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금오름 에서 생긴일
금오름을 오르다 보니 수시로 덩치 큰 봉고차 같이 생긴 차량들이
바삐 올라가고 내려가고 했다.
그 좁은 길을 차가 오갈 때마다 한쪽 길 끝에 붙어 서서는..
혹시나 또 어디서 개구리나 뱀이 나오려나? 갈대나 풀떼기 있는
쪽에서는 진드기나 모기가 나오려나? 아무리 크게 떠도 뜨나 감으나 별차이 없는
눈을 부라리며 길을 비켜 주었다.
때마다 길을 내어 주며 성가시기도 했거니와 도대체 남들 열라리 올라가고 있는
오름 에는 뭐 하러 가는 차일까?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패러 글라딩 을 하려는 사람들과 장비를 실어 나르는 액티비티 회사
차량 이었던 거다.
이런 띠! 일찍 알았더라면 그냥 저차 타고 쭉 올라가서 패러글라딩으로 내려오는 건데...
‘아니지 너무 높이 올라가서 무서울 수도 있고 그러다 바람이 세게 불어 다른 데로 날아가면 어떻게?’
라는 양심도 없는 걱정을 해가며 혼자서 생쇼를 했다.
그러다 인증 사진 한컷 남기려고 짧은 팔을 길게 늘여 셀카를 찍는데
둥그렇고 튼실한 얼굴에 가려 이쪽으로 찍으나 저쪽으로 찍으나 금오름이 당최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 급한 사람이 배를 움켜 잡듯 한쪽 옆으로 몸을 접고 찍으니 장대한 얼굴에 비해
금오름이 저 멀리 빈약하게 찍혔다
바람에 풀어헤쳐진 땀에 절은 머리며 빨갛게 상기된 볼따구니와 튼실한 팔뚝과
대비되는 오목하게 패인 듯한 금오름을 보니 흡사 삽 들고 땅 파다 찍은 사진 같았다.
된장 ~! 그냥 풍경 사진만 찍는 걸로~~! 역시나 혼자 하는 여행에도 장비빨이 필요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셀카봉이라도 들고 올걸 그랬다.
그렇게 지랄난방의 셀카 타임을 뒤로하고 혼자 하산하는 길...
땀을 삐질 삐질 흘리며 올라올 때는 그리도 힘겹던 길이 내려갈 때는 일사천리였다.
힘들게 올라온 것이 아까와 천천히 걸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 산 위에 걸린듯한 하얀 뭉게구름, 축사로 보이는 파란색 농장 지붕들, 멀리서도 멋들어져 보이는 갈색의 제주도 말들...
가까이 있던 이름 모를 색색의 야생화들, 이제 머지않아 흐드러질 베이지색 갈대들..
그 순간에 보이는 모든 것이 소중해서 하나하나 차곡차곡 눈에도 마음에도 잘 담아 두었다.
그렇게 아껴 아껴 걸으며 내려오는데 구수한 팔도 사투리들이 들려왔다.
부부로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천천히 올라오시는데 그중에 아저씨가
목청 높여 말씀하셨다.
"흐미 징한그! 이거슨 등산이여 등반 이라니께!"라며 전라도 버전으로 투덜거리시던 아저씨는 아마도 아주머니에게 가볍게 산책이나 하자고 낚여 나처럼 쉽게 생각하고 오셨다 식겁하셨나 보다.
조금 더 내려오니 이번엔 친구들로 보이는 중년 여성분들의 데시벨 높은 음성이
들려왔다.
"옴마야, 여가 되네 여가 되~!"
친정 엄니가 가끔 쓰시는 여기가 찐으로 힘드네 의 경상도 사투리 버전이다
사투리 마니아인 나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정스런 사투리를 음미하며 내려가고 있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이번에는 동네 조기 축구회 단체복 같은 것을 똑같이 맞춰 입은 아저씨들이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올라오고 계셨다 그중에 한 분이 내게 물었다.
"안즉 멀었쥬?"
나는 좀 전의 내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나와 같은 물음을 하시는 아저씨의 구수한 충청도 버전에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조금만 더 가시면 돼요!"
그렇게 언제 내려왔나 싶게 내려온 금오름에서 나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했다.
