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사물의 소멸
우리는 오늘 어떤 세계에 살고 있나
1판 1쇄 인쇄 2022. 8. 23.
1판 1쇄 발행 2022. 9. 5.
지은이 한병철
옮긴이 전대호
발행처 김영사(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197)
- 오늘도 계속해서 사물들이 사라진다. 우리가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사물 인플레이션은 정반대가 사실인 양 우리를 속인다. 오가와 요코의 디스토피아와 달리, 우리는 사상 경찰을 거느리고 사람들에게서 사물과 기억을 야만적으로 빼앗은 전체주의 체제 안에서 살지 않는다. 사물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소통 도취와 정보 도취다. 정보 곧 반사물이 사물의 앞을 가로막고 사물을 완전히 빛바래게 한다. 우리는 폭력의 지배가 아니라 정보의 지배 아래 산다. 정보의 지배는 자유로 가장된다. [8p]
- 디지털화는 세계를 탈사물화하고 탈신체화한다. 또한 기억을 없앤다. 기억을 되짚는 대신에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한다. 요컨대 디지털 매체들이 기억 경찰을 대체한다. 디지털 매체들은 전혀 폭력 없이, 또 큰 비용 없이 임무를 완수한다. [9p]
- 오늘날 우리는 정보를 쫓아 질주하지만 앎에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아두지만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다. 우리는 차를 타고 온갖 곳으로 달려가지만, 단 하나의 경험도 하지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다. 우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지만 기억을 되짚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와 팔로워를 쌓아가지만 타자와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정보는 존속과 지속이 없는 삶꼴을 발전시킨다. [19p]
- "내가 더 많이 소유할수록 나는 더 많이 존재한다"라는 오래된 소유 격언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새로운 체험 격언은 이러하다. "내가 더 많이 체험할수록 나는 더 많이 존재한다." [25p]
- 오늘날 소비재들이 이토록 빠르게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유물은 내면화되고 심리적 내용을 보유하게 된다. 내가 소유한 사물은 느낌과 기억을 담은 그릇이다. 오래 사용됨을 통해 사물에 축적되는 역사는 사물에 영혼을 불어넣어 충심의 사물로 만든다. [29p]
- 사람은 멀리 있는 사람을 생각하거나 가까이 있는 사람을 붙잡을 수 있다. 다른 모든 것은 사람의 능력을 벗어난다. 글로 쓴 입맞춤은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유령들이 그 입맞춤을 가로채 깡그리 마셔버린다. 인류는 이를 느끼고 맞서 싸운다. 유령이 사람들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 영혼의 평화를 이뤄내기 위하여 인류는 철도, 자동차, 비행기를 발명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추락하는 와중에 제작한 발명품들에 불과하다. 상대편이 훨씬 강하다. 상대편은 우편에 이어 전보, 전화, 무선전신을 발명했다. [83p]
- 좋아요의 긍정성은 세계를 같음의 지옥으로 바꿔놓는다. [89p]
- 오늘날 예술의 문제점은, 예술이 미리 품은 견해를 이를테면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신념을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오늘날의 예술은 정보를 전달하는 경향이 있다. 구상이 실행에 선행한다. 그리하여 예술은 예시로 전락한다. 불특정한 열기가 표현 과정을 규정하지 않는다. 이제 예술은 물질을 의도 없이 사물로 조형하는 수작업이 더는 아니며, 오히려 미리 제작한 생각을 소통하는 생각 작업이다. 사물 망각이 예술을 휩쓸고 있다. 소통이 예술을 독차지한다. 예술이 정보와 담론을 싣게 된다. 예술이 유혹하는 대신에 가르치려 든다. [97p]
- 강한 결속은 오늘날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간다. 그런 결속은 무엇보다도 비생산적이다. 오로지 약한 결속만 소비와 소통을 가속하니까 말이다. 요컨대 자본주의는 결속들을 체계적으로 파괴한다. 또한 오늘날에는 충심의 사물도 드물다. 충심의 사물은 일회용품에 밀려난다. 여우는 이렇게 말을 잇는다. "사람들은 무언가와 아는 사이가 될 겨를이 더는 없어. 사람들은 모든 것을 완제품으로 가게에서 사지. 그런데 친구를 파는 가게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제 더는 친구가 없어". 생텍쥐페리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이제는 친구를 파는 가게도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가게의 이름은 페이스북, 틴더등이다. [108 ~109p]
- 정보가 현재성을 띠는 시간이 짧다는 것만으로도 정보는 지속을 허문다. 정보는 늘 새로운 자극을 향한 강박을 일으킨다. [111p]
- 우리의 생산물들은 이미 -뻔한-의미를 지녔다. 그 의미는 덜 세련되고 더 쓰레기에 가까울수록 더 쉽게 지각된다. 그림들은 회화 쓰레기, 로고스는 글 쓰레기, 광고는 광경 쓰레기, 라디오 광고는 음악 찌꺼기 쓰레기다. 이 단순하고 저급한 기호들은 저절로 지각에 달라붙어 더 어렵고 은은하고 말 없는 광경을 가린다. 그 광경은 더는 보이지 않아서 흔히 몰락한다. 사물들을 구원하는 것은 지각이기 때문이다. [118 ~ 119p]
- 공허는 고요의 공간적 현상이다. 공허와 고요는 자매 사이다. 고요도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한 소리들은 고요를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들 수 있다. 고요는 주의의 집약적 형태다. 책상이나 그랜드피아노 같은 사물들은 주의를 속박하고 구조화함으로써 고요를 산출한다. 오늘날 우리는 반사물들에 둘러싸여 있다. 우리의 주의를 잘게 토막 내는 산만한 정보들에 둘러싸여 있다. 그렇게 반사물들은 고요를 파괴한다. 설령 반사물들이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말이다. [127p]
- 우리는 사물과 더불어 장소를 잃어간다. [131p]
- 머지않아 인공지능이 정보기계에게 예언을 가르쳐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그 예언은 알고리즘의 계산이다. 계산에는 어떤 마법도 없다. 모든 것이 계산 가능해지면, 행복(운수)은 사라진다. 행복은 어떤 계산으로도 가둘 수 없는 사건이다. 마법과 행복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계산 가능한(예측 가능한), 최적화된 삶은 마법이 없다. 바꿔 말해, 행복이 없다. [138p]
- 지금 사물들은 거의 죽은 채로 태어난다. 사물들은 사용되지 않고 소모된다. [142p]
-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는지 이해하려 한다면, 정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정보는 현재성을 띠는 기간이 아주 짧습니다. 정보는 시간적 안정성이 없어요. 정보는 다름 아니라 놀람의 흥분을 먹고 살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게 시간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정보는 지각을 파편화합니다. 정보는 우리를 영원한 현재성의 현기증 속으로 몰아 넣어요, 그래서 정보 곁에 하염없이 머무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169 ~ 170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