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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이 Jan 02. 2023

1월 : 입주를 환영합니다

우리 집 사용 설명서

우리 집 입주를 환영합니다. 우리 집 사용 설명서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우리 집의 역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집의 역사를 알고, 사용 설명서를 읽고 나면 우리 집을 하나의 생명체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2011년, 회사에서 보내 준 중국 어학연수 기간 중 어느 날 아침, 장기가 찢어지는 듯한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갔습니다. 진단결과는 십이지장 천공. 중국의 열악한 의료체계를 감안할 때 국제병원으로 가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겁니다. 당장 수천만 원의 수술비와 입원치료비 청구서가 날아왔지만, 그래도 살아있다는 사실과 한국으로 돌아가면 아내와 함께 꿈꾸던 주택살이를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은 현실의 괴로움을 토닥였지요.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집은 당연히 마당 있는 집이었습니다. 구글 지도를 펼쳐 놓고 몇 주에 걸쳐 직장이 있는 포항에서 후보지역을 물색했습니다.

1968년 포항제철소 사원주택단지 초기모습

70년대 포항종합제철이 건설될 당시, 박태준 회장은 직원 복지를 위해 유럽 최고 수준을 능가하는 주택단지 건설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때 일본인 건설 기술자들을 영입하여 조성된 단독주택 단지는 40여 년이 지나 세월의 흔적은 피할 수 없었지만, 학군과 녹지, 주차공간, 출퇴근 거리, 가격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 가족에겐 최고의 후보지였지요. 여러 일정상 매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중국에서 귀국하기 3개월 전 단 하루 밖에 없었습니다.


부동산에 미리 연락하여 아침부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가며 열 집 가까이 매물을 보았지만, 모두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상태가 너무 안 좋았어요. 부동산 사장님은 이제 한 집 남았는데 집주인이 서울에 있어 내부는 볼 수 없고 진짜 팔려는 생각이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외관만이라도 보고 싶으면 가보자고 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삐그덕 거리는 철제 대문을 밀고 들어가니 널찍한 마당이 한눈에 들어왔어요. 그 순간 ‘아! 이 집이네.’하는 느낌이 온몸으로 퍼졌습니다. 50평이 조금 넘는 대지에 23평 남짓한 건평으로 주인이 관리를 꼼꼼하게 하시긴 했지만, 내부 구조부터 인테리어까지 아파트와 비교는커녕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도 난감한 수준이었지요.

아! 이 집이네.

그래도 마당 있는 주택에서 살아보겠다는 신념으로 모아두었던 아파트 전세자금에 신용대출을 최대한도까지 받아, 다음날 서울에서 포항까지 내려온 집주인과 일사천리로 매매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도배와 장판, 화장실 리모델링 정도까지만 손을 대고 드디어 12월 중순에 입주를 했습니다. 이제 만으로 네 살, 두 살 되는 아이 둘과 네 식구가 안방에서 잠을 자는데 벽에서 마치 냉풍을 틀어놓은 듯한 한기가 코끝으로 느껴졌어요. 보일러로는 감당이 안 되는 수준이었기에, 내복을 단단히 껴입고 목화솜이불을 덮고 자니 추위는 다행히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답니다.

지붕과 바닥을 철거하니 벽만 앙상하게 남았다

아무리 마당 있는 집이 좋다고는 하지만 단열이 제대로 안된 주택에서 겨울을 두 번 보내고 나니, 따뜻한 집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추위를 특히나 많이 타는 아내는 그래도 신선한 공기가 좋다면서 겨울에도 나무 미닫이 창을 활짝 열고 수시로 환기를 시켰지만, 두 번째 봄이 오자 일단 리모델링 견적이나 받아보자며 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지인이 소개해 준 리모델링 업체 사장과 첫 미팅 자리에서 뭐에 씌었는지, 우리 부부는 공사를 진행하기로 결정을 해버렸습니다. 


이미 신용대출까지 있는 대로 다 끌어다 썼지만 집을 담보로 융자할 수 있는 변통 방법이 남아있었습니다. 리모델링 작업은 세 달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말이 리모델링이지, 바닥과 지붕을 모두 들어내고 한쪽 벽면은 허물고 증축하는 작업까지 포함했기 때문에 사실상 신축이나 다름없는 대공사였습니다. 공사를 하면서 현관과 창고의 위치만 그대로 두고 나머지 구조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쪽 벽면을 허물고 거실로 확장한 공간

특히, 기존에 안방이었던 공간은 주방으로 변했고, 주방과 이어지는 벽면을 터서 마당 쪽으로 확장을 하여 확보한 새로운 공간은 거실로 변신했습니다.

거실은 남향으로 정원을 바라볼 수 있게 설계했고, 주방에서 거실을 바라볼 때는 채광창을 가로로 길게 내어 옆 집 기와가 액자처럼 운치 있게 들어옵니다.


거실에는 TV와 소파 대신 붙박이 책장을 시공하고, 커다란 테이블과 피아노를 두었는데 아이들이 크면서 TV와 소파를 놓고 함께 쉴 수 있는 가족실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리모델링한 지 5년 만에 거실을 복층으로 올리는 대공사를 감행했습니다. 공사기간 동안 거실에 있던 가구를 복도와 방에 옮겨 놓고 비좁은 공간에서 네 식구가 몇 주를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2층에 올라가 해 질 녘 노을도 보고, 가족과 함께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오붓한 시간을 자주 만끽하기 바랍니다.

옆 집의 지붕 기와가 액자같이 보이는 거실 채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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