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반응은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뭔가 시험을 본다고 했고 그에 대한 결과가 나왔고 상장을 주길래 부모님께 가져가서 드렸다.
책가방에 잘못 넣어서 찢어진 채로.
아마 상장의 의미도 잘 몰랐고 대단한 거라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해당 시험은 교내 수학경시대회였고 반에서 2등인가 했나,아무튼 그래서 받은 은상이었다.
상장에 무심할 만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그 학교 이전에 다니던 곳에서 늘 꼴찌 근처였던 학생이었다.
1학년 때 받아쓰기를 꼴찌 해서 엄마는 나의 지능을 의심했었다고 한다.
2학년 때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다른 친구들 하교할 때 거의 혼자 남아 구구단을 전부 외울 때까지 집에 가지 못한 기억이 있다.
3학년 때까지 다녔던 그 학교는 매월 시험을 보고 성적에 따라 뱃지를 주어 아이들 셔츠 칼라에 뱃지를 달 수 있게 했다. (교복이었으니까)
한 달 우수자는 비둘기가 한 마리 있는 뱃지, 두 달 우수자는 두마리 그렇게 다섯 마리까지 그려져 있는 뱃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적뿐인가. 매월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 본받을 만한 모범학생에게는 소나무가 그려진 뱃지를 수여했다. 아마 그것도 다섯 그루까지였을 것이다. (모범생이라고 하지만 인기투표에 다름없었던 것 같다)
카라에는 학년을 표시하는 색이 구별된 뱃지, 성적 우수를 표시하는 비둘기 뱃지 그리고 모범생을 표시하는 소나무 뱃지가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나는 3년 내내 학년을 표시하는 뱃지 외에는 받아 본 적이 없다.
그랬던 학생이니 시험을 보고 좋은 성적을 얻는다는 것은 나와는 별세계의 일이고,
전학을 왔던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상장을 주니 누구나 받는 건가 보다 했던 거다.
상장을 가져왔을 때 부모님의 반응이 기억나는데,
의심이나 의문 혹은 놀라움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대견함이었던 것 같고 꽤나 축하와 응원을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번도 나를 책망하거나 꾸짖으시진 않았지만 딱히 성적으로 칭찬받을 일이 없었기에 그건 아마 내가 처음으로 응원을 받는다는 느낌이었고 그 덕에 이후로 자신감을 더 가질 수 있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지금에서야 생각해 본다.
만약 당시 부모님의 반응이
'너가 어떻게 이걸? 너 말고도 다들 받았니? '
이런 거였다면 어땠을까?
이런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100점, 그러니까 그 이상 더 점수를 받을 수 없는 최고치,
다른 말로 '만점'을 받아서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이야기했다고.
그런데 동점이 여러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아이에게 부모님이 주신 피드백은
'그러면 진짜 1등은 아니네'
였다고..
그때의 실망과 좌절감. 그리고 나는 100점을 맞아도 부족하단 무너진 자존감은 10년 그리고 2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부모의 반응을 아이들은 매우 주의 깊게 살핀다.
별거 아닌 일 같은 부모의 반응으로 아이들은 힘을 얻기도 하고 힘이 빠지기도 한다.
그 느낌은 수십 년간 성장의 거름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러니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경이로우며 책임감 있는 일인가.
존경하는 '부모'인 지인들이 있다.
그들은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에게 혹자가 보기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할 정도로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그 '정성'이란 것이 무조건적인 물심양면 제공이라든지, 너 하고 싶은 것은 다해라며 안하무인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주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아이의 질문이나 요구에 매우 사려 깊게 그리고 시간을 투자해 반응해 준다는 것이다.가끔은 부모의 권위로 대응하면 간단하지 않을까 싶은 일에도 고작 4~5살 밖에 안된 아이에게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 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대답을 해준다.
그 아이는 지금 동년배 중 상위 0.4%에 속하는 영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