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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희 Mar 20. 2023

개똥 때문에 경찰 부를 뻔 한날

여우비 오는 날 해프닝


인상은 과학이다, 생긴 데로 논다 등의 말에 ‘’그럼 그렇지 그렇고 말고! ‘하며 박수를 치는 사람 중에 하나다.

당연히 인상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지만 살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겪다 보니 고개를 저절로 끄덕 일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인상을 굉장히 주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데 인상과는 생판 다른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중에 한 명이 울 남편 되겠다.

한국 사람들은 내게 “아유 신랑이 진짜 사람 좋아 보인다 시집  갔어 정말!"라고들 했다.

그리고 독일사람들은 남편이 "친절하고 인간적으로 보인다"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의외로  하는 구석이 있다는 것을 알면 허거덩 하게 된다.

동그랗고 크게 쌍꺼풀진 눈 때문인지 동그란 콧방울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남편은 전반적으로 동글동글 한 인상이라 마냥 선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인상과는 다르게 남편은 불같은 구석이 다.


그에 비해 전반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을 풍기는 나는 한국 사람들은 깐깐해 보인다 하고 처진 눈이라 독일 사람들은 겁많고 마음 약하게 생겼다 한다.

그러나  처진 눈이 나름 커질  옆으로  올라가며 흰자가  보이는 편인 나는 물렁하게 보는 독일 사람들이 오금이 인상으로 변한다.

오늘 그 식겁할 인상을 다시 한번 사용할 일이 생겼다.


우리 집 멍뭉이 나리를 데리고 산책을 막 나가던 주말 오후였다

아침부터 맑은 하늘에 비가 오다 말다 하는 여우비 오는 날이라 나는 커다란 우산을 들고 남편은 나리의 리드 줄을 쥐고 늘 산책 가는 동네 윗길로 올라가고 있을 때였다.

우리 옆 쪽으로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 차는 색도 눈에 팍팍 띄는 금색에 자동차는 마치 억지로 굴러가서 뭔가 어그러진듯한 쇠 긁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겉은 멀쩡 한데 저거 뭔가 문제 있는데!" 했다.

자동차는 듣기 거북할 정도로 비정상 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길을 건너 강아지들이 자주 산책을 나오는 풀밭을 지나갔다.

여기저기 냄새를 맡던 나리가 엉덩이를 내리고 쉬를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쪽에서 누가 우리를 보며 뭐라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아래쪽에서 두 명의 남자가 아까 그 요란하던 자동차를 주차장에 세워 두고 공구 박스를 꺼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 차를 타고 내려갔던 사람들 이였던 가 보다.

그중 한 명은 자동차 밑으로 들어가 뭔가를 돌리고 있었고 한 명은 몽키 스패너 같은 공구를 들고 우리 쪽을 쳐다보며 뭐라 뭐라 하고 있었다.


나는 "뭐라고요?"라고 했고 그 남자는 "거기 강아지 똥 치워요!" 라며 소리쳤다.

우리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게 뭔 소리여 우리? 우리 나리?" 했다

그리고 저쪽 아래까지 들리고도 남을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얘 지금 오줌 쌌어요 똥 싼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 남정네가 "내가 방금 봤는데 똥 싼 거 얼른 치워요!"

우리는 '미친 거 아님!' 하는 표정이 되어 "아니 똥이 아니라 오줌 이라니까요!" 했다.

그랬는데 그 남정네는 끝까지 박박 우기며 "내가 봤다니까 그러네!"라고 했다.

아니 싸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본다는 말인가?


보통 남자 강아지 들은 다리를 옆으로 들어 올리고 쉬를 하고 똥 눌 때만 엉덩이를 내리고는 한다.

그러나 여자 강아지 들은 오줌일 때는 저위에 사진처럼 엉거주춤 앉아서 싼다.

똥일 경우는 힘을 줘야 해서 엉덩이가 오히려 조금 올라가고 귀가 옆으로 내려가기 마련이다

이런 디테일한 것을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은 강아지 엉덩이가 내려간 것만 보고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싸지도 않았는데 똥 싸는 걸 봤다니 답답할 노릇 아닌가?


기가 막힌 남편은 "아니 여기 직접 와서 봐요 어디 똥이 있나?"

그랬더니 그 남자 더 가관이었다.

오지도 않고 아래쪽에서 꿋꿋하게 서서는 온동네방네 떠나갈듯 큰 목소리로

 "아니 내가 똥 싸는 거 분명 봤다니까요

경찰에 신고합니다"

하 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다.


독일에서 개똥을 치우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 (독일이 반려견 문화 선진국 이라며?)

그러나 그건 일반 경찰 소관이 아니고 단속반이 따로 있다.

