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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림 Jun 05. 2021

우리 집 빨래 담당은 누구?

네덜란드 생활 - 빨래 편

암스테르담 빨래방


내가 처음 네덜란드에 왔을 때 2개월가량 혼자 살았다. 집사람은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네덜란드가 정 별로라 생각이 들면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네덜란드 도착 전에 에어비앤비를 통해 한 달간 숙소를 예약했다.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근처에 있는 독채 건물로 주인이 집 뒤편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딸린 방 두 개를 만들어 세를 주고 있었다.


방 크기는 약 2평 반 남짓으로 더블베드에 작은 책상과 옷장, 한 명이 쓰기에 충분한 싱크대도 구비되어 있었다.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화장실도 깨끗하게 유지되어 있었다. 다만 세탁기가 없어 난 구글맵에서 코인 세탁소를 찾아, 암스테르담 중심으로 주말마다 세탁을 하러 다녔다.


암스테르담은 곳곳에 세탁소가 많았다. 집에 세탁기가 없는 걸까? 학생이나 관광객들이 주로 사용하는 걸까? 빨래를 기다리며 마주친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었다. 직장인에게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매주 나가는 비용이 난 조금 아까웠다. 그래서 집에서 손빨래도 시도해봤지만, 주말엔 푹 쉬는 게 좋더라. 빨래를 하고 건조기에 옮겨 넣으면 대략 1시간 정도 여유 시간이 생겼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저녁을 먹거나 암스테르담 관광 모드를 즐기곤 했다.





난 세탁기 담당이다.


난 세탁기와 냉장고 홍보 담당이다. 정확히 말하면 가전제품 매장에서 생활 제품군이 잘 팔리기 위해 온라인 및 오프라인 마케팅 업무를 도와주는 게 내 주 업무다. 지인 집에 방문하거나 여행하며 집안에 세탁기가 보이면 어느 브랜드인지 습관적으로 확인한다. 경쟁사 제품을 보면 기분이 씁쓸해지고, 자사 제품을 보면 사뭇 기분이 좋아진다. 한국은 누빔이나 차렵이불을 주로 사용하여 큰 이불 빨래를 위해 20kg 이상의 용량을 선호하지만,  네덜란드는 이불에 커버를 씌 생활하며 주로 커버만 세탁 하기에 10kg 이하 제품이 많이 팔린다.


네덜란드에도 트윈 워시라 하여 2kg 용량의 작은 세탁기가 출시됐다. 보조 세탁기인데 속옷이나 아기 옷을 따로 분리하거나 소규모 세탁을 위해 유용한 제품이었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제품이 잘 팔리지 않아 동료와 의견을 나눴는데 ‘양말과 속옷을 같이 빠는 게 뭐가 이상해?’ 라며 분리 세탁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일까? 아는 형과 같이 싱가포르에 살 때 같이 살던 여성 하우스 메이트가 거리낌 없이 자기 속옷을 우리 빨래와 섞어 두는 걸 보고 지인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뭐 사람마다 다르기야 하겠지만, 여성 속옷은 무조건 손빨래를 해야 된다고 어머니께 배웠다는 친구도 있었고, 어떻게 양말이랑 속옷이랑 같이 빨래를 하느냐고 기겁하는 경우도 봤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성과 같이 살면서 배려 없이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둔 우리 잘못이 크다.


집사람과 난 이 소형 세탁기를 아주 유용하게 쓴다. 속옷을 돌리거나 스웨터나 분리 세탁을 해야 하는 한두 가지 빨래들. 특히나 하루에 몇 번을 갈아 입혀야 하는 아이 옷은 매일 빨래를 해야 하기에 한방에 슈슈슉! 당장이야 네덜란드의 문화와 사람들의 습관을 바꿀 순 없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답이 생기리.





우리 집 빨래 담당


우린 세탁기를 부엌 싱크대 밑에 설치했다. 1층 거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빨래를 돌리고 바로 말리기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조기를 사고 1층에 둘 자리가 없어 2층 샤워실 구석에 건조기를 두면서 조금 번거로워졌다. 띠리리링~! 소리와 함께 건조가 완료되어도 귀찮아서 그냥 두곤 한다. 세탁기를 2층으로 옮겨야 하는데 좁디좁은 우리 집 계단을 무거운 세탁기를 들고 어찌 오를지 막막하다. 차라리 새로운 세탁기를 사며 배송하는 분께 설치까지 부탁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처음 건조기를 샀을 때 난 직접 혼자서 무게 56kg짜리 제품을 직접 2층으로 옮겼다. 직원 할인을 통해 건조기를 저렴하게 구입했지만, 설치는 직접 해야 했고, 작업자들을 급히 섭외했지만, 당장에 와서 옮겨줄 인원이 없었다. 마침 다음날이 주말이었고, 난 건조기를 전부 분해해 2층으로 옮기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유튜브에서 분해 영상을 확인해 보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체 무게는 제품 홈페이지에서 확인했고, 내가 들 수 있을 만큼 부품을 하나씩 분해해 보자.


물통+신발 건조대 -1.6kg, 도어 -4.5kg, 상판 -4.1kg, 계기판 -2.3kg, 앞면 철판 -3.7kg, 양옆 철판 -4.7kg, 앞면 내부판 -3.6kg, 뒷면 커버 -1.2kg, 드럼 -9kg, 내부 회로판 -6.1kg


이렇게 분해하고 나니 15.2kg. 혼자서 들고 올라갈 수 있는 무게였다. 사뿐히 계단을 올라가 2층에 자리를 잡고 조립을 완성하고 나서 시작 버튼을 누르기까지 두 시간 정도 소요됐다. 마지막에 나사가 두 개 남았지만, 별다른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 튜브에도 올려놨으니 궁금하신 분은 확인해 보시길! 건조기란 존재는 우리 가족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날씨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고, 급한 빨래는 한두 시간이면 산뜻하게 입을 준비가 된다.


우린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주중에는 서로 너무 바빠 빨래는 주로 주말에 하는 편이다. 양말 및 속옷도 넉넉히 사 둬 주중에 갑작스럽게 빨래할 일을 줄였으나 건조기를 사며 이 문제도 해결이 되었다. 브래지어는 상태 보존을 위해 원형 통으로 된 망에 넣고, 스웨터나 늘어나기 쉬운 제품들은 일반 망에 넣는다. 다만, 애매한 세탁물은 손대지 않는다. 울 모드를 적용해야 할 제품이 있고, 찬물로만 빨거나, 손세탁 혹은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는 제품이 있다. 예전에 집사람 스웨터를 뜨거운 물로 세탁하다 옷을 줄어들어 엄청 욕을 먹은 적이 있다.


남자들이여! 애매한 건 함부로 손대지 말자!


https://dailynl.com/archives/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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