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중희 Oct 28. 2024

제주 녹차밭 이게 진짜였군!


아무도 없는 녹차밭에서 얼떨결에 뱀과 미팅을 하고 오설록 뒤편으로 걸어 올라갔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머지않은 곳에 이니스프리 하우스라는 곳이 있다 했다.

그곳에서는 녹차가 함유된 화장품 등도 구경할 수 있고 비누 만들기, 엽서 만들기 등의 

체험 학습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에 자리가 넓다고 했다


진짜 조금 걸어 올라가니 보였다. 

카페는 마치 작은 식물원 같기도 하고 정원 같기도 한 카페는 안에도 밖에도 앉을자리가 비어

있었다

9월 말인데 아직도 30도 가까이 올라간 날씨 덕분에 고향의 여름 끝자락을 만날 수 있었지만 

더웠다 그리고 목이 말랐다.

뱀을 조우한 덕분에 긴장을 한 탓인지 빨리 뭔가를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역시나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긴 줄에 서서도 눈을 즐겁게 해주는 

알록달록한 음료 들과 기발한 간식들 구경이 솔솔 해 기다림이 지루 하지 않았다.

화산을 닮은 녹차 들어간 케이크도 재밌지만 해녀의 바구니 라니 말이다.

점심을 먹고 온 게 아니었다면 하마터면 혼자 앉아 해녀의 바구니 들고 브런치를

할 뻔했지 뭔가.


나는 어쩐지 귤밭에 온 느낌이 들 것 같은 음료를 한잔과 약과를 닮은 

간식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왠지 더워도 밖의 청정한 공기를 쐬고 햇빛을 받으며 마시면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으니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의 발코니처럼 생긴 곳 아래쪽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녹차밭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들이 말하던 녹차밭은 바로 여기였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뱀을 만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게다 (전편 참조)

녹차밭은 흡사 포토존이 되어 사람 반 초록이 반이었다.


초록의 녹차잎들 사이에 선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포즈로 연신 인증사진 찍기 바빴다

엄마와 딸들로 보이는 똑 닮은 가족, 친구들 무리로 보이는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젊은 청춘들,

외국어라 뭐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기들끼리 신난 외국 청년들,

특이한 포즈로 깔깔 거리며 즐거운 순간을 담고 있었다. 

스쳐지나 간 사람들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녹차밭에서 들려오던 

즐거운 웃음과 분위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 푸르름을 배경 삼아 사진 촬영 중인 사람들을 구경하다 

문득 테이블 맨 끝에 그림처럼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종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어 아마도 야외에서 책을 손에 든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여름이 다 지나가지 않았던 그때는 종이 책장을 넘기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 

저절로 시선이 갔다.


파란 하늘의 솜사탕 같은 하얀 구름이 뭉실하게 펼쳐진 하늘 아래 

초록의 녹차밭을 배경 삼아

나무로 된 긴 테이블 끝에 마주 앉은 남녀는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모습이 저절로 눈에 담겼다.


햇빛 가득 받은 조금은 더운 오후 긴 우드 테이블 끝에 책장을 사락사락 

넘기던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책을 읽었고

간간히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맞은편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남자분을 향해 

연두부 같은 미소를 머금던 여자분이 

"충분해?"라고 딱 한 만디 했다.

왜 그 말이 그리도 울림 있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마치 책 읽기는 이것으로 충분해?라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함이 이것으로 충분해?라고

묻는 것 같기도 했다. 


그 한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 같은 모습을 뒤로하고 그 두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나는 손에 책 대신 간식이 잔뜩 담긴 쟁반을 들고 

굳이 그 자리에 가서 앉아 보았다. 

그들처럼 우아한 분위기로 간식이라도 먹어 보기 위함 이였다.


그 순간 깊게 파인 나무 테이블 사이로 어디선가 커다란 풀벌레 한 마리가 폴짝

하고 뛰어올랐다.

나도 모르게 우억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된쟝! 분위기는 아무나 내는 게 아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 여행 둘째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