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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on Mar 16. 2022

호수효과

5

 시끄러운 벨소리에 눈을 떴다. 방안은 이미 햇살로 가득했다. 호텔 카운터였다. 민지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휴대전화를 보니 그녀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여러통 와 있었다. 민지는 정말 푹신해 보이는 로비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만 통통해진 것 빼면 스무살 때 얼굴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는데 그 모습을 본 민지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마저 우리의 스무살 시절과 어쩜 그리 똑같던지 세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민지의 차를 타고 브런치 카페로 향했다. 평일인데도 정말 많은(또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대기하는 동안 받은 메뉴판에는 이름만 봐서는 어떤 음식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 것들이 잔뜩 쓰여있었다. 아무래도 메뉴선택은 민지에게 맡기는게 안전할 것 같았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민지는 서버를 불렀다. 이것저것 묻더니 요리를 세개나 주문하였다. 그녀가 먹고 싶었던 신메뉴들인 것 같았다. 전보다 영어가 더 유창해진ㄱ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어딘지 모르게 그녀의 주문에 안심이 되었다.


“그거 레이크이펙트야.”


“응? 뭐라고?”


호수효과라고!”


“갑자기 웬 호수타령이야?”


“여기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다 호수 때문이라고 그러거든. 아니 근데 생각해 보니 정말 호수효과인데? 이곳은 호수가 옆에 있어서 바람이 심하게 불때가 많거든. 바람 을 피하려다 우연히 들어간 미술관에서 만난 연하의 남자라. 이거 완전 시나리오 한편 나오겠는걸?”


“근데... 또 보기로 했어...”


“뭐라고? 상진씨도 알아?”


“아니... 말 안했지...”


“너 요새 남편이랑 사이 안 좋니?”


“딱히... 뭐... 좋고 안 좋고 할 게 있나...”


“그럼 그 남자애를 왜 또 만나려는 건데?”


“ 재밌는 구석이 있다고나 할까.”


“그래 재밌는 사람 좋지... 근데 너 유부녀야. 싱글이 아니라고.”


그녀의 마지막 말은 마치 전혀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는 것 마냥 낯설게 들렸다. 물잔에 손을 가져가는데 오른손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날 정오가 지나서 미술관 앞에서 지수를 만났다. 그는 대뜸 수족관에 가자고 했다. 호수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니 미술관과 비슷하게 기둥위에 삼각지붕이 올라간 건물이 나타났다.


“이 동네는 수족관도 그리스 신전처럼 지어놓았네요.”


수족관 안에는 현장학습을 온 아이들과 선생님들로 보이는 어른들이 가득하였다. 아이들은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건 똑같았다. 곳곳에 있는 수조 안에는 신기한 물고기와 해양생물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수는 그것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지수를 따라간 곳은 돌고래 쇼 공연장이었다. 돌고래가 점프를 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돌고래의 모습과 다른 생김새였다. 이어지는 돌고래들의 완벽한 점프에 관중들은 완전히 빠져들었다. 순간 돌고래들이 아주 잘 만들어진 로봇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공연이 끝나자 갑자기 지수가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그를 따라 내려 온 아래층에는 어두운 실내 한편에 유리창을 통해 거대한 수조가 보였다. 갑자기 어두운 그림 자가 빠르게 유리창 쪽으로 다가왔다. 놀라서 움찔하는데 방금 쇼에서 나왔던 귀여운 얼굴의 돌고래가 나타났다. 이곳은 바로 공연장 아래 수조물속을 바라볼 수 있는 방이었다. 나는 돌고래와 유리창을 두고 마주보고 있는 지수 옆으로 다가갔다. 돌고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젖어 있었다.


“근데 여기 돌고래는 좀 특이하게 생긴 거 같아요.”


“벨루가라고 해요.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돌고래와 좀 다르게 생겼죠.”


“지수씨는 아는 것도 많네요.”


“예전에 수족관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벨루가를 처음 봤어요. 어느 날 새벽근무조로 수조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너무 피곤 하더라고요. 거의 반쯤 감긴 눈으로 걸레질을 했어요.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 수조 위로 튀어 올랐고 저는 깜짝 놀라서 발을 헛딛어 수조에 빠졌어요. 헤엄을 쳐서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버렸죠. 입과 코 안으로 물이 들어가는데 죽겠다 싶더라고요. 그 때 갑자기 물 안에서 저를 수면위로 밀어 올리는 힘이 느껴졌어요. 아래를 보니 놀랍게도 인어로 보이는 생명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저를 받쳐주고 있었어요. 겨우 수조 난간에 매달려서 정신을 차려보니 절 구해준 게 바로 그 수족관에 사는 벨루가였어요. 이름이 ‘루이’였는데 절 엄청 따랐어요. 사육사 누나가 질투할 정도였죠. 이렇게 수족관에 오니까 루이가 정말 보고 싶네요.”


“그 수족관에 가면 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만두고 얼마 되지 않아서... 죽었어요...”


“아… 미안해요...”


“이상하게 미술관에서 누나를 첨을 봤을 때 루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갑자기 여길 오고 싶더라고요.”


루이는 지수가 수족관을 떠난 지 한 달이 되는 날, 하루종일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고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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