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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17. 2022

돌고래를 만날 확률 98프로.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 저 푸른 파도를 헤치고…


계획이 바뀌었다


우리는 자주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별반 다르지 않은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설렘 일 것이다.

또 낯선 곳에서 뜻밖의 만남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만남은 때로 사람일 수도 음식을 수도 있고 풍경일 수도 있다.

또 그 무엇이 되기도 하며 그 만남들이 기대 이상일 수도 있고 기대 와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니던가

문득, 여행의 묘미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데서 출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우리의 계획에 의하면…,

그란 카나리아 섬의 중심을 가로질러 버스를 타고 산길을 달렸던 그날 바다로 나가

돌고래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일정은 우리와 맞지 않아 다른 날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처음 계획대로 라면 카나리아 섬의 동네 시장을 먼저 들렸다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는데 배부터 타고 동네 시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어 있었다.

물론, 우리는 그 사실을 부둣가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바다? 시장이 먼저 아녔어?
이렇게 작은 배를 타고?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는 우리네 장 서는 날처럼 동네마다 돌아가며 오늘은 이쪽 내일은 저쪽에 장이 섰다.

배 타고 돌고래를 보러 가는 투어 에는 동네 장을 둘러보는 것도 옵션으로 들어 가 있었다.

우리는 원래의 계획대로 시장에 먼저 들렀다가 점심 먹고 배를 타는 줄 알았다.


그 며칠 전 버스 타고 산간 마을을 다닐 때 멀미로 생고생을 했던 나는 버스에 타자 마자 멀미약부터 꺼내 들었다.

그런 내게 남편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가 아니라 동네 시장 구경할 때 또는 점심 먹을 때 어디 앉아서 약을 먹는 게 났지 않겠느냐 했다. 그러나 나는 약이 몸에 들어가 약효를 낼 때까지 시간이 필요 하니 일단 미리 먹어두는 게 났겠다며 멀미약을 바로 삼켰다.

그리고 남편에게 "자기도 먹는 게 어때?"라며 멀미약을 미리 먹어 두는 게 나을 것이라 말했다.

인터넷으로 미리 검색해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배 타고 돌고래 투어 나갔다가 뱃멀미가 심해서 정작 돌고래가 출현할 당시 놓쳐서 못 봤다는 코멘트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기가 멀미하는 거 보았냐며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30분가량 도로를 달려 우리를 태운 버스는 항구에 다다랐다.

그리고는 동네의 시장에 갈 것이라 생각했던 버스는 우리를 부둣가에 작은 배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얼떨결에 배에 오르던 우리는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시장이 아닌 바다를 먼저 갈 것이라 생각하지 못해 아직 배를 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이킹인가 디스코 팡팡 인가?


배 위에서 보이던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그 깊이를 알길 없었고 넘실대는 파도의 시퍼런 기세는 이렇게 작은 배라니?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올라오게 만들었다.

보통 바다 위에 떠다니던 튼실하고 듬직한 모습의 유람선들에 비해 장난감처럼 작고 날렵하게 생긴 작은 배는 당황한 우리를 태우고 망망대해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시퍼런 바닷물결과 맞선 작은 배는 흡사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태운 듯 위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했고 수상스키처럼 짙푸른 바다에 하얀 물결을 수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배안에서는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순으로 안내 방송이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고 매점과 화장실의 위치 그리고 혹시 라도 뱃멀미가 시작된 사람들은 선원들에게 비닐봉지를 받아서 화장실이 아닌 뱃머리로 가 달라는 부탁 방송이 거듭 됐다.

뱃멀미로 인해 무아지경이 되어 먹은 것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자주 있는 것 같았고

네버 네버 화장실이라는 말로 미루어 짐작 컨데 변기통 붙들고 있던 사람들 때문에 화장실이 막히는 일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


배의 뒷 갑판 쪽에는 우리 아이들 또래의 젊은 아이들이 조롱조롱 매달려 핸디를 들고 언제 어디서 돌고래가 나오기만 하면 찍어 주겠어 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그러다 높은 파도가 배에 부딪치면 바닷물이 쿨럭 하고 배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매달려 있던 사람들의 신발과 옷을 가차 없이 적셔 댔다.


파도의 높이에 따라 위로 아래로 출렁 거리며 바이킹 같던 배가 그 출렁 거림으로 인해 이쪽저쪽으로 기울어지고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은 마치 둥근 통 안에서 떨어져 내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여기저기 매달리는 놀이 기구 디스코팡팡을 연상케 했다.

