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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Sep 21. 2021

나의 결재 표류기

개인사업자가 있어도 어려운 결재의 세계

01. 실은 이전의 넥스트포스트를 정지한 이유 중 하나는 결재를 붙이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결재를 웹서비스에 붙이려면 기본적으로 개인사업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 당시엔 사업자가 있으면 입사에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는 루머가 떠돌던 시절인지라 포기했었죠. 더불어 세법에 대해 무지했던 (지금도 사실 비슷하지만) 시절의 청춘이었기 때문도 이유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해도 되었을 일 같지만, 여하튼 왜인지 그때는 그랬습니다.


02. 사이트를 만들기 전에 받았던 외주 프로젝트에서도 결재를 붙여야 했기 때문에 간단한 결재 서비스를 검색해보니 부트 페이와 아임 포트가 있어 양사의 개발용 문서를 비교했습니다. 아임 포트 쪽 문서가 좀 더 예전에 작성된 것인지, VueJS용 코드 샘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코드 내부적으로. jQuery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부트페이로 결정 내리고 테스트용 키를 발급받고 붙였습니다.


03. 요즘의 웹 결방식에는 수많은 방식이 존재합니다. 계좌이체, 페이코,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카드결제, 정기 결재… 그중에서 모바일/데스크탑 환경 모두 만족스러웠던 결재방식인 카카오페이만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해당 방향으로 개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내가 카카오페이만 사용하고 싶다고 해서 계약을 카카오페이만 할 수는 없는 결재대행 시장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카카오페이와 직접 계약하기 위해서는 그쪽에 먼저 제안서를 제출하고 통과되어야 하는 좁은 길이 존재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일정 규모 이상의 매출이 없는 사업자와는 계약하지 않겠다는 허들을 카카오페이가 설정해둔 것이기도 합니다. 대안으로 생각해서 알아본 네이버 페이의 경우에는 단독 계약은 불가능하고 pg사를 끼고 계약을 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여기서 서비스와 결재시스템 정책 간의 아이러니가 발생해버렸습니다.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최소한의 금액만을 결재받으려는 서비스와 상업적인 목적으로 최대한의 금액을 유통하려는 결재시장- 이 간극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고민이 깊었습니다.


04. 부트페이쪽 개발을 끝내고 유선상담을 받으면서 카카오페이만을 붙일 수 없다는 내용을 재차 확인하고, NHN 자회사 쪽 결재 대행사를 추천받아 해당 업체로 진행하기로 하고 2번째 유선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상담원분은 여성분이었는데, 서비스를 설명하다 보니 왠지 '신기하다'라고 느끼는 상담원의 태도가 느껴졌습니다. 덕분에 상담은 매끄럽게 이어졌지만- 문제는 보증보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필사를 해서 서비스하는 것은 일종의 수공예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정책상 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으면 진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어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05.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중간 주체들이 많아질수록 소비자, 생산자 그 누구도 행복해지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증보험까지 가입을 해야 하는 것은 저에게 있어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일정 금액의 한도가 정해지는데, 예를 들어 가입한 상품이 200만 원이라면 그 이상 매출액이 발생되어도 지급을 받을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낙담하고 있던 중 카카오페이에 개발자로 근무하고 있던 넥스트 동기가 카카오페이의 '송금하기'만 이용해서 간단히 구현할 수 있다고 하여 베타서비스 출시 전 급히 작업한 후 배포하였습니다. 물론 여기도 싫은 부분이 섞여있었는데, 카카오페이의 정책상 자사의 버튼 디자인을 반드시 수정 없이 강제하도록 되어있어 사이트 디자인 통일성이 깨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06. 하지만 송금하기로 결정했을 때의 단점은 결재해야 할 금액이 카카오페이앱으로 전달될 수 없기에 사용자가 일일이 금액을 재확인해야 한다는 점, 정식 결재가 아닌 사이트 신뢰도가 어쩔 수 없이 하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서비스 자체가 생소한 것이기에 이를 이해시키는 것으로도 어렵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측의 신뢰도가 낮았을 때 서비스 이용률이 현저히 낮아지는 문제는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되는 지점이었습니다.


07. 매주 일요일마다 독서모임을 하는데, 이런 고민을 여담 시간에 공유했더니 토스페이먼츠에서 일했던 분이 토스페이먼츠도 괜찮다는 안내를 주어 개발자 문서부터 열람했는데 문서 퀄리티도 좋고 작업 난이도도 낮았습니다. 그러나 로컬 개발을 끝내고 페이먼츠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시스템적인 부분 말고 (이제 어떤 부분들은 그쪽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인간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상품 상세페이지가 없어서 반려되었다는 문자가 왔는데 꽤 강압적인 어조로 약 1주 안에 사이트 수정해서 재심사를 요청하지 않으면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여 아이디를 취소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그리하여 급히 유선상으로 서비스 취지 등을 설명하고 대안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원론적인 답변과 약간의 짜증이 느껴지는 태도는 이전의 KCP측과의 상담과 대조적이었습니다. 물론 상담원이 특별히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상담이라는 기본적인 업무 특성상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빠져버리면 ARS와 다를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느덧 우리 사회가 이렇게 내부적으로 망가졌구나는 기분이 들어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08. 이쯤 되어보고 나니, 무한 루프에 빠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을 온전히 혼자 책임질 수 없다 -> 서버 비등 기타 비용은 사회적 기분의 마음으로 내가 지출하고 나머지 우편비 및 필 사료, 봉투, 엽서 값은 이용자에게 받자 -> 무통장입금으로는 허들이 너무 높아지고 서비스 신뢰도가 낮은 상태에서 어려운 일이니 결재를 붙이자 -> 결재를 받으려면 결재에 드는 초기 비용(보증보험 연회비, PG사 가입비등)과 수수료를 2중 또는 3중으로 매번 지급해야 하고, 사이트 구조를 전반적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비용이 더 들 수 있다. -> 서비스 운영에 드는 비용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09. 결론은 '일시적으로 혼자 책임지도록 하자.'로 내렸습니다. 보통 서비스 정식 출시에 맞춰 첫 달 무료 이벤트를 하거나 할인 등의 조건을 넣는데, 등기 우편을 없애고 보통우편 서비스로 통일한 뒤 회원가입 기능을 추가하고 정식 오픈 기념 이벤트 삼아 이용자의 비용을 없애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사이트를 열고 싶었던 취지 자체도 사람들이 디지털로만 소통하는 것보다 가끔은 손편지를 쓰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만큼, 비용이 든다면 기존의 결재 대행사들에 지급하는 것보다는 이용자에게 들이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10. 하지만 여전히 고민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웹은 국가적 경계가 희미하므로-)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굵직한 웹서비스는 무료로 운영되거나 엄청나게 저렴한 요금을 유지합니다. 그러한 서비스가 제공하는 효용에 비하여, 넥스트포스트가 어떤가라고 묻는다면 부정적인 답변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면에는 과도하게 몰린 투자금과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기 위한 끝없는 광고, 사용자의 데이터를 착취하는 수준까지 긁어서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향은 웹서비스 시장 초기부터 팽배해왔고 더 정교해졌습니다. 저도 그 시장 안에 포함되어 있어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상황이지만, 군대의 바뀌지 않는 수통처럼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 굴레는 계속될 것입니다. 언제가는 '받은 만큼 낼 수 있다'는 기본적인 원칙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잡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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