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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g Apr 10. 2023

혼자라는 길, 브랜드의 일

스몰 패션 브랜드 제작자의 일과 생각

혼자라는 길, 브랜드의 일

스몰 패션 브랜드 제작자의 일과 생각


지은이 고예빈, 조예원

펴낸곳 프랙티컬프레스(서울 용산구 신흥로22가길 8, 1층)


- 교과서에서 배운 식의 타깃 설정이라 함은 시장조사를 통해 소비와 행동패턴도 분석하고 나름의 데이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데, 저에게는 분석할 만한 시장도 데이터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도 아니고 누구보다 빠르게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사람도 아닐 뿐더러 저도 어딘가에서 뭔가를 보고 영향을 많이 받았을 텐데, 지구 아니 한국 어딘가에는 반드시 저와 같은 취향과 태도를 지닌 사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그리고 그 사람 역시 저처럼 천가방이라는 물건에 새로운 눈을 갖고 빠져들게 되었을 거란 생각으로 말이죠. 그 가상의 인물은 또 다른 제 자신이자, 미래에 함께 취향을 공유할 저의 타깃이 되었습니다. [30 ~ 31p]


- 제가 오랫동안 모든 업무를 직접 해보니 일이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더군요. 첫 번째는 직접 해야만 하는 일, 두 번째는 직접 하는 게 나은 일, 마지막으로 전문가에게 꼭 맡겨야 하는 일입니다. 이는 업무의 중요도나 수행하는 데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그리고 결과물의 완성도를 고려한 구분입니다. [79p]


- "나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일까."라는 광활한 질문의 답을 찾았습니다. "뭐 하는 사람이긴.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좋아하는 일 다 하는 사람이지."라고요. [92p]


- 저의 영감 대다수가 거창하거나 귀중한 대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을 디자인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형태가 있는 영감이든 추상적인 영감이든 우선 본질을 파악해야 했습니다. 그다음 전체적인 외형과 재료, 색상으로 그 개념을 연결 짓고, 선정한 각 요소가 조화를 이루도록 조율했지요.


 이 방식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은 두 번째 브랜드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입니다. 판매가 부진했으므로 원인이 무엇일까 내내 고민하고 주변인들과 상의했습니다. 알아낸 요인 중 하나가 디자인이었어요. 일상에서 입기에는 디테일이나 소재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영감을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데에만 집중했을 뿐 일상에서의 쓰임까지 생각이 가닿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만히 서 있을 때와 움직일 때가 다르고, 처음 입을 때와 몇 차례 세탁하고 입을 때가 다르고, 제가 만든 옷으로만 스타일링 할 때와 가지고 있는 옷과 스타일링할 때가 다른 것처럼이요. 돌이켜보면 저마저도 제 옷을 부지런히 소잘할 뿐이지 닳도록 입지 못했습니다. [98 ~99p]


- 세부적인 계약 조건에 따라 달라지지만, 최소인 30퍼센트 수수료를 감안하여 원가의 '최소 3배수'로 판매가를 책정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수수료가 너무 높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돈을 받을 리는 만무합니다.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한 노동력과 자본이 투입되었을테고, 유지 지속하기 위해 끊임없는 개발과 광고를 할 텐데요. 이 숫자 역시 플랫폼과 내가 서로 타협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 됩니다. [134p]


- 반대로 차 떼고 포 떼고 하다 보면 마진이 얼마 남지 않을 테니 조금 욕심을 부려 높은 배수로 판매가를 매기면 어떨까요. 업계마다 시장가라는 게 있습니다. 소비자와 어떤 제품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면 적정하다고 떠올리는 가격대도 있을 테고요.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장에 나온 제품이 고정관념을 깨부수고 높은 판매를 기록하면 정말 기쁜 일이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입니다. -중략 - 그러니까 브랜닥 아주 손해 보지 않으면서 소비자를 기만하지 않을 수 있는 숫자가 "최소 3배수"라는 것입니다. [136 ~ 137p]


- 처음에는 저의 멀티 자아들을 쥐어짜면 완성도 높은 사진과 비슷하게 촬영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계획도 없이 레퍼런스 이미지만을 무작정 수집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인 다역으로 흉내 낸 사진은 어설프고 엉성했습니다. 힘은 힘대로 빠졌고요. -중략- 몇 차례 고생을 사서 하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촬영에 전문 인력을 투입하기로요. [162p]


- 사실 옷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옷 만들기에 필요한 인력과 자본이 있으면 됩니다. 허수아비 옷 같은 디자인이라도 전문가와 상의하면서 완성도 높은 옷으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비슷하겠지요. 정말 필요한 것은 내가 만든 물건을 알리고 구매까지 이어지게 하는 '장사 하는 감각'입니다. 그러니까 의류 브랜드를 하는 데 있어서 장사할 줄 모르는 디자이너보다 디자인할 줄 모르는 장사꾼이 더 유리한 게임일 수 있습니다. 의상디자인은 예술이 아니어서 만든 옷을 고고하게 전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반드시 누군가에게 팔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입어야지만 생명력을 얻지요. 그런데 판다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디자이너의 취향이 주류에 가깝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고객을 늘려가면서 점차 판매 데이터가 생길 테고 그걸 바탕으로 다음 옷을 준비하면 되니, 장사 감각을 타고나지 않아도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됩니다. 반대로 디자이너의 취향이 주류가 아닌 경우에는 살아남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니아층이 두텁다고 해서 돈을 버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벌려면 반드시 마니아층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대량생산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작업실 월세와 새로 만드는 옷에 들어가는 재료비, 제작비 등 유지에 필요한 비용이 한 푼 두 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천천히 천천히 브랜드를 유지해나가는데, 시간은 덧없이 흐르는 쓸쓸한 기분을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입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행복은 누리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옷을 팔아야합니다. [219 ~ 229p]


- 1.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관찰하고

2. 그중에 자신 있는 것을 선택해서

3. 잘 만들어야 합니다. 


[222p]


- 그렇다면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도대체 뭘까요. T.P.O(시간 Time, 장소 Place, 상황 Occasion)를 잘 따르는 것일까요? 누구나 알 만한 명품 브랜드를 고급스럽게 소화하는 것일까요? 알려지지 않은 신진 브랜드를 찾아내 남들보다 한 발 앞서는 것일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에 와서 저는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느낍니다. 요즘 들어 저는 곧은 자세를 지닌 사람들을 멋있다고 느낍니다.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들의 옷은 구김이 없이 잘 다려져 있으며 얼룩이나 뜯어진 흔적이 없습니다. 보풀이나 실밥도 없고 단추가 덜렁거리지도 않지요. 소매의 끝과 바지의 밑단은 늘 깨끗하고 스커트의 주름도 반듯합니다. 가방이나 신발, 우산과 같은 소품도 오래 사용해서 닳아져 있기는 해도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그들 자신과 물건을 모두 존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외양을 정확하게 알고 내면의 취향도 알며, 그것을 모두 인정하고 만족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자신을 대하는 모습과 물건을 대하는 태도에서 작은 존경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오랜 탐구 끝에 이른 '옷을 잘 입는다는 것'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232 ~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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