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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Jun 12. 2022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

와타나베 이타루, 와타나베 마리코 지음

시골빵집에서 균의 소리를 듣다


1판 1쇄 발행 2021년 11월 8일

지은이 와타나베 이타루, 와타나베 마리코

옮긴이 정문주


펴낸곳 도서출판 더숲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43-1)


- 맛있다는 감각은 원래 모호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감각이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오해한다. 이것이 바로 가치관의 획일화와 통한다. 

 우리가 절대적으로 '맛있다'고 오해하는 근거는 그것이 많이 팔린다는 정량적 지표다. 다시 말해 대기업이 대량 생산하고 시장에서 대량 소비되는 맛에 '맛있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다. 이는 결국 폐쇄적인 시장 시스템을 유지하고 가치관을 획일화하는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최종적으로는 세상이 하나의 답만 추구하게 되고, 소규모로 독자적인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 살아남기 어려워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성을 보장하려면 가장 약한 자가 살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면 된다. [115 ~116p]


- 아이 배설에 관해 말하자면, 아이와 부모의 소통을 방해하는 것은 기저귀다. 기저귀는 원래 혹시라도 어른이 아이의 배설을 도와주지 못할 때를 대비해 신체외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도구였다. 

 도구는 대부분 '사이'에 존재하며 양자를 잇기 위해 탄생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사이'에 존재하는 도구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애초에 해야 할 소통을 잊어버리는 일이 많다. [191p]


- 규모가 큰 제분기기 제조업체는 여럿 있다. 참고로 현재 일본에서 생산되는 전체 밀가루의 약 80%는 고작 네 기업이 제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밀가루 가격은 그 네 군데의 거대 제조사가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대규모 업체만 살아남는 것이다. 

 과거가 좋았다고 그리워하고 회상하는 정도로 끝낼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같은 생산자가 아무리 '여기 가치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라고 주장한들 대량 생산 시스템의 저가 공세는 밀가루 가격을 정하는 힘을 행사한다. 

 그러면 직접 밀을 제분해서 쓰고 싶어도 빵 가격을 떨어뜨리려면 대규모 업체의 밀가루를 쓰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따라 소규모 제분기 수요는 줄어든다. 소규모 제분기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아무리 나 같은 장인이 '빵의 원천은 밀에 있다!'고 주장하며 지역 농가에 밀 재배를 의뢰한들 직접 제분할 수 없게 된다. [212 ~213p]


- 예부터 전하는 생산 방식에 맞는 소규모 기계를 확보할 수 없으면 사회는 결과적으로 답답해진다고 생각한다. 획일적인 상품 경제가 빚어내는 동조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소량이지만 철학을 담은 물건을 만들고 싶어도 거기에 필요한 기계가 없다면 안정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경영하기는 불가능하다. -중략-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는 규모가 작고 불안정한 제조업을 말살한다. 그렇게 사라지는 업체들을 보면서 심각한 우려를 느낀다. 좋은 제품이 모이고 쌓여야 좋은 사회를 이룰 텐데 어째서 좋은 제품을 만드는 업체가 살아남을 수 없을까? 시장의 글로벌화와 정부의 긴축 재정에 따라 빈부 격차가 커지고 중산층이 무너져 사람들이 의식주와 관련한 좋은 물건을 살 힘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닌가? 

 -중략- 나는 마리와 결혼한 이후 소비 행동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전에는 습관처럼 가격을 보고 상품을 골랐다. 그런데 마리는 가격에는 신경쓰지 않고 물건이 좋으면 샀다. 나는 내가 살 수 있는 가격 범위 밖의 물건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으므로 정말 필요한 물건, 좋은 물건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느끼는 적당한 가격, 그 가격에 사는 물건밖에는 어떤 세계관이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 마리 덕에 나도 가격이라는 틀을 허물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세상 경치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런데 그런 별천지를 느끼려면 모두 자기가 쓸 돈은 갖고 있어야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지속 가능한 다양한 사회를 만들려면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라고 믿는다. 시장에서는 돈이 투표권이다. 그러니 소비자의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 구조가 필요하다. [214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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