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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Sep 08. 2022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 만난 한국어

산꼭대기 동굴집, 점심, 테로 그리고 서프라이즈


빈속에 공짜 알로에 완샷 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산길을 달리자니 고행 길이 따로 없었다.

(*이 글은 앞글과 연속으로 이어진 글입니다. 앞글 인 그란 카나리아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서를 먼저 읽고 이 글을 읽으시면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됩니다.)


커브길 돌아갈 때마다 진심 손이 들고 싶어 졌다.

워낙 꾸불거리는 산길을 돌아 돌아가야 하는 산길 버스 투어이다 보니 자주 있는 일이라며..,

가이드 아저씨는 중간중간에 “비닐봉지 필요하신 분 손들어 주세요” 를 외치고는 했다.

그러면서 이 산길을 그란 카나리아 섬사람들은 재밌는 길이라 부른다 했다.

정신없는 와 중에서도 그 재밌는 길이라는 대목에서 나는 남편에게 "헐~ 쫌만 더 재밌었음, 기절하겠네!"라며 구시렁 거림을 잊지 않았다.

동굴집 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요 아르테나라 안에서도 더 산쪽으로 올라가야 한답니당
동굴집 들은 산과 엇비슷한 높이로 보일 지경이였지요
안에 구조는 동굴이지만 어느 가정집과 다름 없이 꽃화분들이 놓여 있어요

꼬불 거리는 길에 맞춰 지그재그로 흔들대는 버스 안에서 발가락 끝까지 힘이 들어가고 볼이 빵빵해져 툭 하고 건드리면 아이들 물총 쏘듯 쫙하고 쏟아낼 준비가 되었을 때쯤…

그 동네 시내버스 한 대가 우리가 타고 있던 관광버스를 스치듯 지나갔다.

운전사 아저씨 들끼리는 이미 아는 사이인지 창문 열고 인사를 나누었다.


가이드 아저씨는 텅텅 빈 동네 버스를 가리키며 승객이 없어도 시간 되면 다녀야 하는 시내버스라고 이게 일상이라며 동네 버스를 소개했다.

산간 마을에는 마을마다 살고 있는 주민들도 적겠지만 누가 맨날 이 꼬부랑 길 버스를 타고 다니겠나 싶었다.

그리고는 농담 반 진담 반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가이드 아저씨의 말발과 재치 넘치는 제스처에 또 한 번 버스 안이 뒤집어졌다.

"이 산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다니기도 어려워 병원 다니기도 쉽지 않고 누가 왕진 오기도 힘들어 건강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예요!"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고 그 웃음 끝에 매달려 미끄러지듯 우리는 높이 2천 미터의 산과 맞짱 뜰만큼 산꼭대기에 위치한 산간 마을 아르테 나라 Artenara에 도착했다.


동굴집 이여도 전기도 인터넷도 있을건 다 있답니다

우리가 도착한 곳 Artenara 아르테나라는 그란 카나리아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꼭대기 마을이다.

높이 1270m에 위치한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들은 2019년 기준 천명이 조금 넘는 다고 한다. 그러나 이 작고 귀여운 마을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날이면 수만 명이 이 산간 마을로 모인다고 난리가 난다고 했다.

또 이곳은 유네스코 에도 등재 되어 있고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 꼭 가봐야 할 곳 Top 10에도 꼽히는 오래된 옛날 교회와 동굴집 이 있는 곳이다.


동굴집은 옛날 옛적 이 섬의 원주민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지 않아 밖의 온도가 올라가도 동굴집 안은 덥지 않고 날씨가 추워져도 동굴집 안은 춥지 않게 기본 온도가 유지되는 장점이 있단다.


요즘은 동굴을 집으로 개조해 사용하면서부터 그란 카나리아 섬의 또 다른 볼거리와 즐길 거리로 거듭났다고 했다.

가이드 아저씨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해변에 집을 짓는 것이 유행이었다면 요즘은 산 위에 동굴을 개조해 집을 짓는 것이 힙하다며 말이다.

우리는 그중에 가이드 아저씨의 지인이 살고 있다는 동굴집에 안내되어 남의 집 구경에 나섰다.

산기슭의 동굴이라는 게 무색하게 동굴 안 집은 없는 게 없었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흥미진진 남의 집 구경도 컨디션이 따라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걷는 길 에도 좀처럼 속이 가라앉지 않던 나는 만사가 귀찮았다.


동굴집 에서 내려다 본 마을 집들…
유네스코 등재가 되어 있는 교회가 보이는 마을 입구

가이드 아저씨는 30분의 자유시간을 이야기하며 화장실 갈 사람들과 음료수나 커피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길 안내를 해 주었다

그리고는…

앞으로 꼬불 길을 내려가 점심을 먹고 그 뒤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길이 우리를 기다린다며 웃었다.

진짜 그 순간만큼은 가이드 아저씨가 얄미웠다. 안 그래도 멀미 때문에 힘들어 죽겠는데 점심 먹이고 더 한길이 기다릴 거라니 그냥 디지라는 거지? 싶었다.


