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W LADYSLAW TATARKEIWICZ
A HISTORY OF SIX IDEAS AN ESSAY IN AESTHETICS
BY
W LADYSLAW TATARKIEWICZ
University of Warsaw
Polish Academy of Sciences
MARTINUS NIJHOFF
THE HAGUE/BOSTON/LONDON
PWN/POLISH SCIENTIFIC PUBLISHERS
WARSZAWA
1980
1장 예술 : 개념의 역사
I. 예술의 초기개념
- 이 모든 솜씨들이 아트라 지칭되어, 건축가, 조각가, 도공, 양봉장이, 전략가, 기하학자, 변론가 등이 아트라 불렸던 것이다. 솜씨는 규칙들에 대한 지식에서 발휘되는 것이어서, 규 칙과 법칙이 없이는 아트도 없었다.
- 고대인들과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순수예술과 기능술을 분리시키기보다는 연결지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결코 예술을 순수예술과 기능술로 양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예술을 실천함에 있어 정신적 노력만이 필요한지 혹은 신체적 수고도 함께 필요한지에 따라서 예술을 구분했다. 전자의 것을 고대인들은 교양적liverales이라 했고 후자를 범속한vulgares 것으로 칭했다. 중세 때는 후자를 ‘기계적인’ 예술이라 불렀다. 이 두 종류의 예술들은 그저 분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사뭇 다르게 평가를 받았다.
Ⅱ. 근대에 와서 이루어진 변형
- 순수예술을 공예와 분리시키는 작업은 당시의 사회적 상황, 말하자면 자신들의 지위를 높이려는 예술들의 의욕으로 인해 촉진되었다.
- 탁월한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이상은 자신들의 작업을 지배하는 법칙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들의 작품들을 정확하게 수학적으로 산정해내는 것이었다. 이런 경향은 특히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에게서 두르러졌고, 레오느라도 다 빈치도 마찬가지였다.
Ⅲ. 순수예술
- 시적 예술the poetic arts : 호라티우스의 구호는 16, 17세기에 때에 따라서는 거꾸로 “그림은 시처럼ul poesis pictura"으로 되기도 했다. 이렇게 뒤집어놓은 것은 시적인 특질 즉 시와의 근사성이 회화와 같은 예술을 공예와 구분짓는 요인이라는 확신을 표현한 것이었다. 이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시적’인 것이 비유적, 은유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몇 저술가들에게 있어 이 비유적, 은유적인 특질은 수공예와는 거리가 멀고 고상한 예술들의 참된 공통요소를 이루었다.
- 이것은 의미있는 변화였다. 왜냐하면 고상한, 기억의, 우아한, 즐거움을 주는 예술 등등의 명칭들은 카프리아노나 카스텔베트로, 혹은 해리스나 비코의 사유재산이었고 또 그렇게 되어 있었던 반면에, 순수예술로 분리시킨 것은 보편적인 사실로 되었기 때문이었다. ‘순수예술’이라는 용어는 18세기 학자들의 담론 속에도 등장하게 되었고 그 다음 세기에도 계속 통용되었다. 이 용어는 분명한 범위를 갖고 있었다.
- 18세기 중엽이래로 수공예는 수공예이지 예술이 아니며, 학문은 학문이지 예술이 아니라는 데 대해서 의심이라고는 없게 되었다. 따라서 순수예술만이 진짜 예술이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순수예술 이외에 다른 예술은 없는 터라 순수예술을 단순히 예술이라고 지칭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매우 타당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순수예술이라는 용어는 즉각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나 19세기에는 완전히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자 이 때에 ‘예술’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변화하였다.
- 바뙤가 역설했던 순수예술의 이론을 요약하면, 이들 예술에 공통된 특징은 이들이 모두 실재를 모방한다는 점이다.
- 사실은 정의가 안된 것이며 정의를 기피하는 것이다.
-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에서의 예술개념사는 25세기 동안 지속되어왔고 대체로 두 시기로 구분되는데, 그 각각의 시기는 서로 다른 예술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의 개념이 지배하던 첫 번째 시기는 BC 5세기에서 AD 16세기에 이르는 아주 긴 시기였다. 이 긴 세월동안 예술은 법칙에 따르는 제작으로 해석되었다. 그것이 예술의 첫 번째 개념이었다. 1500~1750년의 시기는 과도기였다. 비록 주도적인 지위는 상실했지만 예전의 개념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던 한편 새로운 개념이 이미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750년경에 옛 개념은 근대의 개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이제 예술은 미의 산물을 뜻하게된 것이다. 이 개념은 고대의 개념이 과거에 얻었던 것과 맞먹는 보편적인 인정을 얻었다. 바뙤가 열거한 일곱 가지 예술을 받아들이면서 이 개념의 범위는 더 넓어졌다. 약 한 세기 반 동안 이 새 개념은 미학자와 예술이론가들이 변화시키거나 개선시킬 것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적합한 개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마침내 변화는 오고야 말았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예술개념을 보다 심도있게 분석한 결과였고, 부분적으로는 예술 자체가 이 시기 동안 겪어왔던 진전의 결과였다. 예술은 이제 옛날의 개념에 맞지도 않고, 최초의 정의에 해당하지도 않게된 것이다.
