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Oct 17. 2024

제주도는 작은 섬이 아니었다

넘치는 저녁 식사와 미스터리 한 비상벨


야자수가 우리를 반기던 제주도의 밤은 매혹 적이었다.

그러나 늦은 시간까지 저녁을 먹지 못한 우리는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아름다운 야경을 뒤로한체 일단 공항을 빠져나가 숙소로 향하기로 했다.

택시 정류장은 지금 도착한 사람들로 꽤나 북적였지만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시스템 덕분인지 금방 택시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릴 태운 택시는 혼잡한 서울 과는 다르게 차 막힘 없이 제주의 밤거리를 달려 나갔다.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하고 가방을 두고 저녁을 먹으러 가리라 들떠 있던 나는…

기사님께 여기서 숙소까지 얼마나 걸릴지 여쭤 보았다.

"여기서 한 40분쯤 되죠!"라고 쿨하게 대답해 주셨고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싶어 나는 속으로 조금 놀랬다.


40분 이면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 않은가

숙소는 남편의 학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가보니 그곳은 십 년 전에 아이들 데리고 머물던 서귀포 중문 단지에서도

떨어져 있었고 공항 가까운 제주시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숙소 근처에는 그 시간에 저녁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칡흑 같이 어두운 거리를 뚫고 도착한 숙소 앞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서울 시내였다면 그 시간에도 불야성 인 곳이 있었겠지만 여기는 바다 건너 와야 하는 섬 제주도가 아니던가

숙소는 성산일출봉이 멀리 보이는 허허벌판에 지어진 곳이었다.

예전에는 목장 지역이었다고 했다.

가방을 들고 들어가 체크인하며 직원에게 리조트 안에서 지금 식사가 가능한 곳이 있는지를 물었다.


친절한 직원은 리조트 사용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 주며 밤 8시가 넘어가면 마지막 오더가 끝나는 시간이라 리조트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식사가 안되고 밖으로 나가 있는 레스토랑들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일단 가방만 방에 던져두고 직원이 표시해 준 종이로 된 리조트 내부 안내용 지도를 아이들의 보물찾기 지도 마냥 소중히 들고 어디선가 밥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틀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우리는 일단 빈배를 체우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떠나 온 날은 난기류로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속이 울렁거려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도착해서는 저녁도 건너 띄고 미용실 가서 머리 하느라 제때 먹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짐가방 싸서 다시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오느라 간식 같은

아침 겸 점심으로 간단히 때운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리조트 안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복잡했다.

간략한 지도 형식으로 나와 있는 종이 한 장가지고는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는 거다.

배는 고프지.. 힘은 들지.. 먹을만한 데는 안 보이지…

짜증이 솟구치려는데..

때마침 환하게 불 켜진 푸드코트처럼 생긴 곳이 보였다.

문 앞에 영업시간도 21시까지로 붙어 있었다.

앗싸~! 드디어! 하고 문을 열고 들어 갔다.


그런데,... 왠지 안은 썰렁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21시가 되기 딱 십여분 전이였다.

모두들 정리하고 퇴근하시기 바로 직전이었던 게다.

주방을 이미 마감했고 점표 찍는 것도 모두 꺼둔 체라 어쩔 수 없다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우리가 굶주려 보였던지 ..

그중 딱한 곳에서 맘씨 좋아 보이는 사장님이 앞치마를 다시 둘러메시며 기웃대던 우리에게 짜장, 짬뽕, 탕수육을 해 줄 수 있노라 했다.

단 포장만 된다고 말이다.


식사가 된다는 것에 너무 반갑고 감사했지만 순간 당황한 나는

"그럼 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다.  

맹해 보이는 나의 질문에 사장님은 사람 좋은 웃음을 웃으면서 "포장된 거 가져다가 방에 가서 드셔야죠!"라고 하셨다.

아~맞다 여긴 리조트였지..


마지막 손님이라 짬뽕 국물도 충분히 담았다며 찬밥이지만 덤으로 드릴 테니

국물에 말아 드시면 넉넉할 것이라던 인심 좋은 사장님 덕분에

바리바리 들고 온 음식들을 방안 탁자 위에 늘어 놓으며 마음이 푸근해 졌다.


