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과 연결된 앞글 두 개를 읽고 오시면 이해하시기 쉽습니다
그렇게 카페를 나와 무작정 걸었다.
조금 걸어 내려오니 큰길이 보였고 쌩쌩 거리며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걸으면서도 조금 전에 뭔 일이 있었던 거지? 싶게 순간순간 밀려드는 민망함으로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그 때문인지 지나가는 차들이 더 쌩하니 느껴져 그 더운 날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다행히 길 건너 왼편 앞쪽에 버스 정류장 하나가 보였다.
뒤쪽은 농가 또는 농장이 있는지 축사로 보이는 건물 들과 트랙터 그리고 트럭들이 보이고 꾸억 꾸억 하는 낮은 돼지 소리와 저 멀리 흐흐헝 거리는 높은 말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동물들의 울음소리의 높낮이가 절묘하게 조화로워 수선스럽지 않았다.
그저 평온한고 조용한 목장 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랄까?
살다 보면… 지난 일들 중에 막상 그때 보다 시간 지나면 더 생각 나는 일들이 있지 않은가?
내겐 그날 카페에서 벌어졌던 몇 분동 안의 그 에피소드가 그런 일 중에 하나였다
머리를 세차게 도리짓 해도 자꾸 같은 장면이 꾸역꾸역 떠올랐다.
마치 틀면 나오는 티브이 광고처럼 되돌이표를 찍으며 말이다.
그렇게 멍하니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으려니 뒤쪽으로 여자분 한 명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처음 길 건너올 때는 멍 때리고 있기도 했고 버스 정류장 앞으로 가서는 어딘가 붙어 있을지도 모를 버스 노선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느라 누가 뒤에 서 계신지도 몰랐다.
가볍고 편한 옷차림에 챙 달린 모자를 쓰고 손수건으로 간간히 땀을 닦아 내며
무언가 집중해서 보고 있는 그녀에게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졌다.
어딘가 많이 다녀 본 듯한 여행자의 포스라고나 할까?
그녀는 분명 나보다는 많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 용기를 내어 주춤주춤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혹시나 말 붙였다가 당황스러워질까 봐 더 조심스러웠지만 말이다.
나의 쓸데없는 기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생전 처음 보는 어리바리한 아줌마의 횡설수설 자초지종을 어찌나 정성스레 귀 기울여 주던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은 부산 분이고 평소 오름을 좋아해서 제주도에 자주 오시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그녀는 제주도를 뚜벅이로 혼행을 하고 있어 주로 버스를 이용해서 다니고 있다고 했다. 리스펙~~!
그녀가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어 보여준 제주버스 노선표 에는 시간대 별로 갈아타야 할 곳과 환승할 수 있는 곳들이 주르미 나와 있었다.
번호 다른 2대의 버스가 24분 28분쯤 후에 금오름으로 들어온다고 나와 있었다.
그녀는 그 둘 중에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환승하는 곳에서 내리면 여러 방면으로 가는 버스들이 있을 테니 그곳에서 숙소로 가는 버스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본인도 거기 까지는 가니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해 보자고 했다.
낯선 곳에서 경험 많은 길동무를 만나 함께 이동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고맙던지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버스를 기다리며 멋지구리한 부산 언니의 자분자분 다정다감한 경상도 버전 말투에 매료되어 나는 그날 카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그때 카페에서 남자의 표정과 말투 그가 나 들으라고 여자직원 뒤에서 씨부렸던 소리들 까지 남김없이 쏟아 냈다.(글 에는 다 옮기지 않았답니다 ㅎㅎ)
티엠아이가 난무하는 그날의 상세한 시추에이션을 부산언니(어느새 그분의 별칭이 되었다.)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어머나! 세상에나! 의
감탄사를 남기며 집중해서 들어주었다.
그녀의 세상에나! 속에는 마치 '어쩜 그랬데요! 진짜 나빴네!' 라며 대신 화내주는 것 같아 맘 가운데 포근한 위로가 얹어졌다.
그러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말했다
"어!, 내도 카카오택시 앱 있는데 불러 드릴 까예?"
생전 처음 만난 사람을 위해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먼저 손을 내밀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는 나도 모르게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다시 되물었다.
"진짜요? 저야 넘 감사하죠!"
그러자 그녀는 시원스레 웃으며 "당연하죠!"라는 말과 동시에 핸드폰 위에 손가락을 휘날리며 우리가 서 있는 금오름 앞으로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이렇게 쉽게 택시를 부를 수 있다니... 너무 고맙기도 하고 아까의 일들이 허무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도착 4분 전, 8분 전, 12분 전, 10분 전이라고
남은 시간을 알리던 택시들이 그녀의 핸드폰 화면에서 하나둘 사라져 갔다.
도로를 둘러보아도 핸드폰을 들여다 보아도 택시는 올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때마다 맘 따뜻한 부산언니는 "숙소까지 무사히 잘 가시야 할낀데 우짜꼬..,
와 택시가 안 올까요!"라며 혼잣말인 듯 대화인 듯 남의 일이 건만 안타까워해 주었다.
그녀의 경험에 의하면 이렇게 도착 시간이 핸드폰에 뜨다 없어진 택시는 다른 손님을 만났던 이 동네가 외져서 꺼렸던 좌우지당간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한마디로 금오름은 버스도 택시도 쉽지 않은 동네였다. 카카오택시 앱이 있어서 이렇게 불러도 택시가 백 프로 잡힌다는
보장은 없었으니 말이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버스를 타야겠다 하고 있었다.
사실 그분께는 내색하지 않았으나 장이 예민한 편인 나는 차갑고 쓴 커피와 스트레스가 섞여 작용을 했던지 배에서 신호가 오고 있었다.
등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두 다리는 베베 꼬이며 진퇴양난이었다.
그러다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부산언니 그녀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옴마야! 택시 잡힛나 봐예! 여 하나 들어 오고 있는갑 네예!"
라며 내게 다시 핸드폰을 들어 보여 주었다.
16분 후에 도착 예정이라고 쓰여 있던 택시는 핸드폰 화면에서 점선을 그리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가까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휴우~! 살았다!
우리는 함께 그녀의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며 마치 운동경기를 관람하고 응원하듯 손에 땀을 쥐며 택시를 기다렸다.
그러다 드디어 2분을 남겨 두었을 때 즈음 저 멀리서 택시 표시를 차 지붕 위에 얹고
늠름이 다가오는 택시가 한대 보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부산언니의 두 손을 덥석 잡고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라고 인사를 남겼다.
지금 까지 나는 그녀의 이름도 모른다 그러나 제주도 금오름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그녀, 부산언니의 다정했던 목소리와 정스러웠던 마음이 떠오른다
내게 있어 부산언니는 제주도 금오름에서 만난 귀인이다.
그녀는 그 당시 상황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기억 속에 두고두고 오래 남을
나의 제주도 여행 추억도 지켜 준 셈이다.
만약 내가 금오름에서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렇다 해도 숙소는 어떻게든 찾아갔을 게다.
그러나 제주도 금오름 하면 온통 씁쓸하고 속상한 기억만 남았을는지 모른다.
인생을 살며 여행의 추억이 늘 아름다울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든 꺼내 보면 미소 짓게 되는 추억을 하나 더 쌓았다는건 가슴 가득 뿌듯한 일이다.
모두 부산언니 덕분이다.
따뜻했던 그분이 언제 어디에 계시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