Ⅳ. 예술의 범위를 둘러싼 새로운 논의들
- 어떤 것이 예술작품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규준은 많으면서도 모두 위태위태했다. 이론상으로는 유일한 규준이 미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고내용, 표현, 진지함의 정도, 도덕적 강직성, 개별성, 비상업적 목적 등도 한 몫을 했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요구조건과 제한들 중 많은 수가 간단히 무시되지만, 이론상의 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 단순히 사용하기 위한 의도로 고안되었으나, 예술적 제작품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낫게 예술적 효과를 자아내는 물품들도 있다. 순수예술과 상업적인 대량생산품 사이의 경계선은 오랫동안 확립되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빈틈없는 것은 아니다.
Ⅴ. 예술개념을 둘러싼 논의들
- 예술이 속하는 일반적인 범주는 한번도 의문시된 적이 없었는데, 그 범주는 예술이 하나의 의식적인 인간활동이라는 것이다. 논란이 일어나는 지점은 예술을 다른 종류의 의식적인 인간활동들과 구별짓는 점은 무엇인가, 다시 말하면 예술과 다른 의식적인 인간활동들의 명확한 차이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 (1) 예술을 다른 것과 구별짓는 특징은 예술이 미를 산출한다는 점이다. 이 고전적인 정의는 18세기가 우리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 정의 전체를 가장 간단히 말해본다면 이렇다. 즉 예술은 미를 목표로 하고 또 미를 달성하는 그런 종류의 의식적인 인간활동이다. 미는 예술의 목적이고 성취대상이자 최고의 가치이다. 예술과 미 사이의 연관성은 먜우 오래된 관념이다.
- 그러나 미는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가장 넓게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미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미는 하나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감탄 즉, 마음에 든다는 표시이다. 또 좁은 뜻으로 보면, 미는 흔히 형식들이 지닌 일종의 평형상태, 명료성, 조화 등의 의미를 취한다. -중략- 위의 정의가 그토록 오랫동안 존속해왔던 것은 이러한 미의 이원적 의미탓이 큰 것 같다. 보다 넓은 의미와 보다 전문화된 의미 모두가 상황에 따라 이 정의를 뒷받침하여 환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정의는 너무 넓거나 너무 좁았다.
- (2) 예술을 다른 것과 구별짓는 특징은 예술이 실재를 재현 혹은 재생한다는 점이다.
- 그러나 모방 역시 미와 같은 형편이다. 모방 또한 서로 다른 여러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 모방은 사물의 외관만을 재현해내는 것인 반면, 데모크라투스에게 있어서는 모방이 자연의 실제작용을 재생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의 모방은 또 달랐다.
- (3) 예술을 다른 것과 구별짓는 특징은 예술이 형식의 창조라는 점이다. 예술은 사물을 형태잡는 것 또는 달리 말해서 사물을 축조하는 것이다. 예술은 정신과 물질에 형식을 부여한다. 이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는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점 이외에 예술작품에게 더 바랄 것은 없을것이다”고 한 바 있다. -중략-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로 문학형식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벨과 프라이 그리고 비트키비츠는 회화적 형식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정의는 음악형식이나 무용수가 자세 및 동작으로 드러내는 형식에도 꼭 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의식적으로 구축된 형식들인 것이다.
알려져 있는 모든 예술정의들 가운데 이 정의가 가장 현대적이다.
-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일정한 형체나 구조 혹은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형체, 구조, 형식 등은 예술을 다른 것과 구별짓게 만드는 특징이 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떤 특별한 형체, 구조, 형식 등을 찾아내야하는 것이다.
- (4) 예술을 다른 것과 구별짓는 특징은 예술이 표현이라는 점이다. 이 정의는 우리의 주의를 예술가의 활동으로부터 예술가의 작동인(作動因)에로 옮아가게하며, 예술가의 의도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 정의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것으로서, 19세기 이전에는 거의 그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
- (5) 예술을 다른 것과 구별짓는 특징은 예술이 미적 경험을 낳는다는 점이다. 앞의 정의와는 달리 이 정의는 예술작품이 수용자측에 끼치는 효과에 집중되어 있다. -중략- 그러나 여기서도 문제점은 마찬가지다. ‘미적 경험’이라는 용어는 ‘미’라는 용어나 진배없이 명료하지도 않고 애매모호하다. 이 상태로는 정의가 너무 광범위하다. 왜냐하면 미적 경험은 예술 이외의 다른 것에 의해서 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 (6) 예술을 다른 것과 구별짓는 특징은 예술이 충격을 낳는다는 점이다. 앞의 정의와 마찬가지로 이 정의는 예술이 수용자에게 미치는 효과를 고려한 것이지만 그 효과의 성격은 다르다. 이 정의는 가장 최근의 것인 동시에 우리 시대의 특징적인 산물이기도 하다. 현대의 많은 화가, 작가, 음악가들은 심미적이기보다는 압도시키고 당황케 하며 노골적으로 충격을 주는 경험들을 산출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여기고 있다. 예술작품은 이런 효과를 달성했을 때 성공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예술의 기능은 어떤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의 강타가 신체에 인상을 남기는 것과 같이 말 그대로 ‘인상지운은 것impress'이다.