속으로 동굴 집 중에 펜션도 있던데 그냥 버스투어 고 뭐고 반은 왔으니까 여기서 하루 자고 가자고 할까? 고민하며 벤치에 앉아 늘어져 있는데 남편이 길 끝에 아주 작은 가게 쪽으로 걸어갔다.

너무 작은 가게라 기념품 가게 또는 음료수를 비롯해 간단한 생활용품과 간식거리 등을 파는 키오스크 인가했던 곳이다.

그런데 남편이 "여기 약국이다 멀미약 하나 살까?"라고 했다.

나는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띄었다 왜 내가 진작 그 생각을 못했던가 멀미약...

흐느적거리며 약국이라고 하는 작은 가게로 따라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간 약국 안은 더 작았다. 작은 매표소 같이 생긴 곳에서 약사로 추측되는 단발머리에 키가 큰 스페인 아주머니가 나왔다.

그란 카나리아 식 점심 메뉴 삼인방 야채 스푸,생선 튀김과 감자 그리고 소스
옥수수를 갈아 만든 그란 카나리아 식 디져트

나는 안 되는 영어로 멀미약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스페인 약사? 아주머니는 매우 당황하며 영어를 못한다고 했다.

남편은 라틴어로 멀미약 성분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아주머니 알듯 말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다 못한 막내가 핸드폰으로 구글 번역기를 돌려 스페인 말로 들려주었다. 역시나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들이 빠르다.

(막내의 핸드폰은 유럽 국가에서는 인터넷 데이터 사용이 가능한 약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유럽 안에서 여행을 할 때면 프리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서 언제나 막내의 인터넷을 온 가족이 빨대 꽂듯 얻어 쓰고는 한다.)


드디어 알아들은 스페인 아주머니는 해피한 미소를 머금으며 서랍에서 약 두 개를 꺼내 왔다.

스페인 말로 뭐라 뭐라 하며 한 손에 든 것은 카페인 그리고 다른 손에 있는 건 노우 카페인이라 했다.

나는 카페인과 노우 카페인은 알아 들었지만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녀는 영어를 나는 스페인 어를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말 보다 표정이나 몸동작으로 서로 많은 것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있다.


스페인 아주머니는 내게 카페인이라 말하고 눈 크게 뜨고 고개를 두리번두리번 했다 그리고 노우 카페인이라 말하고 아이들에게 이제 코 자야 해라고 말할 때처럼 두 손 모아 얼굴을 기대어 눈을 감고 쿨쿨 자는 시늉을 했다.

내가 알아들은 것으로 정리하자면 카페인이 들어 있는 멀미약은 먹어도 깨어 있어서 구경할 수 있고 카페인이 들어 있지 않은 멀미약은 내리따 잔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카페인 있는 것으로 골랐다

역시나 만국 공통어는 바디랭귀지다.


일년에 한번 사용 된다는 이름도 모르는 스페인 갑부에 별장,그리고 아프라카 튜울립이라 불리는 나무
테로 마을 골목

큰 선물이라도 받은 듯 고이고이 들고 나온 멀미약을 버스 타기 전에 단번에 삼켰다.

왠지 이제는 꼬부랑 길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약이 몸에 퍼지고 약발이 받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내린 곳은 산꼭대기 마을 아르테 나라에서 쭉쭉 내려가 다음 행선지인 테로라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로 가는 중간쯤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산 중턱에서 거쳐 있듯 식당 안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산아래 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그 아름다운 뷰를 감상하며 앉아 있으려니 미리 버스에서 가이드 아저씨가 메뉴 선택을 위한 거수를 끝낸후라 음식도 바로 나왔다.


한입 먹어본 그란 카나리아식 야채 종류별로 듬뿍 들어간 스프는 달큰 짭조름한 맛이 독일의Eintopf 와 비슷한 맛이었고 생선 튀김은 혹시라도 먹고 애써 가라앉고 있는 속이 다시 힘들어질까 봐 패스했다.

아침도 건너 띄고 버스투어를 했던 식구들은 맛나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그리고 그란 카나리아의 비장의 무기라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디저트는 보기에는 아이스크림 또는 바닐라 요구르트 같아 보이는데 한입 떠먹어 보니 맛은 우리의 달달한 미숫가루를 닮았다.

미숫가루 다 마시고 바닥에 남은 거 긁어먹을 때의 그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 말이다.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는 테로 마을 광장

그렇게 우리는 점심을 먹고 테로 Terro라는 작은 마을로 향했다.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 마시는 식수의 많은량을 담당 한다는 Terro는 작지만 아기자기 한 분위기 였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그란 카나리아섬의 수도인 라스팔마스에서 일하고 출퇴근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평일 한낮이었지만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 외에 그 동네 주민들로 보이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가이드 아저씨는 물 귀한 그란 카나리아 섬에서 진귀한 나무들을 보여주고 우리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스페인 갑부라는 누구네의 일 년에 일주일만 사용한다는 별장도 지나가며 알려 주었다.

그리고 각자 기념품도 사고 커피도 마시고 45분가량  자유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우리는 여유 있게 작은 기념품 가게들도 둘러보고 어디 가서 커피 라도 한잔 마시기로 했다.