그런데 경찰을 들먹이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 게다가 똥을 싼 적도 없는데 뭘 치워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어이없어하고 있는 사이 욱한 남편이

"그래 경찰 불러! 아니 여기 와서 확인해 보라니까 왜 안 와? 그럼 내가 가지!" 라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경찰 부르라는 남편의 말도 웃겼지만 순간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남정네들의 몽타주가 범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화나서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남편에게 나는 "아니 뭐 하러 상대해! 그냥 가지!" 하며 빠르게 내려가고 있는 뒤를 따라갔다.

어디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 이상한 소리를 내던 자동차를 공용 주차장에 주차해 두고 공구 박스 꺼내 놓고 있던 그 남자들은 무엇보다 덩치가 컸다.

내게는 여차 하면 사용할 우산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건장한 남자 둘과 건장하지 않은 남자하나 건장하지만 힘없는 여자 하나 그리고 작업복 입은 아재들에게 유난히 더 꼬리를 치며 좋아하는 나리는 쨉이 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싸지도 않은 똥을 쌌다고 우기던 남자는 가까이서 보니 더 험상궂어 보였다.

이미  빵 터져 버린 남편은 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우리 강아지가 똥을 싼 게 아니라 오줌을 쌌다는데 왜 와서 보지도 않고 여기서 소리칩니까?"

그러자 그 남자 "아니 내가 언제 소리를 질렀어요 그리고 아니면 됐지 뭘 그래요! 소리는 지금 그쪽이 치고 있구먼!"

"아니 뭐여 아님 말고야!" 나는 빽빽 거리며 옥신각신 하고 있는 남자들 사이에 서서 쉿 조용! 했다.

그랬더니 누구랄 것 없이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이 기막힌 상황에 나는 내려가 있던 눈고리가 올라가며 흰 눈을 번득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미 내 검은 눈동자 보다 훨씬 많이 차지하는 흰 눈동자의 번득임에 그 남자는 식겁한 눈치였다.

"저기요 옆에서 직접 보신 거 아니잖아요 우리 강아지가 똥 싸는 거 말이에요

얘는 분명히 오줌을 쌌어요! 그리고 우리는 항상 우리 강아지가 싼 건 다 치우고 다녀요!"

그러자 남편은 잠바 주머니에서 강아지 변봉투를 꺼내어 보여주며 "이거 봐요 이거 우린 이만큼 들고 다닌 다구요!"


나는 거기서 봉투를 들어 보이고 있는 남편의 아이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표정을 풀지 않은 채 그 우락부락맨 에게 이야기했다

"이 동네에 강아지 똥 안 치우는 사람들이 많은 거 알아요 그렇다고 덮어 놓고 모두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죠!"

그랬더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했다. “제가 시소속 환경미화원인데 이 동네 개똥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매일 정말 많은 똥을 치우거든요"


우리도 자주 풀밭 사이에서 화석처럼 굳어 있는 것부터 얼마 되지 않은 것까지 다양한 남의 강아지 똥을 본적이 많아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렇군요 맞아요 이 동네가 유난히 더 안 치우고 다니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고생하시네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아까의 그 생떼 부리듯 하던 것과는 다르게 공손한 말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 본 것 같아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

나는 "사과하셨으니 됐어요 그쪽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했다.

경찰 불러는 남편이 외쳤지만 결국 정중한 사과는 내가 받아 냈다.


조용한 주말에 갑작스레 뭔 일인가 싶긴 했지만 이 동네 개똥을 치우고 있는 환경미화원이라 하니 이해가 되기는 했다.

정말이지 너무 양심 없는 견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한 블럭 내려간 동네는 누군가 길가에 꽃을 심고 가꾸며 경고판 같은 작은 것을 손글씨로 써서 풀밭에 꽂아 두었다.

"당신의 네발 달린 사랑스러운 아이를 이 환단을 밟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우리는 이 거리를 예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진심 어린 손글씨 푯말이 위력을 발휘했던지 그쪽 길거리 풀밭에는 개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쪽 풀밭은 난리도 아닌 때가 많다. 인터넷에 강아지의 천국 독일이라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개똥 천국이라 불러다오 라는 혼잣말을 내뱉고는 한다.


어쨌거나 워낙 자기네 강아지변을 투척하고 뻔뻔하게 토끼시는 똥튀 양심불량 견주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닌 사람들이 두루 많은 것 같다.

우리가 괜한 오해받은 것에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 우락부락맨이 이해가 될 것 같은 순간이었다.    


나는 개똥 때문에 난리를 떨고 나리와 산책을 하며 겸연쩍어진 남편을 놀리기 시작했다.

이제 자기 별명 "경찰 불러!로 할까?"

여우비 내리는 날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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