바이킹과 디스코팡팡 거이에 가끔 바닷물까지 한 번씩 쫘악 끼얹어 주니 아이들과 젊은이 들은 놀이동산에 온 거처럼 꺅꺅 거리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시퍼런 바다의 일렁임은 보기에도 아찔했고 무서웠다.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이렇게 온몸으로 파도를 타는 것 같이 바다 가까이 배를 타고 있다는 게 이래도 될까? 싶게 조마조마 했다.



우리가 그 2프로 일수도 있다?


그 상태로 한참이나 푸른 파도를 타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나아가도 돌고래는커녕 물고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파랗게 질린듯한 파도 만이 넘실거리며 덮칠 듯 다가올 뿐이었다.

흔들리는 배안에서 뭔가 튀어 나올것 같은 바다만 바라보고 있자니 눈알이 빠질것 같고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고 있었다.

그나마 멀미약을 미리 먹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뱃멀미에 공포감까지 얹어져 배 위에서 길게 드러누울 뻔했다.


그렇게 배가 놀이 기구처럼 항해만 계속될 뿐 돌고래가 보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갑판 위에 매달려 재밌어하던 아이들도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여기저기서 웅성 이는 소리가 간혹 들려왔다 독일어도 들리고 영어도 들리고 스페인어도 들려왔지만

그중에 옆쪽에서 또렷이 들려오던 독일어 젊은 독일 커플과 할머니와 손녀 같아 보이는 독일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거 돌고래 만날 확률 98프로 라는데 왜 아직 안 나오죠?" "어쩌면 우리가 만나지 못한 나머지 2프로가 될지도 모르죠!"


그러고 보니 배 탈 때 보았던 입구에 붙어있던 돌고래 만날 확률 98프로라고 쓰여있던 포스터가 생각났다

그리고 왠지 그 2 프로 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들은 보통 98프로 확률을 더 믿게 되어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만날 수 있을 그 98프로에 우리가 포함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2 프로의 누군가는 돌고래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뒤집어 놓고 보면 우리가 그 2프로 안에 들어가지 말라는 보장 또한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괜스레 35유로의 투어 비용이 아까워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이러다 배 위에서 트람폴린 하듯 위로 아래로 붕붕 떠다니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가며 시퍼런 바다만 실컷 보고 가는 거 아녀? 하고 있을 때였다.



엇 저기다 저기!


누군가 저기 저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배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더니 배가 멈췄다 뒤이어 배안에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배 부근에 돌고래가 몇 마리 왔다 갔다 하고 있으니 조심해서 조용히 지켜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바닷물 속을 자유로이 헤엄치며 다니는 돌고래들이 우리를 기다려 줄리 만무했다.

이쪽에 떴다 저쪽에 떴다 지들 마음대로 신나게 바닷물속을 노니는 돌고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앗 저기다 저기! 소리 한마디에 우르르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움직였고 그 덕분에 배는 더없이 출렁거렸다.

사람들은 배안에서 의자마다 그리고 갑판 따라 길게 놓여 있는 손잡이를 꽉 들어 쥔 체 핸드폰으로 사진 찍기 바빴다.

공중 부양을 하며 우리에게 자신들의 모습을 노출시켜준 돌고래들을 보며 우와 하는 감탄사를 함께 날리며 말이다.


그때까지 괜찮았던 남편은 두 뺨이 도토리를 물고 있는 다람쥐처럼 부풀어서는 뱃머리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렇다 뱃멀미였다. 그때까지 조금 느끼하다던 남편은 멈춰 있던 배가 마구 출렁이자 한계상황이 온 거다.

남편은 선원들이 건네준 하얀 비닐봉지를 귀에 걸고 사람들의 "앗 저기 또 저기!" 소리에 맞춰 가열차게 아침 메뉴를 점검했다. 

나는 "그러게 진작 내가 멀미약 먹을 때 같이 먹지!" 라며 남편의 등짝을 조심스레 두들겨 주었다. 

그날 우리는 배 위에서 영화나 드라마 에서나 보던 돌고래를 원 없이 만났고 시장에 먼저 가는줄 알고 점심값 아끼려 아침 잔뜩 먹고 온 남편은 남김없이 쏟아내며 하얀 비닐봉지와 한 몸이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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