그전날 애월 바닷가를 갔을 때도 그리고 며칠 전 녹차밭을 다녀왔을 때도 운 좋게 그 앞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만나 바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금오름 에는 기다리고 있던 택시도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사람들이 렌트를 했는지 모두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불안했다.그렇다는 것은 누군가 이곳으로 택시를 타고 들어 와서 내리는 사람이 있어야 택시를 만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생각해 보니 오가는 길에서 외국인들도 만나지 않았다.
즉 애월이나 오설록에서는 외국인 들도 많았고 유동인구가 많아 대기하고 있던 택시들도 눈에 뜨였는데 말이다.
그럼 나 어떻게 돌아가지?
우선 어디 카페 라도 가서 시원한 아이스커피라도 마시며 이사태를 해결할 궁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근처에 뭐가 없었다. 주차장과 감귤 주스 등을 파는 작은 간이매점 두 곳을
제외하고는 카페나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일단 더 내려가 보기로 했다.
한낮이라 언제 들어올지 모를 택시를 뙤약볕 아래서 기다릴 수도 없고 그 동네 지리도 모르면서 어디 버스 정류장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거기서 버스 노선 등을 검색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일단 시원한 걸 한잔 마셔야 살 것 같았다.
간이매점을 지나 한참 내려가니 카페 하나가 보였는데 오후에 문을 여는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거기서 더 걸어 내려오니 대로변 가까운 곳에 드디어 문 열린 카페가 하나 보였다.
얼른 들어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시켰다.
그런데...
직원님인지 사장님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남자 직원이 주문을 받는데 아침부터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카페에서 브런치나 디저트는 안 시키고 혼자 와서 달랑 커피 한잔만 시켜서 그랬는지 것도 아니면 어디서 가열차게 땅 파다 온 것 같은 내 행색 때문이었는지 (나중에 주변을 둘러보니 금오름은 올라갔을 것 같지 않은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예쁘게 차려입고 브런치 메뉴와 사진 찍는 이쁜 처자들이 많았다)
아니면 원래 말투가 그런지 알 수 없으나 "다 되면 진동벨 울립니다!"라는 퉁명스러운 말투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자못 불편 했다.
때로 넘치게 과한 친절도 부담이지만 빌려준 돈 떼먹은 사람과 닮은 사람 만났을 때나 나옴직한 싸한 표정도 마음이 불편 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원래 표정이 그러시다면 할말 없지만 말이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기다렸다 받은 아이스아메리카노는 한 모금 들이키니
머리가 띵해질 만큼 시원했지만 열라 썼다.
이제 어떻게 숙소로 무사히 귀환 하나? 하는 고민에 더 입맛이 썼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그 동네에 대해 미리 검색을 하고 온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다면 어디? 숙소로 바로 갈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갈아타야 하는 건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는 거다
녹차밭과 애월 바닷가에서는 묵고 있던 숙소 와도 가까웠고 버스 정류장도 가까이 있어서 안되면 버스 타고 가지 하는 마음에 편안했다
물론 숙소의 직원들 말에 의하면 제주도 버스는 아무래도 도시보다 환승하는 시스템이 빠르게 연결되어 있지 않아 기다리는 시간이 많을 수도 있다고 귀띔해 주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가기만 하면 되니 문제 될 건 없지 않은가
문제는 택시 밖에 없다면 나는 택시를 부를 방법이 없다는 거다. 그 거이 뭔 말인고 하니 그때까지 어디를 갈 때마다 숙소에서 직원들이 카카오 택시를 대신 불러 주었고
돌아올 때는 운 좋게도 빈차로 대기 중인 택시를 만났다.
내 핸드폰 에는 한국에 도착 한날 공항에서 일본 사람들,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줄 서 있다가 구매한 10일짜리 인터넷 사용만 가능한 SIM 카드가 끼워져 있었다.
결정적으로 카카오 택시 엡이 깔려 있지 않았다.
그러니 핸드폰을 손에 들고도 택시를 부를 수가 없는 거다.
예전에 딸내미의 절친 중 하나가 한국의 어느 대학으로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그때 한국에서 뭐가 제일 좋았고 어떤 게 제일 힘들더냐 물었더니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닐 때가 제일 재밌었고 한국 사람이 아닌 것이 제일 힘들더라고 했다.
