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가을 소풍날처럼 날씨가 맑았다. 본관 앞 태오가 마이크를 잡고 서 있었다.
"지금부터 10분 뒤 강준아 학생의 IT대학 학생회장 출마 연설이 있겠습니다. 관심 있는 학생들은 잠시 대기했다가 연설을 듣고 가세요."
태오는 혼자서 해도 괜찮다는 준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부터 준아를 도우러 나왔다.
"야, 뉴스 못 봤냐. 이렇게 바람잡이가 있어야 연설하는데 뽀대도 나고 사람들도 더 모이는 거야."
태오는 준아에게 자신 있게 말했지만 앞에 모여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저 멀리서 재훈과 지연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아.. 우리가 현직이라 대놓고 도와줄 수가 없고.. 시작부터 앞장서기는 더 어렵고."
"우리가 앞에 나서지 않아도 준아가 이미지가 좋잖아. 기다려 보자. 근데 진짜 사람이 없네. 다들 아침부터 뭐가 그리 바쁜지.
그러나 그 믿음에도 불구하고 IT대학 과잠바를 입은 학생들마저 하나 둘 준아와 태오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태오는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휴대폰과 마이크를 구석에 함께 가지런히 놓았다. 휴대폰 스피커 방향이 마이크에 거의 닿았다. 그리고는 준아 앞으로 다섯 걸음 앞에 섰다.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신나는 댄스 음악 빅뱅의 '마지막 인사'였다. 태오는 음악에 맞추어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준아는 그런 태오를 바라보며 옛 생각에 잠겼다.
태오는 중학교 때부터 춤을 췄다. 중학생 태오와 친구들은 젝스키스의 '폼생폼사'에 맞춰 삼삼오오 춤을 추었다. 음악을 멈춘 태오는 무리들에게 안무 시범을 보였다.
중학생 태오가 오락실 노래방에서 HOT의 '자유롭게 날 수 있다면' 노래 마지막 구절을 불렀다.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나의 곁에서 너를 날려 보내 줘야 해. 나를 잊어줘- 영원-히-"
태오는 간주가 마치자마자 급하게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태오는 수업시간 뒷자리에 앉아서 녹음했던 테이프에 정성껏 제목을 적는다. 'Teo Kim, 데모 응모'
봉투의 수신인에는 에스모엔터테인먼트와 주소가 적혀 있었다.
태오는 중고등학교 축제 때 늘 댄스공연을 리드했었다. 그의 댄스 실력은 뛰어났고 심지어 다른 학교 여학생 팬들도 많이 있었다. 태오가 고등학생 시절 눈이 내리는 창가에 앉아 있던 반 친구가 창문 너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와! 얘들아 이거 봐. 저기 여고 교복 입은 여학생 둘이 태오 이름을 발자국으로 적은 것 같아. 태오 팬인가 봐!"
학생들은 우르르 창가로 몰려들었고 얼굴이 빨개진 태오는 본인도 궁금한지 슬그머니 창가 쪽으로 다가섰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운동장에는 작은 발자국들이 모여 TAO 라는 세 글자 영문 이름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태오라 하더라도 빅뱅의 다섯 멤버의 역할을 혼자 소화하기는 벅차 보였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또는 재미있었는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숨이 차기 시작한 태오는 관중들을 보며 끝까지 춰보기로 다짐했다.
준아는 태오의 춤을 쳐다보고 앞에 응원하는 몇 명 학생들을 다시 번갈아 쳐다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들어 눈가가 촉촉해졌다. 다시 집중해서 태오의 동선을 하나씩 따라 해 가며 작은 제스처로 흉내를 냈다. 태오는 지쳐가는 것처럼 보이나 눈만큼은 댄스 가수보다 더 진지하고 자신 있는 눈빛이었다.
이제 곧 빅뱅의 '탑'이 앉았다가 일어나는 2절 소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타이밍이 오자 준아는 갑자기 무대로 뛰쳐나갔다.
준아는 앉아있는 태오의 앞을 가리며 앉았다.
"아무런 말 없이 떠나 연락 없고!"
준아는 '탑'의 흉내를 내며 태오가 췄던 안무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춤을 추는 준아의 합류에 구경꾼들은 오오- 함성을 질렀다. 멤버가 한 명에서 두 명이 되자 솔로 무대에서 그룹 무대로 판이 바뀌었다.
춤을 구경하는 학생들의 수가 금세 수 십 명이 되고 지속적으로 누적되었다. 5분여의 한 곡이 마칠 때쯤 약 이 백 명 정도의 대규모 사람들이 몰렸다.
노래가 멈추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바람잡이의 대성공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 쉰 태오는 숨을 헐떡이며 땀이 찬 손바닥으로 마이크를 쥐었다.
"하- 하- 아- 자..
이제 강준아 학생의 첫 출마 연설을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주목해 주세요. 큰 박수 한 번 부탁합니다."
와와- 함성과 박수 소리에서 다음 출마 연설에 대해 품은 기대가 느껴졌다.
태오는 준아에 마이크를 건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준아야, I don′t wanna be last dance~
첫인사가 마지막 인사 안되게 잘해라!"
준아는 웃으며 태오와 짧게 포옹을 한 후 긴 숨을 내쉬었다. 곧 태오에게 받은 마이크를 천천히 들었다.
"안녕하세요. IT대학 03학번 강준아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 백명의 숫자가 등교하는 학생들이 더 합류하면서 삼백 명이 되고 있었고 준아의 소개에 잘생겼다- 춤 한 곡 더 춰라- 목소리 좋다-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터졌다.
준아는 잠시 침묵을 했다. 웅성 되던 사람들은 모두 준아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다. 본관 꼭대기 그를 쳐다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아린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떠나 연락 없고!" 노랫소리에 깨서 창문을 열었다가 준아의 소개 멘트를 듣게 되었다.
준아는 다시 마이크를 입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저는 특별한 눈을 갖고 있습니다."