- 이러한 정의들 모두가, 특히 위에 열거한 여섯 가지 중요한 정의들 각각이 한 가닥 진실을 담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각 정의마다 몇몇 예술작품이나 유형 및 조류를 예로 들면서 그 타당성을 뒷받침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정의 중 그 어느 것도 통상 예술이라 칭하는 영역 전체를 공정하게 다룰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Ⅵ. 예술정의의 포기
- 예술의 창조성에는 “예술가는 언제나 이전에 한번도 창조된 적이 없는 것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의 조건이 미리 설정될 수는 없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에술이 어떤 실재론적인 정의나 진실한 정의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기본적인 가정은 잘못이다.”
- 웨이츠의 주장이 예술에만 상관되지 않고 다른 종류의 인간활동에도 꼭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과학과 기술은 분명히 창조적인 활동의 예가 되며, 만약 예술을 정의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기계’를 정의하는 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Ⅶ. 한 가지 대안적 정의
- 결론은 이렇다. 예술의 정의는 그 의도와 효과 모두를 고려해야 하며, 그 의도 및 효과 모두가 어떤 종류로 되어 있는 지도 상세히 밝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예술의 정의는 한 벌의 이접적 진술일 뿐만 아니라 두 벌의 이접적 진술들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정의는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
예술은 사물을 재생하거나 형식을 구축하거나 경험을 표현하는 의식적인 인간행위인데 이 경우 그러한 재생, 구축 또는 표현의 산물은 기쁨이나 흥분 혹은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예술작품에 대한 정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예술작품이란 기쁨이나 흥분 혹은 충격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의 사물의 재생이거나 형식의 구축 혹은 경험의 표현이다.
- (3) 이 정의는 ‘아름다운’, ‘심미적인’ 등과 같이 가치평가적인 용어와는 거리가 멀다. ‘기쁨’, ‘흥분’, ‘충격’ 등은 일정한 가치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을 나타내는 사실적인 심리학적 용어들이다.
Ⅷ. 정의와 이론들
Ⅸ. 현재의 상황
- 그렇기는 하나 아방가르드는 당시까지는 아직 광범위한 인식이나 영향력을 획득하지 못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점차로 예전만큼 패하지도 않고, 갈수록 감탄을 받으면서 실로 돋보이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초현실주의와 미래파, 그리고 시각 예술가들 중에서는 특별히 입체파, 추상주의, 표현주의, 또 문학과 미술쪽에서도 집단움직임이 있는 등 탁월한 아방가르드 그룹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이(투쟁적인) 아방가르드는 자유가 예술에서 허용되는 정도가 아니라 꼭 필요한 것으로 되는 상황을 급속히 야기하였다. 말하자면 예술가들에게 가해졌던 여러 제약들이 종말에 도달했던 것이다.
- 과거에는 아방가르드가 관습적인 예술과 달랐으나, 이제는 스스로와도 달라야만 하고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승리한 아방가르드에게 있어 형식의 변화는 거의 매년 부단히 일어난다. 형식, 강력, 개념, 구호, 이론, 명칭, 사상 등의 변화는 예전보다 더 빨리 일어나고 있다.
- 예술의 영역에서 우리시대는 대부분 반대로 치닫고 있다. 박물관에 대한 반발 : 박물관은 예술의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학에 대한 반발 : 개별적인 경험들을 일반화시켜서 독단을 낳는다는 것이다. 예술의 다양한 종류를 구별하는 것에 대한 반발 : 전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형식에 대한 반발 : 살아 있는 생생한 창조성을 석화(石化)시킨다는 것이다. 예술의 사회적 취급에 대한 반발 : 이것 때문에 예술이 개인적인 문제가 되지 못한다. 즉 예술가와 세계와의 사적(私的)인 대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의 대중 즉 관람객과 청취자에 대한 반발 : 그들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술가에 대한 반발 : 누구든지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개념에 대한 반발 : ‘해프닝’에서 저작권은 이미 그 개념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예술작품 자체에 대한 반발 : 이러한 창조성의 산물이 남아돌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포화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예술’이라는 용어에 대한 반발도 있다. 즉 뒤비페는 “나는 ‘예술이’이라는 단어를 혐오한다. 차라리 그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이라고 쓰고 있다. 그 단어와 더불어 예술의 개념도 사라질 것이며, “그 개념이 상실되면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사멸된다.” 반 세기도 더 전인 1919년에 비트키비츠는 예술의 종말을 예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