그때는 그게 뭔 소린가? 했는데 내가 이번에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여느 한국 사람이라면 자주 사용하던 하지 않던 카카오 택시 엡이 깔려 있기 마련 일 테고 핸드폰으로 전화가 되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평소 너무 가슴 아픈 말이라 생각하는데 왜? 그 순간 그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제주도에서 며칠 지내며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님들께 묻고는 했다
"저희는 독일에 살아요. 잠시 한국 방문 중이라 핸드폰에 카카오 택시 엡도 없고 전화도 안돼요. 만약 어디를 갔다가 기다리고 있는 택시를 못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는 예전처럼 길에서 택시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손을 흔들고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만약 에라도 이런 사태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게다
그때마다 기사님들 마다 같은 이야기를 해 주셨었다 "어디라도 들어가셔서 식사를 하시던지 커피를 마시던지 하시고 택시를 불러 달라 하면 거기서 불러 줄 거예요!"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내성적인 면이 많은 나는 어떻게 부탁의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이나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mbti 가 E 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이불속에서 만세지 모르는 이에게 뭔가를 부탁해야 할 상황이 되면 잘 숨겨둔 I가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에이, 말 안 통하는 독일에서도 살았는데 여긴 말 통하는 내 나라 내 땅이 아닌가
사람 다 살게 마련이라고 사정이야기 하면 도와주시겠지.. 하고는
다 마신 컵을 쟁반에 담아 들고 용감 하게 앞으로 나갔다.
주문하던 곳에는 어느새 아까 그 남자분 외에 여자분이 한 분 더 계셨다.
"저기 제가 외국 핸드폰이라 카카오 택시 엡이 없어요. 방법이 없어서 그런데
택시를 좀 대신 불러 주실 수 없을 까요?"
아까 그 남자분이 이 아줌마 뭐 잘못 먹은 거임? 하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그런 거는 손님이 직접 하셔야죠 여기서 그러시면 안돼요!"
졸지에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가 되어 버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 내 모습이 안쓰러웠던지 여자분이 "저도 여기서 택시를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하는지 잘 몰라요 그럼 콜택시를 불러 드릴까요?"
라며 자신의 핸드폰으로 검색한 콜택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주었다.
그런데 그 회사 택시는 다른 동네라 이 동네까지 올 수가 없다고 했다
목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밖은 한낮의 땡볕에 허허벌판 말울음소리와 돼지 소리만 들려오고 버스 정류장은 있는지 마을 까지는 얼마나 걸어가야 나오는지 알 수가 없으니 도대체 나는 어떻게 숙소로 되돌아 간단 말인가?
그러다 상냥하고 어여쁜 숙소 직원이 그 전날 아침에
"혹시라도 밖에서 택시가 필요하시면 숙소로 전화 주세요
대신 불러서 보내 드릴 께요!"라고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그 여자분 에게 "정말 죄송한데요 여기로 전화 한 통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묵고 있는 숙소인데 거기 직원이 필요하면 대신 택시 불러서 보내 줄 수 있다 했거든요!"
그 남자의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로 시작한 구시렁 따위는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아니 신경 쓰려하지 않았다.
여자 직원분이 전화 한 통 더 해 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갈굼에도 굴하지 않고 여자분은 고맙게도 한 번 더
전화를 걸어 주었다.
그런데..
숙소의 전화가 띠~띠~띠~ 하며 통화 중임을 우렁차게 알리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그 마음 여린 여자분 에게 지금 까지 끼친 민폐로도 충분하지 싶었다
그분들의 일을 더 방해해서도 안되고 이제는 어떻게 하던 알아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너무 감사해요 제가 밖에 나가서 알아볼게요!"
라며 카페를 나섰다.
그렇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에 몇 시간 같았던 몇 분의 시간을
재빨리 마무리하고 서둘러 카페를 나왔다.
이해한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한들 그건 내 입장이지
직원들 입장에서야 바빠 죽겠는데 얼마나 가지가지한다 싶었겠는가
다행히 큰 길가로 나오니 버스 정류장이 하나 보였다.
문제는 이곳에서는 몇 번 버스가 오는지? 그 버스가 언제 올지? 숙소로 가려면 몇 번을 타야 할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