사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남성용을 지가 입을 리도 만무하고 재밌다고 집에 걸어 둘리도 없고 오호라누군가 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이렸다.!

딸내미는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랑은 헤어진 지 일 년이 넘었다.


렇다면..,혹시... 요즘... ?.., 하고 엄마의 촉각이 레이더를 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요 딸내미가 호텔방에서 쉬고 있을 때 굳이 식구들이 없는 밖으로 나가서 전화를 꽤 길게 하고 오고는 했었다.

물론 지말로는 여러 친구들과 돌아가며 통화하느라 그랬다는데... 왠지 감이 오고 있던 차였다.

나는 "맘에 들면 사 근데 누구 주게?"라고 물었더니

딸내미는 이 애, 조애, 그 애, 요애, 저 애, 해가며 다섯 명의 이름을 주르륵 읊어 댔다.


이과를 전공하고 있고 취미로 혼합 배구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딸은 원래 남녀 할 것 없이 두루 친구들이 많다.

뭐, 수영빤스나 그냥 빤스나 그게 그거라 하면 별수 없지만

그래도 속옷을 선물하는 건 나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었다.

뭐 좀 오래된 엄마라 그런지 몰라도 말이다.

물론  장에 2유로 50이지만 5장에 10유로 세일을 해준다는 주인장의 제안이 솔깃하기도 

그러나 나는 왠지 여러 명의 남사친들을 등장시켜  안의 진짜를 숨겨 보려는 딸내미의 페이크가 아닐까? 싶었다.

이건 최소 썸이다 라는 엄마의 감이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다음편 계속....

To 애독자님.

안녕하세요? 독일의 김 자까 인사드립니다.

난데없이 그란 카나리아 섬?이라 놀라신 분들 있으시지요.

여름휴가 다녀와서 쓰고 있던 그란 카나리아섬 여행기 가 아직 마무리되지 못했어요.

아직 몇 편 더 남아 있거든요. ㅎㅎ

오신지 얼마 안 된 분들은 이전 그란 카나리아 섬의 여행기를 읽어 보시면 이야기 이해하시기 빠르시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행기는 한번 잡으면 끝을 내야 하는데 일상을 살아가며 빠른 시간 내에 다 써내기가 쉽지가 않지 뭡니까 일상의 이야기들도 언제나 쌓여 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아직 기억하고 있는 것 들을 중간중간 써 보려고요.

거기다 지난번 베를린 여행기까지 남아 있어 아직 써야 할 이야기가 한참입니다.

다행인 것은 두 가지 여행기 중에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있어 왔다 갔다 하며 써보려고 합니다.

어차피 김 자까 의 브런치는 일상의 잡다구리가 아닙니까. 연결성 없어 보여도 읽다 보면 이어지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요? ㅋㅋ

읽으시는 독자님들이 알아서 추려 읽으시라 배짱을 떨고 있는 김 자까입니다.


하루 종일 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겨울을 준비하는 듯 잿빛 하늘이 내려앉은 목요일입니다.

울 독자님들 따뜻하고 포근한 나날 보내세요. 다음 이야기 들고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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