독일에서 짜장, 짬뽕에 탕수육까지 샐프로 만들어 먹으려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들던가...

제주도 도착해서 남편과 좋은 식당에 가서 근사한 저녁을 먹어야지 했던 나의 상상과는 비록 조금 달랐지만 이대로도 훌륭한 저녁이었다.


센스있게 챙겨 담아 주신 나무젓가락과 일회용 수저들을 꺼내 들고 남편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나는

"이렇게 포장해다가 방에 앉아서 먹고 있으니! 드라마에서 보던 배달 음식을 먹는 것 같다!" 라며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어느새  포장용 플라스틱 그릇이 삭삭 비워졌다.

짬뽕 국물에 밥까지 말아먹다 보니 정말이지 배가 터질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남은 국물은 버리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리조트라 해도 방에 주방이 없다 보니 국물을 버릴 곳이 딱히 없어 보였다.



결국 나는 남은 국물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그런데.. 욕실 안이 어두웠다 복도 불도 센서 등으로 되어 있어 그냥 켜지고 거실 불도스위치 찾아 켰는데 도무지 욕실 불은 켜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뭐지? 왜 불 켜는 곳이 없지?

그때..

국물 들고 한참을 찾아 헤매는데 보이지 않던 전기 스위치가 욕실 한편에 있던

변기 옆 벽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뭐여 변기에 앉아 편하게 불 켜라는 거여?“ 라며 앉아서 그곳을 눌렀다.


그런데 안이 밝아지지 않았다 분명 힘차게 눌렀는데..

하는 수 없이 국물 담긴 통을 들고 다시 복도로 나왔다

혹시라도 어두운 곳에서 빨간 짬뽕 국물을 변기통에 잘못 부어서 욕실 바닥이 시뻘건 국물로 흥건해질까 봐 어떻게든 불을 켜고 환해 진후에 뭐가 보이면 버려야지 싶어서였다.


어두컴컴한 욕실에서 밝은 복도로 다시 나오니 맞은편 에 빨간색 커다란 손전등이 휴대용 조명등이라고 써져 있는 초록색 글씨와 함께 벽에 붙어 있었다

"에이 설마 욕실 들어갈 때마다 손전등을 켜라는 거야?"

나는 어이없어하며 남은 국물 이 담긴 통을 일단 방 탁자 위에 다시

가져다 두기 위해 몸을 틀었다


그때였다 욕실 들어가는 입구 벽에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하나 눈에 띄었다.

벽과 색이 똑같아 구분이 가지 않게 생긴 것

이건가? 싶어 살짝 눌렀더니 세상에나 만상에나 욕실 전체가 환해졌다.

"그럼 아까 그건 뭐지?" 싶어 변기에 앉아 벽에 붙어 있던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마치 불 켜는 스위치 같이 벽에 붙어 있던 그것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Emergency 오마나 에머전씨? 응급한 상황에 누르라는 비상벨 그 에머전씨?

오마나 당황한 나는 남편에게 "자기야 내가 아까 욕실 전기 스위치인 줄 알고

힘차게 눌렀던 게 비상벨이었나 봐! 어떻게? 사람들 놀래서 달려오는 거 아냐?

실수로 누른 거라고 전화 라도 해야 하나?"


그랬더니 남편은 배불러서 만사 귀찮다는 듯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무턱대고 뛰어 오겠니? 무슨 일인지 확인 전화부터 하겠지!"

그 후로도 혹시나 싶어 침대옆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전화기를 뚫어져라 쳐다 보아도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방문 앞에서 서성였으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비상벨을 눌렀는데도 너무도 잠잠한 것이 참으로 미스터리 했다.

나는 욕실 안 변기옆 벽에 붙은 비상벨을 쳐다보며 남편에게 말했다.

"이런 진짜 비상 이었음 벌써 디졌겄네..!"

그러자 남편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어젖히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처럼 모르고 막 눌러 대는 사람들이 많았나 부지!"



매거진의 이전글 어리바리 부부의 제주도 여행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