점심을 극도로 조심해서 먹은 덕분인지 멀미약이 드디어 약발을 발휘해서 인지 그때쯤 속이 가라앉아 약간 멍한 것 빼놓고는 멀쩡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쥬디를 만난 카페가 있던 골목

긴 골목 끝에 있던 카페에 한자리 남은 야외 테이블에 우리는 잽싸게 자리를 잡았다

다른 가족들은 점심을 이미 점심을 배불리 먹었고 그때까지 멀미 때문에 마시던 것도 제대로 못 마시던 나도 이제는 뭐라도 마실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뭘 한잔 마셔 보나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어디서 누군가 “안녕하세요” 하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쪽을 쳐다보니 카페 안에서 짙은 갈색 머리를 하나라 묶고 동글동글 복스럽게 생긴 자그마한 스페인 처자가 주문을 받기 위해 우리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너무 놀랍고 반가워 “어머 한국말 할 줄 알아요?”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코끝을 찡긋 거리며 “네~쪼끔만요!" 하고 답했다

요즘이야 케이팝 케이 영화, 케이 드라마, 케이 푸드 등 다양한 한국 문화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라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을 만나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곳은 한국도,독일도,스페인도 아닌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스페인령 의 작은 섬 그란 카나리아의 작은 마을이 아니던가!

오며 가며 마주친 관광객들 중에 아시아 사람들도 많지 않던 섬의 작은 시골? 카페에서 한국어를 듣게 될줄 몰랐다.

그것도 스페인 처자 라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나는 음료를 주문하는 것도 잊은 채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어요?" 라며 물었다.

그랬더니 그 처자가 빙그레 웃으며 "라스팔마스 에 한국어학당 있어요"라고 했다

"그럼 라스팔마스 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아요?" 했더니

"네 선생님 다 한국 사람이에요!"라고 했다.


나는 간단한 대화였지만 한국어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에 아이 처럼 신이 났다.

어느새 내 이름을 이야기해 주고 그녀의 이름을 물어봐도 될지 물었다 그리고 브런치라는 블로그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혹시 이 에피소드를 써도 되겠느냐고도 물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며 쥬디라고 이름도 알려 주었고 너무나 흔쾌히 "네 좋아요!" 라고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쓰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쥬디와 한국어로 이야기하느라 신이 난 엄마에게 아이들이 눈치를 줘서 그제야 음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간단하고 짧은 대화였으나 버스 타고 오기도 힘든 이곳에 어떻게 한국어를 하는 스페인 처자가 다 있지 싶어 마냥 신기하고 반가웠다.

몇 분뒤 다른 테이블 주문도 받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던 쥬디가 다시 밖으로 나와 우리 테이블 쪽으로 왔다

그리고는 "어쩌죠? 망고 스무디가 하나만 있어요!"

나는 쥬디가 알아듣기 쉽게 한국어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아 우리가 주문한 망고 스무디 하나밖에 안돼요?"

그랬더니 쥬디가 "네 없어서 하나만 돼요!"

재료가 없어서 망고 스무디가 하나만 된다는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요 쥬디 하나로 나눠 마실게요 우리가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해서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때가 버스 출발 시간이 15분 남짓 남아 있을 때였다.

이미 주문한 것은 나올 때가 되었고 다시 다른 것을 시키면 언제 나올지 모르는데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말을 모두 알아들은 듯한 쥬디는 알겠다는 말을 남긴 체 다시 카페 안으로 사라 졌다.


아이들과 중간에 찍었던 사진도 확인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커다란 쟁반에 가득 담긴 음료수를 들고 쥬디가 다시 우리에게 나타났다.

음료수를 건네주던 쥬디가 내게 물었다

"블로그 이름 뭐예요.?"

나는 작은 종이에 한글로 내 이름 김중희 와 다음 브런치를 써 주고 더 찾기 쉬우라고 영어로 브런치 주소도 적어 주었다

그리고는 "한국어 선생님한테 이거 보여 주면 찾을 수 있어요"라고 했다.

쥬디가 한글을 얼마나 읽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내 브런치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음료수를 마시고 시계를 보니 버스 앞으로 모여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갔다.

나는 함께 나누고 싶은 말도 묻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마지막으로 함께 사진 한 장 찍고 그 자리를 떠나며 쥬디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쥬디 이제 우리 버스 타러 가야 해요 한국어 열심히 배워서 꼭 한국 놀러 가요!"

쥬디는 예쁘게 웃으며 "네 정말 고마워요!"라고 했다.

이 글을 쥬디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쥬디 잘 지내기를 바라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진도 에피소드도 쓸 수 있게 허락해 줘서 고마워요 건강하게 지내요!"

그란 카나리아 섬 작은마을 테로의 오후를 빛나게 해 준 서프라이즈였다.


쥬다가 일하던 카페 안에는 태극기가 꼿혀 있었다
웃는 모습이 참 선하고 예뻤던 쥬디와 한컷,하루 종일 멀미 하던 아줌마는 먹은것도 없이 부어 있었다 원래 모습은 사진과 정말 다르다 우기고 싶은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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